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변방의 집, 창조의 공간>을 펴낸 최우용 작가 인터뷰


Q∥ 지난 2013년에 출간한 『다시, 관계의 집으로』를 통해 일산 밤가시초가, 제주의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등 주로 잊히거나 사라져가는 건축물들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바 있습니다. 그 사이 근황을 간략하게 들려주신다면요? A ∥ 저는 주목받을 만한 점이 거의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주로 뚜벅이처럼 혼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었는데, 『다시, 관계의 집으로』 출간 즈음해서는 연인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둘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인  『변방의 집, 창조의 공간』을 한창 쓰고 있을 때에는 아내와 제가 만든 또 다른 제3자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또는 등에 업고) 셋이 돌아다녔습니다. 지금은 좀 더 공부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기 위해, 제도권 교육으로 편입해 학생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또 주말에는 애를 보고 있습니다. 편하게 먹고 살고 싶은데, 답이 안 보여 매일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Q ∥ 이번에 펴낸 『변방의 집, 창조의 공간』은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요? 3년 전 『다시, 관계의 집으로』 출간 이후, 건축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지칭하는데, 책제목에 ‘변방’을 넣은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A ‘자칭’아웃사이더는 아닙니다. ‘타칭’아웃사이더도 아닌 듯하고, 다만 중심과 어울리기를 조금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로 변방과 구석을 힐끔거리게 되는데요, 아마 스스로 결핍이 좀 많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많다보니, 나와 같이 조금 부족한 것들을 볼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동질감도 느끼고는 합니다. 그런데 결핍이 많은 저나, 변방과 구석의 결핍이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은 그 부족함과 모자람으로 보다 나은 ‘다른’ 무엇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다른’ 무엇을 향한 욕망과 갈망에 올바른 방향성이 부여되었을 때, 힘찬 창조성이 발현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변방에 놓여 있는 작은 집들이 오히려 그런 창조의 힘으로 반짝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Q∥ 최북단의 대진등대, 제주도 방주교회, 밝맑도서관의 마당, 경춘선의 폐역들, 전주의 재래시장들, 목욕탕이 있는 안성면민의 집 등 이 공간들을 고른 기준(?)과 까닭이 궁금합니다. 이들이 어떤 면에서 ‘변방’과 ‘창조’라는 키워드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지요?

A∥고(故)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변방은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공간 개념이 아닙니다. 영원한 중심이 없듯이 영원한 변방 또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은 무시로 그 자리를 바꿔 섭니다. 이 책에서 변방은, 다만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먼 곳이 아니라, 구석자리에 위치하지만 부족함과 모자람을 창조의 힘으로 슬기롭고 담담함으로 받아내는 곳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언급한 곳들은 그런 모든 곳들이라 할 것입니다.



Q∥ 이일훈 선생님(건축가)이 이 책에 대해 보내준 추천사 중 “그가 어느 날, “어떻게 하(사)는 것이 건축의 길일까요?”,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되어 자본의 시녀가 되어야지.” 믿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그 후 우리는 책 읽는 동아리에서 만나는 관계가 되었다. 무슨 일로 저녁에 문자를 보냈더니 오밤중(건축설계하는 이들은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 한다)에 답이 왔다. “노비처럼 일하느라 응답이 늦었습니다.” 그래, 이 시절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의 노비가 아니겠는가. 그런 형국에 이곳저곳을 찾아 공부(답사야말로 큰 건축공부다)하고 글 쓰는 바지런함이 미쁘다. 그가 찾은 곳(장소‧건축)은 지리적으로 변방 또는 구석이지만 하나하나가 중심이다. 무엇으로부터의 노비임을 자각할 때 스스로 주인이 되듯이 모든 변방이 중심임을 깨칠 일이다.”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건축이란 무엇인지, 건축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등 그 고뇌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선배의 추천사에 대한 화답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지요?

