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말. 달콤한 사탕처럼 집안에 넣고 중얼거리기에 좋은 단어. 이 말이 언제 처음 내게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오래된 습관처럼 내 입에 착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 말고도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 같았다.
한자어이지만 순우리말처럼 친근한 단어. 행복은 널리 쓰인다. 두루 쓰인다. 그렇게 표나게 배운 바도 없는데 행복이라는 말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아마 가장 일찍 배운 바를 굳이 따지자면 이런 시가 아니었을까. 유치환의 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삶의 목적이 마치 행복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산다는 것의 고지가 마치 행복을 쟁취하고, 손에 쥐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 되고만 느낌이다. 행복을 빼놓는다면 우리의 삶은 공허한 항아리가 될 공산이 커졌다. 행복이란 명사은 이제 우리 시대의 보편적 상식으로, 행복하자는 동사는 통일된 구호로 자리잡은 듯하다.
행복은 누구나 정복해야 할 고지처럼 우리들의 앞에 그렇게 던져졌다. 아무 의심 없이 생각해온 그 행복. 과연 그 고지에 오르면 이제 더 이상 행복을 찾지 않게 될까. 그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보는 나이가 이젠 되었는가 보다. 부엌의 고유했던 어머니의 손맛을 미원이 하나의 표준적인 맛으로 식탁을 장악하듯 집집마다 행복이 하나의 통일된 구호처럼 들이닥쳤다는 것에 시비를 붙어보고 싶었던 것.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교황님은 이런 말씀으로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선종하셨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하십시오.” 우리나라의 종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방을 가다 행복에 관한 강의 현수막을 보는 건 흔한 일이다. 인기있다는 강사들은 강의에서 심심하면 툭툭 던진다. 행복, 행복, 행복.
다행 幸, 복 福. 다분히 중복된 느낌이 없지 않은 단어이다. 이 행복이란 말은 언제 우리에게 등장했을까. 옛문헌에 저 단어는 없다. 서양의 happiness에 대응하는 말로 근대에 생겨났을 것으로 짐작할 뿐. 그러니 행복은 그리 오래된 말이 아니다. 동양의 옛사람들은 자신의 사생(死生)은 물론 운명(運命)을 하늘에 맡겼다고 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소관사항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논어>에는 요행을 뜻하는 행(幸)은 더러 보이지만 정작 복(福)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행복에 해당하는 것들이 논어 술이편에서 다음의 문장으로 희미하게 짐작해 볼 수 있을 뿐.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가 추구할만한 것이라면 시장에서 문을 지키는 사람 노릇이라고 기꺼이 했을 것이다. 부가 추구할만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찬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구부려 베고 잠을 자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다.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해서 얻은 부와 지위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그날은 오래 꾸려온 <논어> 강독 모임의 뒤풀이 자리였다. 책에서 시작한 화제는 늘 책 바깥으로 뛰쳐나오기 마련이다. 국가, 나라, 사회 이야기가 나오고 선거 이야기로 흐르고, 그 끝에 행복에 관한 이야기. 한문의 초심자에 불과한 나를 이끄는 전공자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변한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과연 행복이 가능한 상태이겠습니까. 이승에서 행복하다는 건 잠시의 마취일 뿐 행복은 영원할 수가 없는 것. 이승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 행복은 幸福이 아니라, 行福이 아닐까요. 행복은 가는 것..... 가는 것이야말로 행복......
그이의 말씀을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니다. 대강의 요지를 내 편의대로 옮겨 적고 있을 뿐. 그래도 어쩐지 그 말의 꼬리가 길어서 집에까지 따라오고 여러 날 함께 동행하였다. 그리고 어느 주말. 산사에 갔다가 화장실 한켠에서 또 저 행복을 발견하였으니, ‘행복’은 ‘쓰레기’와 너무 가까이에 있더라, 그래서 최근 너무 영혼 없이 내뱉는 듯한 감이 없지 않는 행복, 유행가 가사에 불과한 것 같은 행복, 김빠진 사이다 같은 행복이란 말에 괜한 시비를 이렇게 다시금 불러 들쑤셔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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