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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나의 바느질 수다>를 펴낸 천승희 작가 인터뷰



Q. 이번에 펴낸 『나의 바느질 수다』는 에디션L 시리즈 첫책이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삶에서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준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선 독자들에게 첫인사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천승희입니다. 저는 살림하며 딸 둘을 키우고 있고요. 집에서 출판 편집 일도 하고 있습니다. 책모임이나 마을 활동, 자원봉사 들을 하러 열심히 나가기도 하고요. 주위 친구들한테는 틈만 나면 바느질을 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바느질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소개해 올리자면 저는 ‘동네 아줌마’이지요.


Q. ‘바느질’이라는 단어가 작가님의 삶에 중요하게 자리잡은 계기는 언제부터인가요? 이 책을 써내려갈 때 특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요?

A. 아홉 살 때 처음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실은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실컷 뛰어놀지 못했어요. 그래서 책 보고 그림 그리고 바느질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지요. 어른들한테 잘한다고 칭찬받으면서 바느질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학교 다니고 직장생활 하면서도 틈틈이 바느질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방학 때 만들기 숙제도 별 고민 없이 바느질을 해서 가지고 갔고,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친구들 줄 선물을 만들었지요.

바느질이 제 각별한 친구가 된 것은 아이를 낳게 된 후예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느질할 시간이 생겼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 수 없으니 바느질하며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책을 쓰면서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는 바느질 장인도 아니고, 잘나거나 무언가를 이룬 사람도 아닌데 내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하고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내었지요. 그래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새로 만난 친구한테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쓰기로 했습니다.


Q. 할머니-엄마-작가 자신-딸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오래전에 봤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이 여성들에게 ‘바느질’은 세대별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A. 저희 외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아이들을 낳아 키우셨지요. 식구들 옷가지나 살림살이들을 모두 바느질해 지으셨고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요. 엄마는 이십 대에는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다고 해요. 종이에 디자인을 그려 가서 주문을 했다고요. 살림을 하면서는 늘 헌 옷들을 수선하고, 구멍 난 양말을 깁고, 이불 홑청을 꿰매셨어요.


할머니와 엄마 세대에는 바느질이 고단한 일이었을 거예요. 할머니와 엄마와 달리 우리 세대의 바느질은 꼭 필요하고 못 해선 안 되는 그런 기술은 아니지요. 집안에 반짇고리를 마련해두지 않는 집도 많고요. 직접 만들지도 과정을 지켜보지도 않으니 바느질하는 노동과는 단절되었지요.

저는 엄마한테 배운 바느질을 사십 년째 잘 써먹고 있고요. 엄마가 하던 것처럼 그리고 아마 할머니가 하던 것처럼, 낡고 오래된 것들을 고쳐서 쓰고 있고, 정성을 담아 지은 것들을 식구들에게 주고 있지요. 아이들한테도 차근차근 가르쳐줄 생각이에요.


Q. 바느질을 하면서 삶의 패턴이 자연스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을 지향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물건들을 재활용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존재감을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좀 들려주신다면요?

A. 바느질해 물건을 만들어 쓰다 보니, 그것들이 낡아도 쉽게 버리질 못하겠더라고요. 밖에서 사온 물건들도 누군가 애써 만든 것들이지요. 가난한 나라 소녀들이 밤잠 못 자고 재봉틀을 돌리고 실밥을 정리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해내는 옷에도 사람 손길이 여간 들어가지 않아요.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환경이 오염될까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 정성껏 만든 물건들이 오랫동안 잘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니 물건을 오래오래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더구나 자라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더 그렇지요. 그래서 안 입는 옷들을 뜯어서 다른 걸 만들고 그랬습니다. 가장 쉽게는 옷을 고쳐 입는 것이지요. 아이들 원피스가 작아지면 밑단에 다른 천을 대 길이를 늘려서 더 입고요. 긴 바지가 낡아서 무릎이 떨어지면 잘라서 반바지로 만들어 입습니다. 얼마 전에는 오래전에 입던 셔츠 깃과 소매를 고쳐 집에서 입기 편하게 고쳤지요.


천을 네모나게 잘라 다른 것들을 만들기도 하지요. 헌 여름 옷을 잘라 머리끈도 만들고, 보자기도 만들어 씁니다. 파우치 같은 것들도 만들고요. 잘라낸 천 조각들을 이어서 큰 천을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옷을 더 입지 못해 버리게 되면 단추와 지퍼를 떼내고 천들을 오려내 상자에 담습니다. 그리고 바느질을 헤서 무언가를 만들게 되면 이 상자에서 천들을 고르지요.


Q. 바느질을 혼자서도 하지만 또 여럿이 하는 모습들도 좋았어요. 독서수업, 벼룩시장 등에서 바느질이 어떤 톡톡한 역할을 맡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요.

A. 아무래도 제가 바느질해서 만든 물건들을 자랑하고 선물도 하고 그러니까 다들 제 바느질에 관심이 많습니다. 바느질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몇 번 같이 둘러앉아 바느질을 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사람들마다 바느질 실력이 다 너무 달라서요. 그래서 천에 쓸 수 있는 마카와 크레용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아서 플래카드를 만들어 보았고요. 간단한 컵받침이나 브로치 들을 만들어 보았어요. 아이들과 함께 광목천에 그림을 그리고 솜을 넣어 인형을 만들기도 했지요. 함께 바느질하면서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오래 전에 배운 바느질이 기억난다면서 기뻐하기도 하고요. 함께한 이들은 바느질해서 직접 만든 물건들을 보고 생각보다 더 많이 뿌듯해하더라고요.


사람들 모으길 좋아하고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친구들과 여럿이 모여 헌 옷들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 궁리를 해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요.


Q. 이 책을 읽고 새롭게 바느질을 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팁을 좀 주신다면요?

A. 일단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간단한 것들부터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바느질이 특별한 기술은 아니지만 시간을 가지고 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홈질이나 박음질도 하고 또 하다보면 손에 익게 되지요. 기본 바느질이 손에 익으면 바느질하는 시간이 더 즐겁습니다. 그리고 바느질해 만든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요.


Q. 앞으로 어떤 책들을 또 집필할 계획인지 미리 귀띔을 좀 해주시고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A. 한 번도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쓰면서 글로 생각들을 정리하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인생 중간쯤에 산 날들을 돌아보고 앞날을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꾸준히 글을 써보려고 해요. 지금은 오래된 물건들에 얽힌 사연들에 관심이 많아서 그 이야기들을 모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에디션L 시리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 기대가 돼요. 다음에 나올 책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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