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심리학> 칼럼니스트이자 번역가 정재곤 인터뷰


Q저술가, 학생으로 프랑스에서 바쁘게 지내실 듯합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근황을 들려주세요.

A저는 현재 프랑스 로렌 지방의 한 대학에서 다문화 심리치료를 공부 중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다양한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또 실습에 임하고 있습니다. 바깥으로 드러난 제 목표는 프랑스 심리치료사 자격을 따는 것이지요. 저로서는 두 번째 프랑스 유학입니다. 첫 번째는 프랑스 파리에서 근 10년간 프랑스 문학과 정신분석학을 공부했고, 이번 유학은, 글쎄요, ‘인생 2모작’이라고나 할까요? 젊어서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주로 이론을 통해서 만났었다면, 지금은 그 실천에 전력하고 있는 셈입니다. 올해로 제 나이 만 54세, 학생 신분으로만 18년째 대학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어렵게 결정한 두 번째 모험이지요. 현재의 제 목표가 젊은 유학 시절과는 다른 만큼, 제가 하고 있는 공부도 공부지만 가능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으니까요. 더욱이 심리치료의 현장에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좋은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저 자신부터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요. 저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지요. 우리 사회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항상 바깥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Q궁리닷컴에서 일주일에 한 차례씩 연재 중인 <화요일의 심리학> 칼럼을 독자들에게 자세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제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심리치료의 다양한 국면뿐 아니라, 제가 이제까지 겪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다양한 경험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그 범위에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뿐 아니라, 문학이나 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도 포함됩니다. 사실 알고 보면, 거의 모든 문화현상, 사회현상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으니까요. 예컨대 셰익스피어, 프루스트,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등의 작가들은 인간 탐구의 거대 산맥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흔히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하지요. 프루스트 안 읽고 죽으면 너무나 억울할 거라고요……. 인간의 삶, 인간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또 기막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어지럽고 혼탁한 요즘 세상에서 피난처를 찾는다면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한 소설들입니다. 어쩌면 제 칼럼의 핵심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소개에 있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달라 보이는 여러 현상들의 관계를 새로이 엮어보려는 시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화요일의 심리학> 칼럼은 어떻게 집필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A궁리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궁리닷컴에 이굴기란 필명으로 멋진 글을 쓰는 이갑수 사장님과는 오랜 친구 사이이자 제가 흠모하기까지 하는 시인입니다. 이굴기 님이 주로 감성적인 멋진 문장을 쓰는 데 반해, 제 글은 글의 성격상 주로 이성적이고 분석적이지요. 두 종류의 글이 한 자리에 선보인다는 데 우선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이굴기 님의 필력을 따라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개인적으로,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 글을 써왔다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여러 종류의 글을 써오긴 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지 않고,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중이란 점이 다를 뿐입니다.



Q그동안 차이, 더블 바인드, 동성애, 처녀시절 장례식 등의 주제로 칼럼을 풀어내셨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주제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각각의 주제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A제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다문화 심리치료인 만큼, 아무래도 문화 그리고 문화 차이에 관련한 글들이 많겠지요. 더불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고통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인 이유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해결은 아닐지언정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단초를 제공하는 글들이 주조를 이루리라 여겨집니다. 더불어, 문학에 관한 글들도 간간히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풍요롭게 읽힐 수 있는지…… 그리고 저는 아이들 교육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교육 경험이 적지 않은 만큼, 심리학적 관점에서 특히 젊은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를 업으로 하는 분들은 쉽게 공감하시겠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는 할 수가 없습니다. 몽테뉴를 흉내내자면, 제 글의 주제나 제재는 온전히 저 자신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Q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친 후 긴 시간을 출판을 비롯한 문화영역에서 활동하시다, 2011년 홀연히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특별한 까닭이나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제가 만 52세의 나이에 또 다시 두 번째 유학길에 올라, 현재 3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컸습니다. 첫 유학은 한창 젊은 나이인 28세에 떠나, 38세에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귀국했지요. 귀국 후 15년 만에 두 번째 유학을 감행한 셈입니다. 첫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오랫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 돌아오는데 무슨 적응이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습관의 힘에 좌우되는 존재이니까요. 귀국하고 나서 마치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있는 양 옥죄는 듯한 느낌에 계속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학도 제가 프랑스에서 맛본 분위기와는 달리, 어딘가 관공서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프랑스화되었다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이도저도 아닌 변경인…… 이를테면, 제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정체성 혼미상태를 겪었다고 여겨집니다. 개인적인 가치 판단도 작용했을 테고요. 제가 결국 다문화 심리치료를 선택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지요. 우선 저 자신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으니까요. 물론 지금의 제 입장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아무튼, 다른 문화권과의 접촉이 점차로 많아지는 오늘날, 다문화 심리치료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분야란 생각이 듭니다.



Q50대의 적잖은 나이로 다시금 대학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대부분이 20대의 젊은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그리고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일들을 들려주셔도 좋겠습니다.

