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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생명에서 생명으로』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 김명남 인터뷰


Q∥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과학책을 번역하는 김명남입니다. :) 늘 그렇듯이 번역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요즘은 곧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기 전에 집 앞 공원을 열심히 산책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나온 『생명에서 생명으로』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현대의 소로’로 칭송되기도 하는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A∥ 베른트 하인리히는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왜 달리는가』로 제일 유명한 것 같아요. 하인리히를 아는 독자들은 대개 그 책을 언급하시더라고요. 하인리히는 올해로 75세가 된 미국의 생물학자로, 까마귀나 벌이나 거위 등 여러 생물을 관찰한 내용을 쓴 스무 권쯤 되는 책으로 영어권에서 팬이 많은 작가입니다. 뛰어난 마라톤 주자였던 경험을 살려서 동물들과 인간의 달리기를 이야기한 『우리는 왜 달리는가』를 쓰는가 하면, 역시 생물학자로 맵시벌 전문가였던 아버지와의 사연을 다룬 일종의 회고록 『아버지의 오래된 숲』도 썼죠.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하인리히의 장기는 자연계에 대한 묘사인데요. 메인 주 숲 속에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머물면서 동식물을 관찰한 내용을 생물학자답게 탐구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장으로 기록한 책들이 많습니다. 『생명에서 생명으로』는 그런 하인리히의 2012년 작으로, 메인의 숲에서 아프리카 초원까지 그가 그간 전 세계에서 숱한 동물을 연구하면서 접했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펼쳐보이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연 속 동물과 식물이 죽고 난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결국 생명은 다른 생명을 재활용함으로써 존재한고요. 죽음은 생명이 변형되고 재생되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결코 문학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에요. 종교적, 철학적 비유도 아니고요. 자연에 이보다 더 엄연한 현실은 없습니다. 생명은 생명에서 오고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생물 개체는 그 연쇄에서 하나의 사슬이 될 때 가장 충만한 삶을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도 결국은 생물이니까요.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분명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시선이 영영 바뀔 것입니다. 저로 말하자면, 제 육신이 살아 있을 때로도 모자라 죽을 때마저 자연을 더럽히거나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내 육체의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되어 쓰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대신 가급적 제일 빨리 분해되는 방법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전혀 기괴하지 않으며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거스른다고 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전혀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크나큰 설득력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Q∥ 이 책의 원제목은 ‘Life Everlasting’입니다. 과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영원한 생명'이라는 단어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가 싶기도 한 것이, 어폐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목과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앞에서 ‘죽음’에 관한 책이라고 했지만, 말씀대로 이 책은 ‘영원한 생명’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 두 가지가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는 것, 오히려 같은 현상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바로 하인리히가 하고 싶어 하는 말입니다. 하인리히는 동물이 죽은 뒤 어떻게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세세히 관찰하면서, 그 끝에는 결국 그 동물 덕분에 새로 태어나거나 목숨을 잇는 새로운 생명들이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한 개체의 죽음이 다른 개체의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 연쇄는 자연이 존재하고 지구가 존재하는 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한국어판 제목 ‘생명에서 생명으로’는 썩 괜찮은 의역이라고 생각합니다.



Q∥ 번역 과정에서 힘든 점이나 재미있었던 일은 없었나요? 단행본 작업 과정에서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A∥ 동식물의 이름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약간은 곤혹스러웠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동식물의 일반명은 언어와 언어 사이에 완벽한 일대일 대응이 이뤄지지 않지요. 가령 영어에서는 수리과의 새들을 ‘eagle’과 ‘vulture’로 나눠 부르는데, 엄밀히 옮기자면 전자는 ‘수리’이고 후자는 ‘독수리’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일상적으로 ‘이글’을 ‘독수리’라고들 많이 부르죠. ‘Bald eagle’도 정확히는 ‘흰머리수리’인데 ‘대머리독수리’라고 번역되곤 하고요. 영어에선 크기와 생태가 다른 ‘hawk’와 ‘falcon’을 구별해서 부르지만 우리는 보통 ‘매’라고 통칭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호크’와 ‘팔콘’이라고 적어줄 수도 없고요. 다행히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물학자답게 모든 동식물에 대해서 처음 한 번은 학명을 밝혀주기 때문에 독자가 헷갈릴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학술서가 아니라 대중서를 번역하는 제 입장에서는 최대한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명을 이용하면서도 원어의 구분을 표현하려다 보면 저부터가 막 헷갈려서 말이죠.



Q∥ 본문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요?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야기해주세요.

A∥ 물에서 사는 생물들의 죽음을 다룬 4부에 ‘고래 주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전 그 대목에서 정말로 가슴이 벅차올라 혼났습니다. 고래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 누가 그 시체를 분해할까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알고 보니 그에 관한 연구가 이삼십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지만요. 차갑고 검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고딕 성당의 뼈대와도 같은” 거대한 고래의 골격을 상상해보세요. 너무 캄캄해서 식물도 살지 못하는 그 심연에서 우리가 정체조차 모르는 어류, 갑각류, 미생물이 그 사체를 재활용하는 광경을 말이에요. 육지 생물인 인간이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문제를 떠올리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일단 알게 되면, 지구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생명 과정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 꼭지를 정말 좋아합니다. 물론 베른트 하인리히가 직접 바닷속을 탐구한 건 아니지만, 깔끔하게 잘 소개해주었어요.



