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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세상을 움직이는 네 글자> 김준연 지음


먼저 이겨놓고 싸우다 -선승구전先勝求戰 이런 까닭에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걸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건 뒤 이기려고 한다. 용병을 잘 하는 이는 인성을 잘 수양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니, 그래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능력을 갖춘다. -『손자병법』 <형> 예전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에 <산정무한>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글의 저자인 정비석이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굳게 쌓은 것은 『소설 손자병법』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저자가 1981년부터 한 신문에 연재한 것을 1984년에 세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인데, 1997년까지 무려 300만 권이 팔려 당시 우리나라 출판계 베스트셀러의 신기원을 이룩했습니다. 저자는 나이 50이 넘어 『손자병법』을 처음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소설로 옮기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인 합려를 섬기던 손무 孫武 가 쓴 것으로 알려진 병법서입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본래 82편이 있었던 듯하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曹操가 주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뿐입니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와 같은 병법의 기본원칙이 잘 정리되어 있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본래 군사 방면의 전문서인 『손자병법』이 이처럼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읽히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현대인의 삶이 손자가 논하는 전쟁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성취라는 것이 결국 경쟁 속에서 얻어낸 승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손자병법』이 그렇게 험악한 전쟁에서 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삶의 하루하루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평화적으로 승리를 얻는 것만한 최선의 결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자병법』에서 주창하는 ‘선승구전 先勝求戰 ’, 즉 “먼저 이겨놓고 싸운다”는 말도 그래서 아주 달콤하게 들립니다. 험악한 전쟁의 최종 목표가 승리라 할 때, 이미 승리를 쟁취한 이후 전쟁에 임한다면 마음이 얼마나 가볍겠습니까? 이것을 마다할 사람이 없을 터라, 그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손자병법』의 내용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승구전’과 관련된 내용은 『손자병법』 제4편 <형 形 >편에 보입니다. 손자는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에 이른바 전쟁을 잘하는 이는 쉽게 이길 만한 데서 이겼다. 그런 까닭에 전쟁을 잘하는 이의 승리는 지혜롭다는 명성도 용감무쌍한 전공도 없었던 것이다. 손자의 말은 전쟁을 잘하는 이들은 악전고투하며 묘수에 묘수를 거듭해 승리를 쟁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손쉽게 이길 만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이기는 터라, 명장 名將 이라는 소문도 나지 않고 이렇다 할 혁혁한 전공도 없다고 했습니다. 손자의 주장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전쟁을 잘하는 이는 패하지 않을 상황을 조성한 후에 적이 패할 틈을 놓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걸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건 뒤 이기려고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손자는 ‘선승구전 先勝求戰 ’과 ‘선전구승 先戰求勝 ’의 차이를 이야기했습니다. 이기는 군대는 이길 만한 상황을 만든 뒤에 싸움터로 나가고, 지는 군대는 싸움터로 나간 뒤에야 이길 방법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엄청난 승리의 비결을 알려주는 『손자병법』에 감명을 받은 것은 비단 소설가 정비석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접한 소식들은 손자의 ‘선승구전’ 전략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사람들의 무용담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어느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 최 씨였습니다. 최 씨는 자신이 수강하는 교수의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교수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시험문제를 빼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발각되어 대학원에서 영구 제적되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이전에도 시험지를 빼돌려 전 과목 만점과 더불어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시험문제를 미리 알고 답안을 철저히 준비해둔 상태에서 시험을 보는 것은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선승구전의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변호사 최 씨와 의뢰인 정 씨입니다. 