한없이 가벼워지는 책들 속에서 5kg짜리 사전을 만들다

세계만물그림사전』. 2007년 11월 드디어 3년 반만에 완성되어 우리 품에 안겼다. 1,096쪽분량에 한국어, 영어, 불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렇게 5개국어로 천문, 동․식물계, 인간, 예술과 건축, 과학, 사회 등 17개 분야의 다양한 사물들의 용어를 알려주는 이 사전은 어느 신문기자의 설명처럼 복숭아 한 상자 무게는 너끈히 나간다. 특이한 점은 이 사전에는 설명글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그림과 이를 가리키는 단어들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서점에 나간 마케팅부 부장님이 가장 처음 들은 말은 바로 “사전이라면서 왜 설명이 없느냐”였다. 이 사전은 우리가 늘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사전의 사전적인 개념을 깨뜨리는 사전이었다.


캐나다의 QA international이라는 출판사에서 만든 이 책을 처음에 보았을 때, "그래, 이 사람들은 이렇게 정밀하게 그림을 그려가며 용어를 정리해 책을 만드는데, 우리가 제대로 용어들을 번역조차 못할쏘냐“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각 분야의 번역자들을 섭외해 우리말로 옮기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다시 감수를 맡기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개구리의 몸 부분과 관련해 들어온 번역 원고 중에는 전지, 후지 같은 말도 있었다. 전지?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건 가지치기할 때 쓰는 말 아닌가? 다시 한번 살펴보고야 그것들이 앞다리, 뒷다리를 뜻하는 말인 것을 알았다. 한자어였던 것이다. 굳이 연원을 따지자면 일본식 용어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서 사용되고 있었다. 또 패션 분야는 번역을 맡은 자신의 주전공 분야가 아닌 부분을 주위의 여러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영어를,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람은 프랑스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떻게 쓰냐고 물었더니 현장에서는 일본어를 쓴다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때 그 낭패감에 대해 여러 번 호소했다.


흥미롭게도 이 사전의 독자층은 참으로 다양하다. 침팬지와 탱크에 관심이 많은 유치원 꼬마에서부터, 의과대학 교수, 통역대학원 학생들, 만화가 및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전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왔다. 또한 이 사전을 만들어본 경험을 되살려 다시 3년 정도의 계획으로 ‘한국전통그림사전’을 만들어보려 계획하고 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사전 이야기를 하니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전은 한 나라가 가진 문화경쟁력의 총체”라는 말을 떠올리며 무엇이 기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