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든 말일지는 모르지만 한 줌의 후추만으로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 지중해의 용감한 많은 젊은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먼 항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양의 물품들과 후추를 바꾸어서 다시 먼길을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 세 척의 배로 떠나 한 척을 풍랑에 잃는다 해도 그것은 충분히 부자가 될 정도로 남는 장사였고, 또 그만큼 후추는 귀한 물건이었다.
기원전 400년 유럽에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후추가 전해졌을 때 그것은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불로장생의 약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후추에는 단순히 음식맛을 돋구어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식품의 보존과 관련된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에 약간 상하기 시작한 고기에 후추를 뿌려 상한 냄새를 중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라비아 상인들은 중간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고, 이 일로 인해 유럽인들은 직접 뱃길을 통해 후추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중해의 이탈리아인들 특히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주로 해상 후추 무역을 주도하게 되었고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 다른 유럽의 국가들은 이탈리아의 독점을 피해 다른 항로를 찾아 나서야 했고, 어쩌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데에도 이러한 목적이 한몫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장 치엔(張鶱)이 비단길을 통해 가져왔다고 전해지는데 확실치는 않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때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에서 그 명칭이 보이는데 아마도 송나라를 통해 들어온 듯하다.
오늘의 문화를 바꾼 물건이야기 - 장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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