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인공 낙원』을 펴낸 문화평론가 정윤수 인터뷰


Q문화평론가로서 저술가로서 그리고 방송 및 강연활동으로 바쁘게 지내실 듯합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A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차 안에서 생활한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길면 세 시간 짧으면 두 시간 정도 되는 강의를 여러 곳에서 합니다. 주로 현대문화, 클래식, 때로는 축구에 관한 강의를 하는데 그렇게 두 시간 내외의 일을 하기 위해 집에서 차를 몰고 나와서 긴 시간을 차를 타고 돌아다니게 되죠. 그런 점에서, 길 위에서 생활을 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 도로 위에 있고, 도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새로 들어선 건물이나 새로 난 도로나 신호등을 보면서, 그렇게 거리에서 변화해가는 풍경을 보는 것이 일상입니다.


Q이번에 펴내신 『인공 낙원』을 독자들에게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 이 책은 제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도시 공간에 대한 탐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일단 거대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많이 궁금했습니다. 학문적인 궁금증도 있지만, 제 개인의 궁금증도 많았습니다. 예컨대 20층짜리 건물이 있으면, 저 건물에 가스는 어떻게 공급이 되며, 수도 시설이나 정화 시설은 어떻게 처리되고, 거대한 빌딩의 천장 위에 있는 덕트(duct)에서는 공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그것이 하나의 살아 있는 동물이라고 여겨지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도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거대한 도로나 공간이나 빌딩들이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숨 쉬고 살아 있고 잠을 자는 어떤 유기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거대한 공간의 운영 원리라든지 생성 배경이라든지, 그것이 생기기 전과 생긴 후에 그 공간을 둘러싼 더 넓은 공간이 어떻게 변했는지, 등이 어릴 때부터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계기가 되어 책으로 쓰고 펴내게 되었습니다.


Q책 속에는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열한 곳의 인공 공간이 나옵니다. 어떤 기준으로 공간을 선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도시를 대표하는 열한 곳의 인공 공간 가운데는 ‘무장소성’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 곳이 서너 군데 됩니다. 무장소성이라는 것은 마르크 오제, 에드워드 렐프, 이푸 투안 같은 사람들이 정치지리학적 관점, 또는 사회지리학적 관점에서 급변하는 글로벌폴리스의 어떤 양상들을 본 관점입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역사적 경험이 공유되어 있는 친숙한 공간에서 점점 이탈해, 역사나 인간적 관계가 거의 소거되어버린, 장소 없는 장소, 역사 없는 장소, 사람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공감을 오히려 친숙하게 여기게 되고, 그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장소부터 찾아다녔습니다.

이를테면 병산서원 같은 데서는 옛 선비들의 향취를 느끼거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차피 여행처럼 특별한 때나 하는 것이죠. 도시의 기차역, 버스정류장, 광장처럼 오랫동안 역사성을 가졌던 곳도 급격한 변화 때문에 그 장소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장소성을 잘 보여주는 공간들을 살펴봤고, 그리고 오늘날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이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투사되는 곳을 조금 골라보았습니다. 버스정류장 경우는 그 흔적이 너무 작고, 버스정류장마다 차이가 많고, 가변성이 많아서 다루기 어려웠지만, 서울역 같은 경우에는 100년의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충분히 다룰 만하죠. 한편으로 아파트나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등 이런 공간들은 중산층의 욕망, 도시의 성적 욕망, 돈에 대한 욕망들이 투사되어 있기 때문에 다루고자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적 호흡이나 관계가 끊어지고, 새롭게 조성되는 거대한 인위적 공간들, 광화문광장이나 인천공항 같은 공간을 살펴보는 것을 한 축으로 아파트, 백화점, 카지노나 모텔처럼 오늘날 도시인들의 이런저런 욕망과 맞닿은 공간들을 탐사하고자 열한 개의 공간을 선별하였습니다.


