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 일본어판 출간!


일본의 독자들에게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17일 시행 이후 9번 개정됐다. 일본국 헌법이 1947년 5월3일 시행 이후 그대로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10번째인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10월29일에 공포돼 25년째 유지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87년 헌법’을 자랑스러워한다. 군사독재 정부와 목숨을 걸고 싸워 만들어낸 헌법이기 때문이다.


87년 헌법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헌법재판소다. 25년 대한민국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온 헌법의 수호자다. 헌재는 2005년 시작된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헌법재판소를 사랑한다. 때때로 항의도 하고 비판도 한다. 하지만 헌재가 자유와 평등이란 헌법 가치를 지켜준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을 때 국가의 검열이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 사랑하는 여인이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절망해 목숨을 끊지 않아도 되는 사회. 너무나도 억울한 일을 검사라는 사람마저 무시하는 경우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국가, 장애인이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 또 우리를 위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토론. 이런 것들을 모두 헌법재판소가 다루어왔다.


이런 헌재이지만 과연 내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재판관들도 자신의 재임 기간 이전과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나는 2009년 모든 일을 중단하고 1년에 걸쳐 헌법재판소를 취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에 관해, 이를 설정하고 주도한 정치에 관해, 무엇보다 이를 심판한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에 관해 이야기한 책이다.


이제 이 원고를 특별한 나라 일본으로 정성을 담아 보낸다. 나의 젊음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제공한 곳이다. 스무살 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통해 삶과 사회를 고민했고, 다치바나 다카시의 논픽션에서 취재 기법을 배웠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전반부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일본은 변호사 김경득의 나라이다. 와카야마현 출신의 그는 최초의 외국적 변호사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사법연수소에서 국적 변경을 요구 받았다. 하지만 김경득은 한국인으로 일본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고, 이듬해 뜻을 이뤘다. 당시 그를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이 이즈미 도쿠지 최고재 임용과장이다. 이 책은 김경득의 아들을 비롯한 후배 변호사들이 번역하였으며, 그들을 있게 한 이즈미 전 최고재 판사가 추천하였다. 더 없는 영광이다.


일본과 한국은 오랜 역사를 두고 영향을 주고 받았다. 나 자신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으며, 지금은 한국 드라마가 일본 젋은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법학분야를 보면,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한국 대법원 민·형사 판결의 이론적 토대였다. 하지만 헌법 분야는 다르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세계적인 기관이다. 이 책을 추천한 정종섭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헌법재판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브랜드라고 말해왔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본 독자에게 부디 대한민국 정열의 현대사가 흥미진진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