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MM과의 만남


소소한들 사소할까, 만남이란 게. 사람을 만나든 세상을 만나든. 사람과 세상을 두루 깊이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아무래도 책이다. 물론 좋은 책이다. 좋은 책으로 만나는 사람과 세상은 결코 소소하지 않을진대 문제는 그런 책 만날 길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 드문 건 아니나 그것을 읽어야 하고 읽을 수밖에 없는, 때와 곳이 맞아 떨어지는 인연이 쉬 찾아오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 곳과 때를 바투 잡아주는 건 다시 사람이다. 당연히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되 되도록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라면 그와의 만남으로 내 독서의 폭과 깊이가 자랄 터이다.


로버트 피어시그(Robert M. Pirsig)와 그의 책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이후 ZAMM으로 표기)을 만난 고비에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공부를 한 이였다. 오래 전, 그는 ‘과학 괴짜들’ 사이에서 높이 치는 책이라며 철학이니 문학이니 하는 데 관심이 많던 내게 ‘ZAMM’을 권했다. 혹하여 찾아보니 그 무렵 두 종의 번역본이 있었다. 대운당에서 출간한 『모우터사이클과 禪』(1981)1과 고려원에서 출간한 『선을 찾는 늑대』(1991)였다. 그런데 난 『선을 찾는 늑대』라는 책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서점에서 몇 번이나 집어 들었다 말곤 하던 책이었다. 그런데 두 번역은 번역 수준을 떠나 들어낸 부분이 너무 많은 축약본이거나 발췌본이었다. 『선을 찾는 늑대』가 그나마 형편이 나았으나 어느 쪽이든 이런 번역본에 기대서는 책을 온전히 읽긴 어려울 듯했다.2


어쨌든 친구의 권유가 거역할 수 없는 인연이 되어 난 우여곡절 겪으며 책을 다 읽었다. 애써 영어 문장으로 읽어야 했고 그 영어 문장에 실린 내용도 만만치 않아 거듭거듭 새기며 읽어야 했다. 다 읽고서도 몇 차례 전체 되돌이를 해야 했다. 대번에 깊이를 가늠할 정도는 못 되어 너비로만 보건대 그가 비유로 끌어오는 영역은 참으로 넓었다. 처음엔 지적 허영에 빠진 저자가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을 여기저기서 끌어와 엮은 책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한 번 읽고 그런 판단을 내려 영원히 덮어버리기엔 왠지 모를 여운이 깊었다. 호흡에서 뒤쳐지지 않고 최대한 그를 다시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가 말하는 ‘정신의 고산지대’까지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책으로 길 읽기>라는 칼럼을 준비하며 마땅한 텍스트를 고민할 때, 그 깊고도 넓은 여정을 꼭 내 손으로 다시 그려내고 싶은 첫 번째 책이 되었다.


여정 초반 부자의 모습. 그들이 탔던 모터사이클은 Honda 305 모델이다.


“모터사이클 위에 올라타고 휴가 여행을 떠나면 아주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된다. 자동차 안에서는 늘 곽 안에 갇힌 상태가 되는데, 거기에 길들여지다 보면 차창을 통해 보는 것이 텔레비전 구경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음을 우린 모른다. 우린 수동적인 구경꾼이 되고, 차창 밖 풍경은 프레임 단위로 끊어져 우리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모터사이클 위에 올라타면, 그 프레임은 사라진다. 만물과 온전히 만난다. 우리는 화면 속에 있으니, 더 이상 멍하게 바라보는 일도 없고 현장감이 우리를 휘감는다.” (ZAMM, 4)


저자 로버트 피어시그는 1928년에 태어난 이래 1974년에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우리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한국 전쟁 직전, 1946년부터 14개월 동안 한국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것이다.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USAMGIK] 소속 사병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경험이 그의 사고와 창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ZAMM은 불혹에 이른 한 남자가 열두 살 된 아들과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한 기록으로 1968년 7월 8일부터 같은 달 24일까지 약 보름 간, 미니애폴리스를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중간에 이틀 간 트래킹도 하지만 주로 모터사이클 위에서 그 여정을 보낸다. 하지만 이는 여정의 한 축일 뿐이다. 여정의 또 다른 축이 있는데 바로 부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가치의 탐구 An Inquiry into Values’라는 여정이다. 결국 제목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여정의 두 축을 각각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길 위의 여정에서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말하고, 가치 탐구의 여정에서 ‘선’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떠난다.


1.이 번역본은 1996년에 한그루 출판사에서 '잊을 수 없는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한다.


2.장경렬 교수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2010)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때였다. 본디 '온전한 번역'이란 형용모순이지만, 선생의 번역은 책에 나온 표현대로 'gumption'을 가지고 '최선의' 번역을 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을 수 없지만, 양과 질에서 방대한 저작을 이리 정확하고 유려하게 옮긴 것을 생각하면 ‘옥의 티’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번역을 위해 모터사이클 정비술까지 직접 익혔다는 선생은 책에 대한 믿음과 번역에 대한 자부심이 어우러져 역자 후기에 이렇게 적는다. '사서 보든 빌려 보든 베껴 보든 빼앗아 보든 훔쳐 보든' 꼭 보라고. 


3.본문 인용은 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 edition (2005)에서 한다. 따라서 쪽수도 이 책의 쪽수를 가리킨다.




* 본 칼럼에서 사용할 이미지는 철저히 출처를 명시할 것이지만, 간혹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 오래 전, 출처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저장 보관하고 있던 탓에 따로 출처를 찾아 밝히지 못하는 것이므로 양해를 구한다. 모든 이미지는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만약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즉시 사진을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