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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과 월경의 순간들』을 쓴 작가 서윤영 인터뷰


Q ∥ 앞서 펴낸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집宇집宙』 등이 독자들과 건축 본령의 안마당을 함께 거니는 느낌의 책이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동경과 월경의 순간들』은 2012년에 펴낸『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과 함께 건축칼럼니스트 서윤영의 인생의 뜰을 공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게 금지된 공간..』은 서재가 모티브였다면, 이번 신간은 어디에서 집필 아이디어를 얻었는지요? 주로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A 내게 금지된 공간이자 그래서 소망했던 공간이 여성의 서재였듯, 이번 책은 내가 동경하고 그리워했던 도시와 그 도시를 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월경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했던 해외여행에 대한 기억들을 쓴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건축가의 눈으로 본 건축여행기라기보다는 그 도시에서 느낀 생각들을 적어나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스물여섯 살 처음 도쿄를 가던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열 번의 해외여행을 했고 일곱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그 도시에 대한 기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에서는 서재라는 공간의 추구와 변화를 통해 인생의 여러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동경과 월경의 순간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하며 일상에서의 월경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특정 소재들이 인생의 마디마디에서 중요한 변곡점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인생이란 다면적인 것이어서 어떤 잣대를 들이대고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보입니다. ‘내게 금지된 공간’이 결혼 후 서재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생긴 인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책은 여행을 통해서 일어난 시각의 열림과 그로 인한 인생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기적으로도 2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까지 20년 동안의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전작이 여성의 서재와 독서 라는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번 작은 여행과 인생경험이라는 보다 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묘하게도 첫 해외여행인 도쿄 여행을 하던 때가 석사 논문 학기였는데, 그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 저는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그 여행은 논문지도를 받기 위해 일본에 계시던 지도교수님 댁에 머물던, 시각에 따라서는 유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행이었으니 더욱 아이러니합니다. 두 번째 여행은 오사카-교토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 아버지를 잃고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혼의 아내였고 회사에서는 첫 승진을 하였던 터였는데, 그 여행에서 돌아와 제게 소중하고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과 불행이 서로 교호하듯, 얼마 후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전환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 이야기는 이번 책이 아닌 ‘내게 금지된 공간’에 더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만… 저는 제 인생에서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수학에서 건축으로 전과를 한 것이고, 둘째는 설계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쓰는 일을 하게 된 것인데, 그 두 번의 전환이 있기 전 도쿄 여행과 교토 여행을 하였습니다. 물론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란 그저 우연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붙이면 필연이 된다고 황석영 선생이 일별하신 바 있는데, 저 역시 우연에 불과한 그 일도 돌이켜 생각하면 필연처럼 보입니다. 아울러 세 번째 여행인 어머니와 함께 했던 교토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여행이란 일상을 뛰어넘는 비일상의 경험이고, 그래서 결국 일상의 월경까지 초래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월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Q ∥  ‘남탕에서 여탕으로의 이주’를 내 인생의 첫 여행으로 꼽았습니다. 흥미로운 발상인데 그 에피소드를 더 들려주신다면요? 또한 여행이란 바다와 물, 배와 항구라는 이미지가 얽혀 있다고 했는데 그 연유가 궁금합니다.