A∥우리는 ‘어른’이란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은 많지 않다고, 감히 저는 생각합니다. 어른은 다만 육체적으로 다 자란 사람 또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란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 인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란 정치적 의미라기보다는 윤리적 사회를 향한 실천적 행동 의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 해 전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이나 올해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셨습니다. 문뜩 우리 시대 큰 어른들의 부재가 서글퍼집니다.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은 어른이십니다. 선생님은 건축의 직능이란, 다만 디자인을 하고 설계도면을 그리는 것을 넘어, 건축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 또는 윤리적 의미로써 작동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실천적 행위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일훈 선생님이 설계한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보다도, 선생님이 건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뼈아프게 던지는 메시지를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선생님이 설계한 건축물 중에 ‘기찻길 옆 공부방’이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교 다닐 때 처음 본 이 건축물을 보며, 제가 건축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게 커다란 울림과 여운으로 남았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의 건축은 자본주의의 견고한 틀 안에 온전히 포섭되어 있습니다. 건축이 인간의 삶에 복무하기에 앞서 자본에 복무하는 모습을 우리는 매일매일 목도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적 가치가 사실상의 존재 가치 전부인 아파트가 그러하며, 거대 소비 공간인 광활한 면적의 쇼핑몰이 그러하며, 눈요깃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상품으로써의 건축물 등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 자본주의의 자장에서 벗어나 건축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을 포함한 우리 시대 소수의 몇몇 ‘어른’ 건축가들은 그 틈을 벌려, 삶에 복무하는 건축을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축은 우리의 삶뿐 아닐까요? 우리를 둘러싼,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회의. 이 회의를 통해서 우리의 많은 집들이 자본이 아닌 우리의 삶을 위해 복무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일훈 선생님께 배운 건축의 가치 그리고 건축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책에 담은 공간들 중 ‘변방의 집, 창조의 공간’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는 곳, 저자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곳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A∥저는 화가 이중섭을 생각할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의 불같은 예술혼과 보석 같은 그림을 볼 때면 다시 삶의 희망을 얻고는 합니다.


이중섭은 지지리도 가난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대부분이 가난했지만, 그는 특히 더 가난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처자식과 더불어 살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어린 아들을 처가인 일본으로 보내고 외롭고도 불같이 혼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집은 제주도 서귀포시 섶섬이 보이는 언덕 위에 있습니다. 그는 초가삼간조차 온전히 다 빌려 살지 못했고 한 칸 방을 얻어 네 가족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이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세 들어 살던 초가의 단칸방 자체는 사실 창조의 공간과 무관해 보입니다. 그 허름하고 가난한 공간을 창조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그 작은 공간에서 삶의 위안을 얻으며 우리 미술사에 찬연히 빛나는 그림들을 그려냈습니다. 저는 그의 단칸방을 볼 때마다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인간이 위로와 위안을 얻는 공간은 물리적 크기와 화려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제주도 푸른 밤이 간절히 보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서귀포로 가서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를 봐야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글들을 쓰고 싶은지요? 준비 중인 책이 있나요?

A∥30대 중후반인 저는 비교적 민족주의적(?) 색체가 강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특히 일본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는 항일과 극일 등의 용어들이 꼭 뒤따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에 대한 무시와 멸시 그리고 왠지 모를 경쟁의식 또는 단순 여행과 즐길 거리로서의 일본 문화. 아마 이 정도가 우리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 또는 정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좀 더 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라는 물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을 다니며 우리와 그들의 같은 모습과 다른 모습을 찾아다녔습니다. 건축으로 밥벌이를 하는지라, 저는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건축을 통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을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본 건축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통해 우리를 비춰 볼 수 있는, 타자로써의 일본 건축이야기가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며 또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한없는 감사를 느낍니다. 저는 사실 책 출간 이전까지는 글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생활 속에서 항상 글을 쓰고 있는 저를 볼 때마다, 새삼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만족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정도라면 아마 자유롭게 일기 정도만 쓰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글이 아주 작은 생각의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직 설익고 부족한 글이지만 정말 그러했으면 참 행복하고 보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바람이 살랑 불어가듯 편하게 읽어주시되 그 바람소리의 여운을 느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