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깨비



여행 첫째 날:1968년 7월 8일 월요일 [ZAMM 1장부터 3장까지]

여정: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를 출발하여 레드 리버 밸리를 거쳐 노스다코타 오크스에 도착

숙소:E&I 모텔 (오크스 소재)

여행 첫째 날이 이제야 저문다. 뜸도 많이 들였고 첫째 날이라는 부담에 긴장도 몰린다. 늘 먼 여행의 첫날은 준비하느라 잠 설친 피로에 긴장한 여독까지 몰려 경황 없고 피곤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도 첫 사십여 쪽의 탐색을 마칠 때가 되었다. 읽을 만한 책이며 내게 맞는 책인지 살피고 과연 그러하다면 그 세계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 화자와 더불어 그 여정에 올라야 한다. 이제 내가 이 책의 세계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지 오늘 이야기로 매듭 지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미 오래 전 결정하였다. ZAMM의 세계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기로.


여행 첫째 날, 아들이 정신적 위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같이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화자는 조심스럽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 대한 기민한 결론을 내리고 그에 대한 새롭고 기발한 조치를 취하는 게 먼저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여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게 최선이다. 원인을 서둘러 찾고 새로운 조치에 집착할수록 정신은 경화되기 십상이다. 정신이 경화되기 시작하면 사고는 진부해지고 표현은 상투어[cliché]나 기성관념[idées reçues]으로 범벅이 표현에 클리쉐가 스미고 판단에 도그마가 드리워지면 내 정신의 수로는 막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탐구에 다름아닌 여행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자신의 의심은 “무엇이 새로운가?”보다 “무엇이 최선인가?”에 맞춰질 것이며 이는 “폭보다는 깊이에 관한 질문”이 될 거라고.



이번 쇼토쿠아에서 나로선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의식의 수로를 낼 생각은 없다. 다만, 생기 없는 사고와 닳고 닳은 진부함의 찌꺼기로 막혀버린 옛 물길을 파낼 생각이다.1



그런데 여기서 화자가 찌꺼기 토사로 막혀버린 옛 물길을 다시 내고자 사용하는 방법은 “조금의 준설(some channel deepening)”이다. 강바닥을 더 파낸다는 점에서 준설은 준설이나 여기에 “좀(some)”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그런데 ‘좀’의 기준이 애매하다. 얼마큼 파내는 게 ‘좀’일까? 일상에서 ‘좀’이라는 표현을 쓰면 숫기 없고 우유부단해 보인다. 그런데 화자는 정도의 문제에 민감하다. 다음의 표현들을 보자.



자신의 모터사이클을어느 정도관리해야 하느냐의 문제2


이 여행에서 우리가 주목하면서조금이나마탐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 존재와 인간 행위의 기이한 분리 속에서 이 20세기에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3



‘좀(some)’, ‘어느 정도(how much)’, ‘조금이나마(a little)’과 같은 표현은 양극단을 잘라내어 무게 추의 중심을 모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의도가 화자에게 있다면, 무엇 때문에 화자는 이런 부분에 예민한 것일까? 이미 그가 양 극단의 폐해를 뼈저리게 겪은 바 있어서가 아닐까? 화자는 양극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너무 깊이 파여서 어떤 변화도 새로움도 일지 않는 사고의 물길4


양쪽 둑 경계를 무너뜨리며 본래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채, 낮은 곳을 범람하고 높은 곳을 서로 끊어 고립시키는, 오늘날 보편적인 의식의 물길5