Q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우리 인간이 생태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주요 소재는 ‘동물들의 죽음’이지만, 결국 그 역시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삶, 인간과 동물의 생명 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흐른다는 인상도 강했고요. 관련해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맞습니다. 하인리히는 생물학자이니까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대상들, 즉 사슴, 줄무늬다람쥐, 수탉, 무스, 흰발생쥐의 죽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끝에서는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인간도 생명에서 생명으로의 순환에 낄 수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니까요. 하인리히가 인간의 사체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즉 다른 동식물의 먹이가 되어 생명의 순환에 기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떤 독자들에게는 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적용하지 않으니까요. 티베트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새를 이용한 조장을 치른다는 걸 알긴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선택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지요.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하인리히의 말이 옳지요. 인간의 죽음이 지구 전체에 가장 값지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생명들로 순환되는 것이지 몇십 년이나 방부제에 절어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런 시야에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어볼 수 있다면, 이 책은 독자에게 귀한 독서가 될 것 같아요.



Q∥ 과학책 전문 번역가로서 적잖은 독자팬덤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이고요.(^^;) 종종 ‘과학책을 읽고 싶은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도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되는데요. 조언의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A∥ 예전에는 과학책 추천이 유독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평소 소설을 안 읽던 사람에게 소설을 추천하는 것도, 시를 안 읽던 사람에게 시를 추천하는 것도 과학책보다 결코 덜 어렵진 않더라고요. 요즘은 어느 분야이든 어떤 방법을 써서든 일단 첫 한 권을 읽어보는 경험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중에서도 자신이 궁금한 것이 가령 양자역학인지 네안데르탈인인지 좀 더 범위를 좁힌 뒤, 그 주제에 관한 책을 서점에서 고르거나 소개받아서 일단 한 권 끝까지 읽어보는 것. 그러면 뜻밖에 크게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고, 더 궁금한 내용도 생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소설은 없듯이, 누구에게나 유익한 과학책도 없어요. 과학책을 읽어보고 싶은 흥미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우선 자신이 궁금한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Q우리나라의 과학책 번역서는 다양한 편인가요? 국내에서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꼭 소개되면 좋겠다는 과학 분야나 과학책이 있다면요?

A∥ 과학책은 번역이 빠르게 많이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해외 저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다양한 데다가 특히 과학은 최신 정보가 중요하다는 강박이 있는지라, 영어권에서 중요한 책들은 거의 다 번역된다고 봐요. 오히려 국내 저자가 아직도 부족한 편이죠. 물론, 그래도 늘 아쉬운 빈틈은 있기 마련인데요. 베른트 하인리히만 해도 영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1994년 작 『메인 주에서의 1년』은 번역되지 않았어요. 하인리히에게 ‘현대의 소로’라는 별명을 붙여준 게 저 책인데요.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기록했듯이 하인리히는 메인 숲에서의 생활을 기록했지요. 딱히 분야는 아니지만 또 아쉬운 빈틈이라면, 일본의 ‘블루백스’ 시리즈를 번역했던 전파과학사의 시리즈나 김영사가 선보였던 ‘하룻밤의 과학여행’ 시리즈처럼 과학의 다양한 주제와 개념을 각기 가벼운 분량으로 다룬 시리즈가 지금은 딱히 없어서 안타까워요. 아, 궁리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과학 만화’와, ‘개념 잡는 비주얼 과학책’ 시리즈가 있죠. 하지만 열 권으로는 부족해요!



Q∥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이 책과 관련해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셔도 좋겠습니다.

A∥ 일로 과학책을 번역하니까 여가에는 주로 다른 걸 읽는 편인데,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합니다. :) 하지만 여기에서 추리소설을 추천하기는 좀 그러니까, 베른트 하인리히의 후예라고 불러도 좋을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를 추천하고 싶어요. 자연 에세이와 과학적 기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글을 좋아하신다면 하인리히도, 그 책도 둘 다 좋아하실 것입니다. 사실은 베른트 하인리히의 다른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 다 절판 상태라서 말이죠. 도서관에서 구해보실 수 있다면, 『까마귀의 마음』을 권합니다. 하필 까마귀 얘기라니 좀 의외이겠지만, 읽어보면 까마귀가 얼마나 똑똑하고 근사한 생물인지 알게 되고 하인리히가 얼마나 좋은 자연학자인지 알게 됩니다. 하인리히는 『생명에서 생명으로』에서 “내가 지금까지 만난 큰까마귀 중에서 내 맘에 들지 않은 녀석은 한 마리도 없었다”라고 말했죠. 심지어 자신이 만에 하나 환생할 수 있다면 큰까마귀로 태어나기를 선택하겠다고 말하죠.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Q∥ 번역 작업 외에도 다양한 서평 등 칼럼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혹, 앞으로 집필하고 싶은 책의 주제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A∥ 책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 번역과 집필은 다른 일이고, 저는 번역만도 힘에 부쳐서요. 가끔 서평을 쓰는 것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것이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 경우에도 모든 추천은 궁극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저는 과학의 전문가가 아니고, 그저 남들보다 과학책을 좀 더 많이 읽는 독자이니까요. 트위터 같은 SNS에서도 주로 그런 이야기를 떠들게 되는 걸 보면, 그런 일이라면 누가 안 시켜도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군요!



Q∥ 독자들이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고 이 책을 보면 좋을까요? 이 책을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끝인사 겸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요즘 이른바 웰다잉,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그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관점을 뛰어넘은 자연의 관점, 생태의 관점, 지구의 관점을 알고 싶은 분이라면 『생명에서 생명으로』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답은 없지만, 자연이 주는 통찰과 단서가 있습니다. 물론, 그냥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다 재밌다 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정말 동물이 잔뜩 나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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