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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가든 파티>를 우리말로 옮긴 정주연 번역가 인터뷰



Q. 독자분들께 소개와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성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모은 에디션F 시리즈에 참여하고 계시지요?

A. 여전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 번역에 함께 하게 돼 뿌듯하고, 세계적인 대작가들의 작품이라 아주 황송한 기분입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아주 먼 작가들이지만 번역작업을 통해 만나고 보니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아 이번 작업이 더 반갑고 귀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에 에디션F 신작으로 소개하는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선-『가든 파티』에는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캐서린 맨스필드가 남긴 80여 편의 단편 중에서 어떤 작품들로 가려 수록하셨는지요?

A. 배경이나 시기, 주제 측면에서 최대한 다양하게 뽑고 싶었고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을 많이 소개하고 싶었어요. 작가 자전적 요소가 많고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한 「서곡」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 남성이 화자인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독일 한 마을의 결혼식과 부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브레헨마허 부인, 결혼식에 가다」, 아라비아 여성 주인공의 하루를 다룬 「뜻밖의 사실」이 그것들이고요. 아울러 국내에 이미 번역돼 있지만 「가든 파티」 「죽은 대령의 딸들」 같은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어서 함께 싣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곡」과 배경과 내용이 유사하고 분량이 많아서 「만에서」를 싣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습니다.


Q.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을 읽다보면, <기생충>이나 <아가씨> 같은 영화 속 아주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뜻밖의 진실’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랄까요? 이번 단편집에 「뜻밖의 사실」이라는 단편도 수록되어 있지요. 맨스필드 작품의 매력을 조금 더 들려주신다면요?

A. 사실은 말씀하신 영화들을 보지 않았습니다만 아마 숨겨진 진실이나 깨달음이 별안간 드러나는 찰나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맨스필드의 작품은 아귀가 아주 잘 맞게 짜여 있지 않고 문장의 의미가 불분명하기도 합니다. 인물들도 집안일을 하는 여성들이거나 열등한 존재이거나 심리가 불안정하고, 세련되게 자의식을 표출하기보다는 한탄과 푸념, 자기 고백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론 숨기려 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나 깨달음이 돌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더욱 인상적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이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이전과 전혀 다르게 느끼면서 점점 어딘가를 향해서 가는 것. 독자로선 그런 대목에서 그야말로 맨스필드가 선사하는 예술적 쾌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Q. 캐서린 맨스필드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어떤 이유로 에디션F의 작가로 소개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맨스필드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입니다. 개인사를 보면 연애도 그렇고 결혼과 이혼, 낙태와 유산, 가족의 죽음 등을 겪었고 서른네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했고요.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다지 행복한 인생이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문학계에서도 칭찬보다는 욕을 더 많이 들었고요. 식민지 출신인 데다가 성적으로 문란하다, 편집자인 남편을 이용해 문단에 자리를 차지했다는 등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여 편이나 되는 단편을 써내려갔고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불굴의 작가였던 거지요.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으면, 그리고 영국 출신이었으면 영문학사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지도 모르고요. 또 맨스필드가 남자였다면, 그래서 이 재능과 기교로 남성의 일상과 사유와 감각을 작품에 담았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불운한 작가가 남긴 것들 중 「가든 파티」만 국내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전혀 결이 달라 보이지만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Q. 문학 장르 중에서도 단편소설을 번역한 소회를 들려주세요. 번역과정 중에 고민했던 점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A. 단편소설은 흔히 인생의 단면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들 하는데요. 그래서 단편에서는 설명되어야 할 것이 생략되고 숨겨져 있고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결락이나 생략이야말로 작품의 매력일 테지만 번역자에게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다른 문학작품도 그렇겠지만 번역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 가장 어렵고요. 저는 과학책을 번역하고 나면 스스로가 엄청 똑똑해진 것 같은 착각(내용을 금세 잊어버립니다)에 빠지고 경영서를 읽고 나면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지닌 것 같이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문학은 그 내용을 잊고 난 후에도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고 작가의 글을 번역하는 것뿐인데도 독자에게 미적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좀 더 보람이 있다고 할까요. 「가든 파티」의 경우 첫 문장이 and로 시작돼서 꽤 오래 컴퓨터의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고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일, 로라의 “인생이...”(Isn't life...)라는 말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데 그 불명확한 뉘앙스를 번역으로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Q. 이번 작품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단편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 「서곡」을 꼽을 수 있겠어요.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다소 지루한 느낌으로 ‘사건’이 언제 일어나나 ‘갈등’은 어디서 폭발할까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종류의 작품이 아니더라고요. 쓸데없어 보이는 바람과 꽃과 빗방울, 새소리 같은 것의 묘사를 따라가고 각 인물들의 내면을 짚어가다 보면 가슴이 묵직해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외딴 시골집에 가족들이 저마다의 인생을 짊어지고 사랑하면서도 미묘하게 부딪히고, 함께 있으면서도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정답고, 또 정착해 있으면서도 부유한 것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로, 세상의 축도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Q. “내가 원하는 것은 정원, 작은 집, 풀, 동물, 책, 사진, 음악. …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 캐서린 맨스필드가 일기에 기록한 글이라고 하는데요, 맨스필드의 작품에는 정원의 꽃과 열매, 집 안의 사물들같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묘사가 탁월합니다. 작품을 읽고 짐작하는 것일 테지만, 맨스필드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A. 맨스필드에게 글쓰기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면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배제당하고 실패하고 손가락질당하는 인생들의 기록이고 그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여성적이고 너무 사소하다고 비판을 받아도 그것들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래서 「서곡」에 나오는,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거의 불모의 식물 알로에처럼 가시가 돋친 채 발톱을 땅에 박고 외부의 어떤 시련도 이겨낼 꿈을 꾼 것은 아닐까요.

Q. 에디션F 시리즈의 이디스 워튼, 캐서린 맨스필드, 케이트 쇼팽, 이 세 작가의 단편선 작업을 다 마무리하면, 다음 에디션F 작품으로는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싶으신지요?

A. 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소위 순문학 이외의 장르를 다루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SF나 미스터리, 호러 장르에도 역시 뛰어난 여성 작가들이 많이 있고, 이 장르와 여성은 한때 하위로 취급받았다는 공통점도 있으니 번역하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고요. 그리고 작가들의 편지나 일기 같은 개인적인 글도 작품과 함께 엮어보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 세 작가 정도라면, 에디션F 시리즈에서는 힘들겠지만, 작품과 편지, 일기, 에세이 등을 다 수록한 전집이 출간되어야 그 무게에 걸맞지 않을까 합니다.


Q. 끝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에디션F 후속작들에도 관심 많이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그만 코로나에서 해방되어 여성 작가 이야기든 책 이야기든 아무 이야기라도 침 튀기며 마음껏 함께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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