정 씨는 상습해외도박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최 씨에게 2심 변호를 의뢰하며 보석과 집행유예 선고를 끌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례비 명목으로 50억 원의 금품이 오갔습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였던 최 씨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부장검사들에게 정 씨의 선처를 부탁했고, 최 씨의 부탁을 받은 부장검사들도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선승구전의 전략이 잘 먹혀들었습니다만, 법원이 보석신청을 기각하면서 최 씨와 정 씨의 사이가 틀어져 애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선승’, 즉 싸우기 전에 먼저 이겨놓기 위해서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대학원생 최 씨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교수 연구실에 침입해 시험지를 훔쳤고, 변호사 최 씨는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른바 ‘전관예우’를 통해 수사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습니다. 손자가 말한 ‘선승구전’이 이처럼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비열한 수단까지 총동원하라는 말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 가운데 ‘선승구전’의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한 분으로 이순신 장군이 손꼽힙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때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함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지형과 조류 등의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수군은 울돌목에 이르러 순식간에 방향이 바뀐 거센 조류에 당황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적이 패할 틈을 놓치지 말라”는 『손자병법』의 말대로 대반격을 감행하여 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선승구전’에 어떤 비열한 수단이 쓰였고, 그래서 명량해전의 승리로 이순신 장군이 챙긴 사리사욕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다만 이런 말을 남기고 있을 뿐입니다.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작은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으로 더 쓸 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며, 군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다시 보아도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고전 읽기 『손자병법孫子兵法』 <형形> 손자가 말했다. 옛날에 전쟁을 잘하는 이는 먼저 적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적이 이기기를 기다린다. 이길 수 없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 하는 이는 적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지, 우리가 적을 반드시 이기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승리는 예측 가능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적이 이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수비고, 우리가 이기게 만드는 것이 공격이다. 수비를 하면 여유가 있고, 공격을 하면 부족해진다. 수비를 잘 하는 자는 아홉 곳 땅 낮은 데 숨고, 공격을 잘 하는 자는 아홉 곳 하늘 높은 데서 활약하니, 그래서 능히 스스로를 지키고 모두 이기는 것이다. 승리를 예견하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지나지 않으니, 좋은 것 가운데 좋은 것은 아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천하에서 좋다고 하지만, 좋은 것 가운데 좋은 것은 아니다. (매우 가벼운) 가을날의 터럭을 드는 것이 힘이 세서는 아니고, 해와 달을 보는 것이 눈이 밝아서는 아니며, 천둥소리를 듣는 것이 귀가 밝아서는 아니다. 옛날에 이른바 전쟁을 잘하는 이는 쉽게 이길 만한 데서 이겼다. 그런 까닭에 전쟁을 잘 하는 이의 승리는 지혜롭다는 명성도 용감무쌍한 전공도 없었던 것이다. 그 전쟁에서의 승리는 어긋나지 않은 것이다.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취한 조치가 반드시 이길 만한 것이라서 이미 진 자에게 이겼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이는 패하지 않을 상황을 조성한 후에 적이 패할 틈을 놓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걸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건 뒤 이기려고 한다. 용병을 잘 하는 이는 인성을 잘 수양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니, 그래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능력을 갖춘다. 병법이라 하면 첫째는 ‘도度 ’, 둘째는 ‘양量 ’, 셋째는 ‘수數 ’, 넷째는 ‘칭稱 ’, 다섯째는 ‘승勝 ’이다. 지형이 국토의 면적[度]을 낳고, 국토의 면적이 자원의 양[量]을 낳고, 자원의 양이 인구 수[數]를 낳고, 인구 수가 군사력[稱]을 낳고, 군사력이 승패[勝]를 가른다. 그래서 이기는 군대는 1일鎰(24냥)로 1수銖(1/24냥)와 무게를 재는 것 같고, 지는 군대는 1수로 1일과 무게를 재는 것 같다. 이기는 자가 전쟁에서 백성을 쓰는 것은 천 길 높이의 계곡에서 가둔 물을 쏟아붓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형세다. • • • • 원문  孫子曰, 昔之善戰者, 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 不可勝在己, 可勝在敵. 故善戰者, 能爲不可勝, 不能使敵必可勝. 故曰, 勝可知, 而不可爲. 不可勝者, 守也, 可勝者, 攻也. 守則不足(有餘), 攻則有餘(不足). 善守者, 藏於九地之下, 善攻者, 動於九天之上. 故能自保而全勝也. 見勝不過衆人之所知, 非善之善者也, 戰勝而天下曰善, 非善之善者也. 故擧秋毫不爲多力, 見日月不爲明目, 聞雷霆不爲聰耳. 古之所謂善戰者勝, 勝易勝者也. 故善戰者之勝也, 無智名, 無勇功. 故其戰勝不忒. 不忒者, 其所措必勝, 勝已敗者也. 故善戰者, 立於不敗之地, 而不失敵之敗也. 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善用兵者, 修道而保法, 故能爲勝敗之政. 兵法, 一曰度, 二曰量, 三曰數, 四曰稱, 五曰勝. 地生度, 度生量, 量生數, 數生稱, 稱生勝. 故勝兵若以鎰稱銖, 敗兵若以銖稱鎰. 勝者之戰民也, 若決積水於千仞之谿者, 形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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