A 기억하는 첫 여행이 무엇이었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문득 처음으로 여탕을 가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버지를 따라 남탕을 다녔는데 여섯 살이 되어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여탕에 가게 되었습니다. 남탕이 아닌 여탕, 나란히 붙은 목욕탕 건물에서 고작 한 발자국 차이였지만 실로 놀라운 세계였습니다. 더많은 사람, 보다 다채로운 행위,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남자아이를 보았습니다. 이제껏 남탕에서 보아온 남자는남자라기보다 어른이었는데, 여탕에서 처음으로 일고여덟 살짜리 남자아이를 보았습니다. 여섯 살 여자아이의 눈에는 그 아이들이 남자였지요, 더구나 그 아이들은 장난감 배를 가지고 나와 냉탕을 점령하고 앉아 배를 띄웠습니다. 남탕에서의 목욕이 고작 30분 남짓으로 끝나는 단순히 씻는 행위라면 여탕에서의 목욕은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신나는 놀이였고, 아울러 남자의 삶보다 여성의 삶이 훨씬 더 다채롭고 흥겨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행의 경험과 흡사했습니다. 남탕이라는 일상의 영역을 넘어 여탕이라는 비일상으로의 내딛음, 낯선 환경에서 만나는 더 많은 사람과 더 신나는 놀이,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세상, 아울러 여성으로 사는 삶이 훨씬 더 선택의 여지가 많고 행복하다는 일평생의 깨달음, 내가 여행에서 구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일상을 벗어난 비일상의 세계,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깨달음, 그 두 가지만 있다면 한 발자국 너머의 여탕도 큰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월경이겠지요? 더구나 그곳에서 만난 남자아이는, 아니 남자라는 새로운 존재는 평생을 통틀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니 그 또한 동경의 대상 아니겠습니까.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여행이란 항상 물과 배의 이미지가 얽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역시 어머니의 배를 타고 양수를 건너와서 한 평생을 보내다가 다시 배를 타고 황천길을 건너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주의 영원에 비하면70~80년의 인생이나 7박8일의 여정이나 그저 순간에 불과하니, 제목에 쓰인 ‘순간’이란 인생의 다른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Q ∥ 20대 이후 다녀온 도쿄, 베이징, 파리 등의 일곱 도시를 어떤 비유를 들어 표현을 해주신다면요? 그중 도쿄는 특히 애착을 느끼는 도시라고 했습니다. 그곳을 찾아갈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A 도쿄, 교토, 베이징, 파리, 홍콩, 하노이, 이스탄불, 헤아려보니 모두 일곱 도시를 다녀왔습니다.그 도시들은 모두 지극히 사랑했던 곳이자 떠나온 후에도 여전히 그리워하는 곳입니다. 왕자와 결혼한 후에도 가끔 일곱 난쟁이를 생각하는 백설공주의 마음이 이러할까요? 그저 일곱 난쟁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그들에게도 똑똑이, 심술이, 멍청이, 행복이, 재채기, 졸림, 부끄럼 등등 저마다의 이름이 있듯, 일곱 도시에는 저마다의 특징과 이미지가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베이징과 파리를 꼽습니다. 더 이상의 부언이 필요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가 파리이고, 꼭 그에 해당하는 동양의 도시가 베이징입니다. 우연히도 2008년 봄 내도록 아르센 뤼팽의 전집을 읽었습니다.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섬세히 그린 그 책 때문에 실제 파리에서 이른 새벽의 거리를 산책하노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불쑥 뤼팽이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한편 베이징은 섬세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1000년 전에 수도로 정해져 원, 명, 청 현재의 중국까지 4개 국가의 수도이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린된 적이 없는 그 도시를 보노라면 깊은 산 속 아무도 모르는 연못 속에 살고 있는 커다란 비단잉어가 떠오릅니다. 100년의 세월을 살아오면 저리 될까요, 사람의 목숨보다 더 오랜 삶을 살아온 사람보다 더 큰 비단잉어, 북경을 뒷골목을 촘촘히 뒤덮고 있는 회색빛 기와지붕은 그 비단잉어의 섬세한 비늘을 닮았습니다. 북경은 꼭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한편 하노이는 여러 색채가 덧칠된 도시입니다. 본디 베트남은 한중일과 마찬가지로 한문을 사용하는 유교 국가였고, 이후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공산혁명이 있었으며 최근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지요. 유교문화, 프랑스 식민문화, 공산화의 붉은 물결이 한번씩 스치고 지나간 나라, 세 가지의 층위가 엇갈린 가운데 1970년대 전쟁을 겪었기에 국민의 8할이 30대 이하로 구성된 젊은 나라의 새로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젊은 도시,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사실 젊음은 뜨거운 만큼이나 우울하고 암울합니다. 그 느낌을 가진 도시, 90년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가진 도시가 홍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997년 홍콩은 중국반환을 앞두고 있었고 저 역시 97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중국반환 후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졸업 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암울한 분위기가 겹쳐서 떠오릅니다. 도시를 진정 사랑하자면 아름다운 모습뿐 아니라 비루한 모습까지 보아야 하는데, 제게는 홍콩이 그러했습니다.