전자의 극단은 18세기 이후 약 두 세기에 걸친 이성의 시대에서 나타났던 모습으로 오늘날의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이 물길의 폐해는 20세기 중반의 아우슈비츠와 원자폭탄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후자의 극단은 오늘날의 상황인데, 전자에 대한 극단적 반발로 옛 것을 남김없이 처분하려는, 성급한 이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레발이다. 이 물길은 비트와 히피를 낳았고 뉴에이지와 포스트모던을 낳았다. 하지만 어느 때고 양극단은 인간의 정신을 정체시키고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화자는 이 둘을 고스란히 겪었다. 이럴진대 어느 정도의 준설이 온전한 정신의 물길이 유유히 흐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경계의 긴장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화자는 “조금의 준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거기엔 새로운 물길이 아닌 기존의 물길을 이용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무엇보다 문제 해결에 더 바짝 다가서는 길은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제 어떤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정해졌다. 마음공부에서 자세는 사뭇 종요롭다. 여행 또는 탐구의 첫날, 화자는 그 자세잡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마음의 정좌를 하였으니 화자는 야단법석의 형태로든 참선의 형태로든 자신의 첫 쇼토쿠아를 잡아들면 된다. 실제로 여행 첫날, 화자는 첫 쇼토쿠아를 잡는다. 그것도 1장에서 그 주제까지 명시하는데, 첫 주제는 ‘불화(disharmony)’다. 그런데 필자로선 아직 아니다. 네 편의 글로 여행 첫날의 이곳 저곳을 살피지만, 필자는 이 쇼토쿠아를 둘째 날 여정을 둘러보기 시작하는 5회에나 가서야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글까진 쇼토쿠아를 준비하는 얘기만 하고 여행 첫날을 갈음할 생각이다. 아직 우리에겐 제대로 쇼토쿠아를 하기 위해 꼭 짚고 가야 할 얘기가 남았다.


무엇보다 화자는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일을 얘기”하거나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를 하기로 한다. 무언가 자꾸 내 마음에 떠오르고 그것이 왠지 중요해 보인다면, 무언가에 걸려 있음이며 자연스레 흘러야 하는 게 막혀 있음이다. 우리가 몸에 통증을 느낄 때처럼 그런 감은 나쁜 것이기도 하며 좋은 것이기도 하다. 내 몸에 문제가 있으니 나쁜 소식이요, 더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니 좋은 소식이다.


탐구의 실마리는 누구나 이러하다. 의심이다. 무언가 자연스레 흐르지 않거나 멈추어 있는 데서 의심은 비롯한다. 의심 없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없으며 의심의 크기만큼 길을 간다. 그러나 언뜻언뜻 의심만 도사릴 뿐 어찌할 바 모른 채 손 놓고 있으면 어찌 될까? 진전 없이 반복되는 의심은 우리 정기를 소진시킨다. 끝내 의식을 지닌 듯 보이는 코마에 들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화자는 먼저 그 의심의 자리를 살피는 가운데 그 의심을 풀어나갈 방도를 모색한다. 그런데 일찍이 화자는 큰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의심의 끈을 한시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파국에 이르렀다. 이번 여행에 그에겐 두 갈래 큰 의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끝내 풀지 못하고 있던 근본적 의심이요, 다른 하나는 이전에 품었던 의심의 방식에 대한 의심이다. 이번 여행을 따라다닐 화자의 이 두 갈래 의심은 우리가 ZAMM의 세계를 여행하는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다시 의심 자체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의심을 명제로 정식화할 수 없으면 의심은 늘 제자리를 맴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고 우리 삶의 생기를 소진시키는 의심의 파편들을 불교에선 번뇌라 한다. 철학이라는 건, 다시 말해 요새 유행하는 말로 ‘인문학’이라는 건 더도 덜도 아닌, 이 의심을 명제로 정식화하는 능력이다. 의심을 명제로 정식화한다는 건 이성이 다룰 수 있는 ‘철학적 탐구과제’로 의심을 전환하는 것인데, 그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디서 시작할 지가 문제다. 그에게 이르려면 뒤로 또 뒤로 물러서야 한다. 뒤로 물러설수록, 더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사소통의 소소한 문젯거리로 보이던 것이 중요한 철학적 탐구과제로 드러날 때까지.6



