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작은 수학자의 생각실험: 미적분 편> 고의관 지음


02  강연장에서

몇 개월 전, 1월의 어느 토요일. 과학관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박사는 그날 수학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 발표할 자료를 가지고 과학관의 한 강연장을 찾았다. 수많은 학생들과 같이 따라온 학부모들로 강연장 안은 시끌벅적했다. 잠시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어리둥절해 있을 때 사회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오늘 강연을 맡아주실 박사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주변이 좀 시끄럽죠? 제가 정리하고 박사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사회자가 학생들을 집중시킨 후 박사를 소개하였다. 강단에 선 박사는 청중에게 인사하고 강연을 시작했다. 주제는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박사는 지식보다는 그동안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늘 학생들에게 수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문제를 단순화하고 거기에서 유추하여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법이라고 설파해왔다. 물론 오늘처럼 한 시간 정도의 강연으로는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하기가 불가능함은 박사 자신도 알고 있었다. 특히나 휴일 날 부모님의 권유로 이 자리에 온 학생들은 더욱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덧 주어진 시간이 끝나가자 늘 해왔던 식으로 강연을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하나 제시했다. “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지만 제가 문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30분의 시간 동안 제가 저쪽 커피숍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문제를 푸신 분은 저에게 찾아와 얘기해주세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문제지만 박사가 지금껏 경험한 바로는 정확한 해법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히려 강연으로 지친 몸을 쉬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했다. 그래도 누군가가 참신한 방법으로 해결하여 자신을 찾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사실 박사는 그런 학생을 발굴하여 나중에 자신과 같이 수학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지식이 많다고 수학의 난제를 척척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식은 부족해도 간단한 발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것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뛰어나다는 점을 박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강연도 하고 학회도 다니며 우수한 학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여느 때처럼 학생 대부분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박사가 낸 문제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강연장을 빠져나갔다. 다행히 이날은 두 여학생이 박사에게 다가왔다. 


“저, 박사님. 답이 1000개 아닌가요?”

“아, 나도 계산은 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답을 모르겠네. 왜 그렇게 나왔지?”

“그냥 일일이 세보니 대충 그 정도일 것 같아서요.” 

박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답만 맞으면 된다고 여기는 학생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덤덤하게 반응한다. 

“글쎄, 그것이 답일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 답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의 과정과 이유가 더 중요하지 않겠어? 그리고 설혹 그 답이 맞더라도 가로의 길이가 4가 아닌 10이라고 하면 그때도 또 일일이 세어가면서 답을 구해야겠니? 어떤 규칙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숫자가 달라져도 곧바로 해결할 수 있잖아.”


약간 핀잔을 주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두 학생에게 좀 더 생각해보라고 충고하고 그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도저히 답을 모르겠거나 의문점이 생기면 물어보라고 하면서.


남학생 한 명이 더 찾아왔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계를 쳐다보니 20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그를 찾아왔다. 


“박사님, 아까 내주신 문제에 대한 답이 3150개 아닙니까?”


사실 박사도 계산은 해보지 않은 터라 답은 알고 있지 않았다. 이 학생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답을 구해서 온 학생으로 여겨져 시큰둥하게 말을 했다.


“그래? 어떻게 해서 구했지?”


“음……. 그게요, 직육면체의 개수를 일일이 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잖아요.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규칙을 찾아야겠구나 생각했지만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박사님이 강연에서 설명해주셨던 대로 문제를 단순화해보기로 하고 가로, 세로, 높이를 모두 2라고 생각했더니 그 경우는 일일이 세기가 편했습니다. 길이가 모두 3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계산을 해보다가 어떤 규칙이 있음을 직감하고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바꿔서 생각했습니다.”


찬찬히 설명을 듣고 있던 박사는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논리정연하게 풀어나가는 재능이 상당했던 것이다. 답의 정확성을 떠나서 생각을 전개해가는 방식이 보통을 넘어섰다. 박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은 계속 문제의 해법과정을 설명해갔다.


“그랬더니 길이가 1인 선분은 5개, 2인 선분은 4개, 3은 3개, 4는 2개, 5는 1개임을 알아냈습니다. 결과적으로 길이 5인 직선에 숨어 있는 선분의 개수는 1에서부터 5까지의 합인 15였고, 같은 방법으로 하면 길이가 10인 직선의 경우는 1부터 10까지의 합이 선분의 개수가 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문제를 조금 더 확장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미 박사는 학생이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나갈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의 얘기를 끊고 싶지 않았다. 설명하는 모습이 굉장히 진지하고 확신에 차 있어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이 문제는 1차원의 선분의 문제가 2차원의 개념으로 넓혀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앞서의 선분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의 길이는 5이므로 1부터 5까지의 합에 의해 15개의 선분이 있고, 세로는 길이가 4이므로 1에서 4가지의 합에 의해 10개의 선분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제 그림 1.2.4처럼 가로와 세로에서 선분 하나씩을 취하면 하나의 직사각형이 만들어지게 되므로, 가로 방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분이 15개, 세로는 10개이므로 이 두 수를 곱한 150(=15×10)개가 답이 될 것입니다.


이 규칙을 박사님이 내주신 원래의 문제에 적용시켰고, 가로의 길이가 4이므로 1부터 4까지의 합 10, 세로는 5이므로 1부터 5까지의 합 15, 높이는 6이므로 1에서 6까지의 합 21이 나와서 이 세 수를 곱한 것이 답이 됨을 알았습니다.”

10×15×21=3150

“그래, 아주 훌륭했어. 혹시 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나?” “아니요. 처음 접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지?” “그게……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것 같은데요.” “내가 원했던 답을 자네가 얘기해줬어. 답만 맞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을 유추할 수 있느냐를 보는 문제였거든. 몇 학년이지?” “예, 중3입니다.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됩니다.” 두 사람은 이후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박사는 이 학생이 체계적인 공부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생각을 펼치는 힘이 굉장히 탁월함을 재차 느꼈다. 분명 자신이 모르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익히고 그렇게 얻어낸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갑자기 이 학생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풀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 던져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박사는 몇 년 전 한 친구로부터 희한한 문제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그의 능력으로는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꽤나 까다로운 문제임은 틀림없었다. 그 문제를 똑똑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고1을 바라보는 중3에게 내기에는 상당히 버거울 수 있다고 여겼지만 풀지는 못하더라도 꽤나 많은 것을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수학자의 생각실험>은 이번 겨울, 독자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