Q취재 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을 듯합니다.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일들을 들려주세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책 속에도 언급했지만, 모텔을 취재할 때였습니다. 모텔은 대개 지방이나 관광지의 경우에는 워크숍이나 여행객이 찾겠지만, 도심에 있는 모텔들은 대개 남녀가 함께 들어가서 서너 시간 함께 있다 나오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도덕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나 어떤 이유에 의해서 그런 공간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취재 때문에 혼자서 가는 게 매우 어색했습니다.

제가 취재했던 모텔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혼자 왔다가 가는 저를 보고 측은해했을 겁니다. 제가 차를 몰고 혼자 들어올 때, 서너 시간 있다가 혼자 나갈 때 거기 일하시는 주차 관리원이나 현관 쪽의 직원들이, 저 사람 참 안돼 보인다, 대낮에, 그것도 혼자 와서 저게 뭐람, 이런 식으로 저를 처량하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인천공항 관제탑에 올라갔을 때도 기억에 남습니다. 최소 다섯 단계 이상의 보안 과정을 거치고 관제탑 위까지 갈 수 있었는데, 관제탑 영역으로 이동하는 데도 신원확인을 네 번이나 하고, 관제탑 아래에서 관제탑 1층 로비로 들어가는 데도 보안검색이 있고, 거기서 맨 꼭대기 관제탑으로 올라갈 때도 신원확인을 더 하고…… 저를 동반했던 공항공사 직원은 관제탑 근무요원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신분이 확인되었음에도 1층 로비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대여섯 단계 이상의 보안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운용되는 원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위해 취재했을 때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두 번 다시없을 만큼 굉장히 귀한 시간에 전시될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줄지어 있었고,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겨우 10초밖에 볼 수가 없었는데도 그걸 보기 위해 네댓 시간씩 줄을 선 모습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그 후 보강 취재를 위해 다시 박물관을 찾았는데, 평일 오전이라 일하는 사람 한둘만 이따금 지나갈 정도로 막막한 시간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역사가 저장되어 있는 그 거대한 공간에서 혼자 멍하니 한두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Q어떻게 집필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A 모든 책은 계획에 의해서 집필되는 게 아니라 계약에 의해서 집필됩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계약하지 않으면 집필은 어려운 법이죠:) 어느 주간지에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했는데 경북의 유림 마을이나 지리산의 사찰이나 제주도의 유배지를 찾아가는 연재였어요. 그 연재를 마친 후, 시선을 돌려 도시 공간의 내밀한 모습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늘 관심을 기울여오던 거대한 인공 낙원, 거대한 인공 공간을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요. 마침, 기회가 닿아 어느 월간지에서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공간들을 위주로 10회 정도 연재를 했습니다. 그때가 2009년쯤인데 그동안 당시에 좀 미진했거나 미확인되었던 것을 보완하고, 좀 더 이론적인 부분들을 보완해서 이번 책 『인공 낙원』을 집필했습니다.


Q말씀하셨듯, 도시의 인공 공간에 대한 연재를 마치고, 지난 2년여 동안 다듬고 매만져 단행본으로 펴내셨습니다. 단행본 집필 과정에서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A 연재할 때는 탐사 취재라는 관점에서 공간에 대한 묘사나 객관적인 분석에 집중했지만, 단행본에서는 무엇보다 그런 공간이나 거리에 대하여 제가 느꼈던 개인적 체험이나 느낌들을 최대한 많이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물론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들을 좀 더 추가하여 풀어내기도 했고요.

염두에 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찍은 사진이 말을 하도록 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저보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고 또 이 거대 공간들은 홍보물을 위해서라도 일급 사진가를 동원해 홍보사진을 다 찍어놓습니다. 항공사진도 많이 찍지요. 그래서 어떤 때는 그쪽에서 사진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공항을 내려다보며 찍은 공항 야경 사진 같은 거죠.