의심이 깨달음을 향한 발심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까닭은 의심을 의사소통의 소소한 문젯거리로 곧잘 치부하기 때문이다. 의심을 파고 들다 좌절하는 경우는 차라리 드물다. 많은 경우, 의심을 한갓 의사소통의 불화로 여겨 깨달음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의심을 쉽게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심을 소중히 여긴들, 그것을 철학적 명제로 바꾸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의심들은 철학적 탐구과제가 되기 전에 신화와 미혹의 대상으로 명멸했다. 그렇게 되면 의심을 망각하거나 그 의심과 무관한 것을 실마리로 삼는 잘못을 범하게 되며 이로써 의심은 더욱 기형을 띠게 된다. 망각되었거나 잘못된 실마리에 의해 기형화된 의심을 화자는 ‘허깨비(ghost)’라 부른다. 의심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실상이 아닌 것을 실상으로 파악하면 그게 곧 ‘허깨비’다.


그런데 서구 문화에서 허깨비란 무엇인가? 화자는 ‘질료(matter)’도 없고 ‘에너지’도 없으며, 오직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아들에게 설명한다. 이 규정은 당연히 서구 과학적 관점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허깨비의 존재를 믿는 것은 ‘비과학적(unscientific)’이다. 서구 과학적 관점에선 허깨비에 대해 어떤 에누리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다일까? 서구 문화에서 ‘허깨비’라고 규정하는 그 기준 자체가 더 허깨비스럽지 않은가? 어떤 의심을 왜곡하고 그것을 영원히 망각하게끔 만드는 게 ‘진짜’ 허깨비가 아닌가?


그러나 화자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다. 전기요법이라는 극단의 정신과 치료를 받은 화자는 순응화된 존재다. 이제 그는 사회통념을 거스르지 않는 ‘정상인’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여행 첫날, 파이드로스라는 ‘허깨비’가 그 앞에 나타났다. 완전히 망각했다고 여겼던 그가 나타났다. 하지만 화자의 정신을 검열하는 장치는 아직 잘 돌아가고 있다. ‘허깨비의 존재를 믿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기껏 화자가 답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런 식이다.



모든 일에 철저히 과학적인 게, 그러니까 허깨비가 되었든 과학법칙이 되었든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게 가장 좋단다. 그러면 별 탈 없을 거야. 믿을 수 있는 거라곤 거의 남아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게 과학적인 거니까.7



말장난으로 은근슬쩍 ‘과학적’이라는 태도를 비꼬고 있다. 이렇게라도 용감하게 이죽거릴 수 있는 것은 “술, 피로 그리고 숲에서 부는 바람(the whiskey, the fatigue and the wind in the trees)” 때문이 아닐까라며 화자는 어설픈 핑계를 댄다. 그는 그 집요하고 열정적인 ‘파이드로스’라는 이름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답변이 못마땅하다. 딴에 진지한 표정으로 진정 무언가를 알고 싶어하는데 말이다. 결국 화자는 아들 때문에 전기요법 이후 그에게 금기였던 것을 다시 건드리기 시작한다.



유럽인이든 인디언이든 허깨비를 믿는 사람들을 무식하다고 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그 동안 사람들은 과학적 관점에 맞춰서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원시적이라며 없애버렸지. 결국 오늘날 사람들 중에 허깨비나 정령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식쟁이나 정신병자 취급 받기 딱 좋아. 허깨비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어.8



서서히 화자는 허깨비에 대한 서구 문화의 단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니, 이 의심은 이제야 비로소 생겨난 의심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의심이다. 오래 묻혀 있다가 다시 살아난 의심이다. 화자는 과거의 인간에게서든 오늘날의 인간에게서든 각자의 사고 맥락에서 허깨비와 정령은 존재하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허깨비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한다. 이는 화자에게 있어 일종의 ‘신앙 고백’과도 같다. 그렇다면 서구 문화에서 실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과학법칙도 일종의 허깨비일 뿐이다. ‘중력의 법칙’도 아이작 뉴턴이 발견하기 전에는 허깨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속한 문화 속의 허깨비는 실재며, 다른 문화 속의 허깨비는 말 그대로 ‘허깨비’일 뿐이라는 식의 태도를 비판한다. 이쯤 되면 이제 허깨비를 다시 정의할 도리 밖에 없다.