한편 이스탄불은 매우 오래된 도시입니다. 역사상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이었지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숨결이 머물렀던 곳이자 오랜 시간 이슬람 문화가 지배했던 도시, 그럼에도 이슬람 국가 중에서 가장 서구화된 도시. 오래된 도시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흔적과 그 모든 것을 헤치고 새로운 국제도시로 도약하고자 했던 무스타파 케말의 열정이 엿보이는 도시입니다. 역사 도시라면 역시 일본의 교토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가장 정교하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가 이곳이 아닐까 합니다. 중국의 베이징, 한국의 경주와 비슷한 도시라고 생각하면 되지요, 저는 이곳을 떠올릴 때마다 헤이안 시대의 겐지 모노가타리가떠오릅니다. 아울러 일본의 전통 천대지(千代紙)로 접은 천 마리 종이학도요. 언젠가 교토의 종이가게에서 화려하고도 섬세한 천대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푸른 눈의 외국인이 말을 걸었습니다. 이걸로 종이학을 접을 수 있어요? 정말 가능한가요?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던 그녀는 종이접기 책까지 샀지만, 책만 보아서는 실제로 학을 접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푸른 눈에 비친 동양의 신비, 그것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가 교토입니다. 그리고 도쿄, 제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방문했던 도시이자 가장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제게 그곳은 평생 잊지 못하는 첫사랑 같은 도시입니다. 첫사랑의 소녀를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영원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정말 아름다워서라기보다 그녀를 사랑했던 젊은 날의 열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듯, 도쿄는 언제나 제 호흡 속에 남아 있는 첫사랑 같은 도시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한 순간이라도 호흡을 멈추지 않지만 다만 평소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지요. 그러다가 숨이 가빠올 때만 그것을 벅차게 느끼듯, 저 역시 가장 벅찬 순간에 도쿄를 떠올립니다. 얼마 전 장마로 큰 비가 내렸지요, 그 범람한 강물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동시에 물에 빠졌다고 할 때 누구를 먼저 구하겠습니까, 아름다운 여자가 아닌 사랑하는 여자를 우선 구하겠지요. 제게 도쿄는 그런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도시는 베이징이나 파리이지만, 그러나 도쿄는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단 한 번의 여행기회가 주어진다면,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해야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도쿄를 택하겠습니다.

Q ∥ 여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국경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경에 관심이 많으시던데 그 까닭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그 국경을 좀더 강렬하게 체감하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어쩌면 그것은 천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국경을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천형 말이지요. 비무장지대 혹은 휴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곳은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국경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셨나요?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 휴전선이 둘러쳐진 섬같이 고립된 우리의 상황을요. 바다든 철책이든 그것을 건너자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굳건한 국경으로 둘러쳐진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기실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그 때문인가 항상 국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간이 그어 놓은 인위적인 경계, 그것은 견고하기도 했고 때로 느슨하기도 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국경을 가진 나라에서 사는 저로서는 항상 다른 나라의 국경이 궁금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그 인접국과 어떤 방식으로 살을 맞대고 있을까. 어쩌면 여행이란 타국 국경의 느슨함과 견고함을 경험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경기로도 넘어가는 것처럼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검문소가 있었던 이태리-프랑스 국경이 기억에 남고, 지하철로 서너 정거장을 갔을 뿐인데 빈부격차가 극심하던 홍콩-중국간의 경계도 기억에 남습니다. 때로 마카오, 모나코 같은 소왕국도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경계일 뿐이었습니다. 혹은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져 있습니다. 마치 서울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 두 대륙을 공유한 도시를 보니 국경이란 참으로 작위적인 경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국경은 때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지형적 특성상 한국에서 해외여행이란 곧 항공기 여행과 동일시되는데, 짧게는 두세 시간 길면 열 시간도 넘는 기내 속 세상은 과연 국내일까요, 국외일까요. 어쩌면 바로 이것이 국가간의 경계선이자 월경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배를 타거나 걸어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국경의 체감이 명확했지만 항공기 여행이 보편화된 현대에서는 국경의 감회가 덜하다고 말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월경의 순간이 더 길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내도 아닌 국외도 아닌 그 비일상의 경계가 신기해서 비행 중에는 되도록 잠을 자지 않고 버티는 편입니다. 모두 잠들었을 때 문득 창을 열고 보면, 다들 자고 있기 때문에 못 보는 세상을 나 혼자만 보는 것이니까요, 그때 제가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요?  궁금하시면 책을 펼쳐 보세요.


Q 이번 책의 ‘여는 글’과 ‘닫는 글’에서 여행의 출발과 도착, 비행기의 이착륙 순간과 그 여정이 책을 쓰는 작업과 비슷함을 이야기했습니다.조금 더 들려주신다면요?