하지만 저는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을 쓰고자 했습니다. 제가 밤하늘에서 야경으로 공항을 내려다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비록 사진 기술은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내가 직접 본 것을 글과 함께 싣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테면 캐리비안베이를 취재하러 갔을 때도 해당 월간지의 사진기자가 동행했지만, 저는 ‘온 가족의 주말나들이 캐리비안베이’ 같은 식으로 그 공간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제 관점의 제 사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진기자보다 기술적으로야 훨씬 모자라지만, 결국 사진은 ‘시선’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단행본을 내면서 궁리출판사의 편집부가 제 사진을 너그럽게 받아주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글로 다 표현 못하는 부분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 사진을 넣을 수 있었고, 적절한 위치에 사진을 넣는 것 이상으로 크기며 배치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나름대로 ‘시선’을 가진 사진이 ‘말’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잠깐 언급했듯, 연재 때는 탐사라는 측면이 너무 강했는데, 이 많은 공간에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마음속에 애틋하게 남은 기억들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적당한 기회가 되면 쓰려고 마음속에 저장해둔 문장이 있습니다. “그때 보았던 원진레이온 공장은 너무 길었다”라는 문장입니다. 별 대단한 문장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중앙선이나 태백선을 타고 청량리로 올라오다 보면, 도농역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원진레이온 공장이 길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 기억이라 다소 과장된 크기로 남아 있긴 합니다만, 지하철 한 정거장은 될 듯한 그런 정도의 길이로 남아 있습니다. 기차는, 그 공장 옆을 지날 때마다 서행을 했고, 기차 특유의 느리고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공장 옆을 지나가면, 이윽고 청량리역이었습니다. 아, 이제 집에 왔구나, 서울에 왔구나 하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던 기억이 납니다.

독자들도 꼭 부석사나 해인사 같은 근사한 문화유산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에 겪었던, 자기만의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재할 때는 그런 이야기를 넣을 수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넣었습니다.


Q"사진이 말을 하도록 해야 하겠다"고 의도하신 것처럼, 본문의 사진들은 그 각각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인상적입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어 인공 공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관련해서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A 일단은, 관광엽서처럼 진부한 사진은 찍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한데 굳이 그걸 감추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요:) 우연히 얻은 효과로 자기를 속이는 사진보다는 기록에 집중하기로 했죠. 그 장소가 바로 그 시각에 그곳에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일부러 왜곡된 프레임 보다는, 가만히 선 자세로, 정면성으로 유지하면서 찍었습니다. 때로는 이 책에 수록한 몇 컷의 사진처럼, 흔들린 사진도 있습니다. 그건 대부분 차를 타고 가면서 급하게 찍은 것입니다. ‘극장’ 편에 나오는 서대문의 어느 극장은 바로 그 서대문 고가도로 위를 달려가면서 급하게 찍은 것이라 흔들린 것이지 일부러 ‘겉멋’을 좀 내보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듯 정면성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보통 취재 시간을 정해 혼자 움직이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가끔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내친김에 따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너네 여기 잠시만 있어. 아빠 잠깐 광장에 다녀올게” 하는 식이죠. 그러다 보면 “늘 아빠는 언제 와” 하는 등의 불만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언제 여길 다시 오랴 싶어서 더 걸어보게 되고 살펴보게 되면서 금방 몇 십 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죠. 가족 여행을 하다가 국도변에 자꾸 차를 세우고서 혼자 논두렁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오면 가족들이 화를 내죠. 멀미도 심해지고요. 그래서 미안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Q독자들이 어떤 면면에 주안점을 두고 책을 읽어보면 좋을까요? 이 책을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A 최근 들어서 도시 인문학이랄지 정치 지리학이 많이 나오면서 도시 공간에 대한 정치사회적 분석이 늘고 있고, 그것은 외국에서도 그렇습니다. 한국의 경우, 서울, 부산, 인천 어디나 최근 10년 사이에 급속하게 재개발과 리노베이션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대도시를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바꾸어가야 올바른지에 대한 논의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 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할 즈음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었는데, 무상급식도 중요한 이슈였지만, 그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시장이 전개했던 ‘디자인 서울’의 공허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표로 반영되었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몇 해 동안 서울이 ‘디자인’이니 ‘한강 르네상스’니 하는 번지르르한 말로 ‘걸레상스’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직접 거대 도시 공간을 찾아가 제대로 살펴보고 도시 공간의 변화와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일반주택이나 한옥에서 산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장마철 오후에 비가 막 쏟아졌다가 어느 순간 느리게 올 때, 빗방울이 양철지붕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걸 한글로 표기하면 어떻게 될까. 굉장히 미묘한 문제거든요. 최인훈 선생의 『회색인』을 읽어보면, 주인공 독고준이 어린 시절 원산에서 책을 읽던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때 양철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철 철 철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독자들이 공간에 대한 기억이나, 지금 살고 있는 공간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자기의 인성이, 그것이 나쁜 성격이든 좋은 성격이든 혹은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사람의 다양한 내면이 형성될 때 분명히 공간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궁리출판사가 있는 곳은 종로 통인동 쪽인데, ‘재래시장에 가면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길거리마다 굉장히 가변적인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과일장수가 시끄럽게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철물점에서 소음이 나기도 하는 식이죠. 저도 그 근처를 몇 번 걸어봤는데 정말 길 공간과 거리가 거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긴장을 주면서 그 리듬도 변합니다. 안정되게 조성된 아파트 단지는 너무 무미건조하죠. 산책하는 사람과 그를 졸졸 따르는 강아지 외에는 풍경의 변화가 적습니다.