허깨비와 마찬가지로 자연법칙도 인간의 발명품이라네. 논리법칙이나 수학법칙도 그렇고. 온 세상이 다 인간의 발명품이지. 그 세상이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생각마저도 말이야. 인간의 상상력 밖에 존재하는 세상이란 없다네. 그러니 모든 게 허깨비지. 고대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나의 허깨비로 보았어. 세상은 허깨비에 의해 돌아가는 거라고. (…) 우리의 상식이라는 건 과거로부터 존재해왔던 수천 수만의 허깨비에 다름이 아니라네. 그 허깨비들은 계속 늘어나지. 산 자들 가운데 제 자리를 잡으려고 애쓰면서 말이야.9



급기야 모든 것이 다 허깨비다. 질료와 형상이 모두 허깨비다. 우리의 허깨비와 그들의 허깨비를 나누어서 보려 한들 모두 허깨비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허깨비의 위상은 모두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대상인 정신이 있어 허깨비는 그냥 허깨비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건 허깨비에 기대고 있고 그 허깨비는 정신과 상호작용을 한다. 정신이 허깨비를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 처음 자리를 만들어줄 때 사용하는 게 바로 ‘의심’이다. 선 수행에서 초발심[初發心]은 의심이다. 이제 화자는 그 옛날 자신에게 화근이 되었던 생각의 근본자리를 다 드러내었다. 파이드로스, 그 허깨비 때문이라고 뒤늦게 발뺌을 해보려 하지만, 이미 그것은 다시 산 자들 가운데 제 자리를 잡고 있다. 






1.  In this Chautauqua I would like not to cut any new channels of consciousness but simply dig deeper into old ones that have become silted in with the debris of thoughts grown stale and platitudes too often repeated. (8)


2.how muchone should maintain one’s own motorcycle (35:3)


3.On this I think we should notice it,explore it a little, to see if in that strange separation of what man is from what man does we may have some clues as to what the hell has gone wrong in this twentieth century. (28:4-5)


4.(…) the channels of thought have been too deeply cut and no change was possible, and nothing new ever happened (8)


5.Now the stream of our common consciousness seems to be obliterating its own banks, losing its central direction and purpose, flooding the lowlands, disconnecting and isolating the highlands (…) (8)


6.That’s the problem, all right, where to start. To reach him you have to back up and back up, and the further back you go, the further back you see you have to go, until what looked like a small problem of communication turns into a major philosophic enquiry. (68)


7.It’s best to be completely scientific about the whole thing and refuse to believe in either ghosts or the laws of science. That way you’re safe. That doesn’t leave you very much to believe in, but that’s scientific too. (32)


8.It’s completely natural (…) to think of Europeans who believed in ghosts or Indians who believed in ghosts as ignorant. The scientific point of view has wiped out every other view to a point where they all seem primitive, so that if a person today talks about ghosts or spirits he is considered ignorant or maybe nutty. It’s just all but completely impossible to imagine a world where ghosts can actually exist. (33)


9.Laws of nature are human inventions, like ghosts. Laws of logic, of mathematics are also human inventions, like ghosts. The whole blessed thing is a human invention, including the idea that it isn’t a human invention. The world has no existence whatsoever outside the human imagination. It’s all a ghost, and in antiquity was so recognized as a ghost, the whole blessed world we live in. It’s run by ghosts. (…) Your common sense is nothing more than the voices of thousands and thousands of these ghosts from the past. Ghosts and more ghosts. Ghosts trying to find their place among the living.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