A 그 동안 10번의 여행을 하였고 일곱 도시를 다녀왔는데, 그런데 올해는 제가 책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고, 또한 이번 책이 일곱 번째 책입니다. 이 또한 우연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붙이면 필연이 되겠지요. 책을 쓰는 일과 여행은 때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불현듯 이러이러한 내용의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여전히 그 생각 속입니다. 일정을 잡아 호텔과 항공권을 예약하고 나면 여행은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듯, 며칠 동안의 짧은 여행보다 준비의 과정이 더 설레듯, 책을 쓰는 일도 꼭 그러했습니다. 출국비행기에 오르면 이제 방금 전까지 내가 디디고 생활했던 일상의 공간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비일상의 공간이 되어 버리듯, 책을 쓴다는 것 역시 책 속 세상에 들어가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짧으면 4~5개월, 길어야 9~10개월 걸리는 그 일은, 영원히 그 속에 머물 수 없으면 다만 정해진 기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는 점에서 4박5일 혹은 9박10일 일정의 여행과 흡사했습니다. 기실 더 중요한 것은 불꽃놀이 같은 짧은 일정이 아닌 그 뒤에 오는 회상과 추억의 시간인 것처럼, 책을 쓴다는 것 역시 집필의 시간은 짧지만 출간 후에 오는 시간이 더 긴 것 이지요. 실제로 10년 전에 쓴 책을 읽고 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분이 지금도 가끔 계십니다. 익숙하고 편안했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여행지에서는 이미 떠나온 비일상의 시간이 되는 것처럼, 책을 쓰는 나날에는 비루하고 번잡한 모든 일상을 잊고 오로지 책 속 세상에 몰입해야 합니다.여행지에 관한 책을 쓰다 보니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일상인지, 여행지인지 모호할 때도 있었고, 그 때문인가 작년에는 세 번의 월경을 하면서 여섯 번의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러한 기억들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 다시 건축 이야기를 기다리는 독자들도 꽤 있을 것 같은데요.앞으로 어떤 책을 집필할 계획이신가요?

A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여행만큼이나 즐거운 외유였습니다. 그 시간 속에 계속 머물 수 없고 언젠가는 돌아와야 한다는 점에서 여행은 항상 아쉽고 소중하게 기억되는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내게 금지된 공간’과 ‘동경과 월경의 순간’은 건축 이야기가 아닌 내 자신의 이야기이자 여행 이야기였기 때문에 가장 즐거웠던 외유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 여행은 모두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인 거 같습니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본업인데, 그런데 그 일 역시 몇 갈래로 나뉩니다. 우선 주거건축 즉 집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다음으로는 비주거건축 즉 집이 아닌 일반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집우집주’ 등이 전자에 해당했다면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는 후자에 해당하는, 다음 번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건축물 본연에 관한 것입니다.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가 백화점, 박물관, 학교 등 일부 건축물만 다루었는데, 보다 시각을 넓혀 레스토랑, 극장, 음악당, 은행, 호텔, 철도역, 공항 등 더 많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건물이 실은 개인에게 지배담론을 주입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건축이 이데올로기의 시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예증을 통해 밝혀 보고 싶습니다.

Q ∥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A 건축가가 쓴 여행기라고 해서 펼쳐 봤더니 건축 얘기는 없고 주로 자기 감상만 적혀 있구나, 라고 생각할 분이 많을 거 같습니다. 이 책은 건축기행문이 아니고 또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을 통해 인식이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준 일종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재와 독서를 통한 성장기록을 다룬 ‘내게 금지된 공간’과 유사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그 작품이 30대의 모습을 주로 담고 있다면 이 책은 20대와 40대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주제도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었구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뒤집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여탕에 다녔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남성작가의 이야기는 많지만 그러나 저는 성별이 전혀 뒤바뀐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남탕을 보면 또 여탕을 보면 어떻게 보이는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해외여행을 한다고 하면 곧 비행기 여행을 연상하면서, 배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을 오히려 생소하게 생각합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의 나라를 생각해 볼 때, 배 여행을 이렇게 낯설어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닌가요? 또한 여행을 한다고 하면 어느 나라로 가고 싶으냐고, 목적지를 중심으로 말하지만 그러나 목적지보다는 여정 그 자체가 중요하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여행은 도쿄에서 런던까지 육로를 통한 구대륙의 동서횡단과, 알래스카에서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까지 신대륙의 남북횡단 입니다. 다음으로는 제주도에서 오키나와를 거쳐 남태평양 군도를 지나 이스터 섬까지 가는 해상여행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여행의 초점을 목적지가 아닌 여정 그 자체에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식을 한번 전화해보고 싶습니다. 여행은 일상을 넘어 비일상으로 가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세계가 열린다는 점에서, 저에게 여행은 월경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여행기란 꼭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인식을 벗는 계기가 되기를, 저와 함께 월경을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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