저는 신도시에서 사는데 제 아이들이 이곳에서 10년 20년 성장했을 때 이들의 내면세계가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장원에서 뽀글뽀글한 파마를 한 후 수건을 뒤집어쓰고 나와 길가를 걸어가는 사람을 볼 일도 없을 거고, 리어카와 트럭의 소란을 볼 일도 없을 테죠. 허허벌판에 아파트를 세운 일산이나 분당처럼 역사가 적은 곳은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못할 겁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분들이 자기가 사는 공간과 어떤 대화를 나누어볼지 고민하고 직접 주위를 보고 찾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Q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 그리고 어떤 장르의 영화를 즐겨 보시나요?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작품을 꼽는다면요?

A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은 도스토옙스키,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읽었는데, 제게 심미적인 지도가 되는 작품이라 늘 가까이 합니다. 그리고 지도책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계전도와 대한민국전도는 물론이고, 도시지도, 소소하게는 교통지도, 백화점의 층별 구성도, 캐리비안베이 안내지도 등등을 살펴보길 좋아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선의를 비웃는 영화들을 많이 봅니다. 데이비드 린치, 폴 토머스 앤더슨,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감독들과 그 당대의 집합적인 정서가 녹아나는 그런 영화들을 주로 봅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영화를 즐겨보거나 개봉영화를 꼭꼭 챙겨보지는 않습니다. 엄선, 선별하며 1년에 서너 편 정도 보는 편이고, 봤던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 다시 보려고 합니다. 볼 때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꼭 발견하게 됩니다.


Q앞으로 어떤 책들을 집필하고 싶으세요? 혹 준비 중인 책이 있으신가요?

A 지금 준비하는 책은 『인공 낙원』의 한 파트로 등장했던 ‘광화문광장’에 관한 책입니다. 조선시대 때 광화문과 그 앞 육조거리가 조성된 후로 성리학적 통치 이념이 어떻게 공간을 통해 실천되었는가. 일제강점기 때 제국주의 식민 통치 이념이 조선총독부와 그 아래의 남대문 그리고 남촌까지 어떻게 관철되었는가. 해방 이후 박정희 정권 때 다시 중앙청에서 서울역 남대문까지 국가주의가 어떻게 실천되고, 또 최근에 광화문광장을 리노베이션하면서 세종로 일대가 어떻게 자본과 유희의 공간으로 변했는가를 한 권의 긴 단행본으로 쓰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년 중에 마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축구에 관한 책인데 그동안 썼던 축구칼럼들을 기반으로 하되 축구의 역사, 미학, 가치 등을 좀 더 심도 있게 풀어내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Q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인사 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일상에서 작은 틈을 내어 인간이 2,30년 전에도 이렇게 살았을까, 그리고 2,30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를 통해 익숙한 자기 공간과 익숙한 일상 문화가 얼마나 낯설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실천하는 일상적인 문화 행위가 자연스럽다고 여기기보다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해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져야 하는가를 궁리해보는 것, 이 책이 그러한 생각의 단초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