A프랑스에서 심리치료사 자격을 얻으려면 심리학 석사와 박사과정 코스워크에 해당하는 과정 이수뿐 아니라, 밑으로는 심리학 학사학위가 필수입니다. 두 번째 유학을 꿈꾸던 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죠. 제가 이미 프랑스 대학에서 문학과 함께 정신분석학을 근 10년간 공부하긴 했지만, 공식적인 학위라곤 기껏 불문학 박사학위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심리학 학사과정 마지막 학년으로 오려면 오라는 입학허가서를 받고 나서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50세도 넘은 이 나이에 심리학 학사학위라니…… 그것도 20세를 갓 넘긴 프랑스 학생들과 어울려서? 아무튼 한 번 부닥쳐보자는 심정으로 결국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안사람의 폭넓은 이해와 양해가 없었더라면 생각해볼 수도 없는 모험이었지요. 비자가 늦어 입학 허가를 받은 마지막 학년의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프랑스에 도착한 나는 7개월 만에 심리학 학사학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간신히 평균을 넘긴 총점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프랑스 학생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지요……. 머리 희끗한 동양인이, 그것도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와서 최소한 3년 걸리는 학사학위를 가뿐히 마치다니…… 하지만, 실상은 이러합니다. 시험은 주로 젊은 학생들에게서 빌린 노트로 준비하고, 거의 모든 시험이 논술형이라 매 시험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한 미니 답안지를 암기하여 그대로 베끼는 식으로…… 체력은 딸리지만, 한국에서 달고 닦은 요령이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요. 나이 든 외국 학생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이 아니라, 원칙대로 하는 것이 바로 선진국이란 깨달음을 이때 얻었지요. 이때의 제 모험담을 언젠가 책으로 쓰고자 합니다. 아무튼, 나이 때문에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이 늦은 유학생활 중에 제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다고 여기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여기면 할 수 없는 거죠.

사실 프랑스 젊은 학생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무리 20대 초반의 젊은 학급 동료들이지만, 지금도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리고 분야가 분야인 만큼 저처럼 나이든 학생들이 간간히 있어서 무척 다행스러웠습니다. 심리치료가 학식만으로는 부족하고 무엇보다 삶의 경험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처럼 나이든 학생들이 거의 성적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사실입니다.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척 많습니다. 일례로, 제 생일날을 잊지 않고 모여 한국어로 쓴 생일축하 카드를 건네고 한국어로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러준 젊은 프랑스 학생 동료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물으니, 자기들끼리 인터넷을 통해 한국어 인사말과 노래 가사를 익혔다고 하더군요…….



Q한국과 프랑스 문화는 특히 어떤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A이 칼럼에서 소개하는 거의 모든 글 안에 이 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프랑스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개인주의’로 대변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고, 그 무엇보다 내가 우선한다……. 이기주의와는 다른 개념으로, 내가 중요한 만큼 남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바탕을 이루며, 따라서 권리만큼이나 의무가 강조되는 가치관이죠. 우리의 공동체적 사고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물론 어떤 가치관이 더 올바르고 바람직한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밖에, 서구인들의 풍속이나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도 이러한 개인주의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Q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관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의 차이든 간에, 차이에 대한 우리의 거부반응은 거의 본능적입니다. 극복하기 대단히 힘들죠. 극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차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비이성적인 요인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이 최상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험과 끊임없는 학습이 뒤따라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Q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A심리학, 정신분석학 등의 전공서적을 제외한다면, 주로 문학서적을 좋아합니다. 문학도 제 전공이니 이도 제외한다면, 재미있는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군요. 대답치곤 좀 엉뚱해 보이지만, 재미없는 책은 잘 읽히질 않습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재미는 통속적인 재미하고는 다르겠지만요. 영국의 유명한 정신분석가 위니코트는 대개의 책을 반 페이지도 못 읽는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대개의 책들이 거짓으로 가득한 데 어떻게 한 페이지 이상 계속 읽을 수 있겠는가 한탄하던 대목이 생각납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독서량이 많은 편이라, 굳이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 답하기가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들어보라 한다면 ‘채근담’을 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크기의 ‘창덕궁 화보’를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시간과 꿈을 간직한 곳이거든요. 현재 제 곁을 지키고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들을 열거하자면, ‘로렌 지방 요리’, 미슐레의 ‘잔 다르크’,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포크너의 ‘모기’, 이성복의 ‘래여애반다라’ 등입니다. 그리고 책은 아니지만, 프랑스 신문인 ‘르 몽드’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두 시간씩 정독하고 있습니다.



Q앞으로 어떤 작품을 집필 혹은 번역하고 싶으세요?

A우선 지금 게재 중인 글들에 혼신을 쏟고자 합니다. 현재 저의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한, ’50 넘은 중년남자의 해외 유학기’도 한 번 써보고 싶고요. 꽤 재미있을 듯싶은데…… 그리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여행에 관한 글들도 써보고 싶습니다. 번역하고 싶은 책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언제 어떤 바람이 불는지, 그때 가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Q끝으로, 궁리닷컴의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미진한 제 글이 좀더 좋아질 수 있도록 채찍질을 아끼지 말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정재곤 :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문학과에서 불문학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 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 8대학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꿈 이야기 – 텍스트아날리즈로 읽기”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여러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쳤고 샘터사 주간, 사이에 기획위원, 생텍쥐페리 재단 한국 지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52세의 나이에 또 다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현재 로렌대학의 심리치료사 과정을 밟고 있다. 여러 논문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화본) 등 역서 30여 권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