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2005년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흥망사』를 출간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책을 펴냈습니다. 『일본제국흥망사』는 당시 대통령이 읽고 추천하는 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들려주십시오.
A∥네, 오랜만에 궁리에서 책을 내게 됐네요. 그동안 저는 학술 논문은 꾸준히 펴내왔는데, 다만, 일반 독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내지 않아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제국흥망사』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바람에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당시 책에서 제가 알리고자 했던, ‘일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메시지는 아직 우리 사회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대통령께서도 제 책의 의도와 달리 강경한 대일 외교를 천명했는데, 지금의 한일 간 무역 갈등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70년 이상이 지난 21세기에, 죽창과 의병이 정치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평범한 학자로서 지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국제법적 문제에 대하여 정부에 자문도 하고, 국제회의도 많이 참석하면서, 우리가 안고 있는 외교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외관계라는 건 상대가 있는 것인데, 우리의 시각은 아직 민족주의에 머물러 있어서 합리적인 대외 정책의 수립이 힘들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Q∥『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은 『일본제국흥망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연결지점이 있는지요?
A∥『일본제국흥망사』는 제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가졌던, 한일 양국의 차이나 한일관계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저의 작은 해답입니다. 일본은 왜 근대화에 성공하여 선진국이 됐는데, 우리는 왜 일제에 침략 당하고 분단국이 됐는가? 한일관계는 왜 정상적이지 않은가? 학문적・정치적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답이 있겠지요.
저는 『일본제국흥망사』에서 일단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한국 침략이라는 맥락에서, 우리의 해방과 독립의 시기에 주목했습니다. 일본의 항복이 두 달만 빨랐으면, 소련이 극동으로 이동하여 한반도로 들어올 수가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의 분단도 없었겠지요. 남북한의 대립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의 북핵 문제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90년대 중반 이후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제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 시점이 한반도의 갈등에 대해 갖는 함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미국의 핵개발 시점이 기막히게 7월 중순이었기에 한반도가 분단됐고, 그 연장선에서 북핵의 위협 속에 우리가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습니다. 즉, 핵무기의 투하로 시작된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이제는 북한의 핵개발로 더 위험에 빠지게 됐다는 문제의식, 그것이 이번 책의 집필에 대한 직접적 동기가 됩니다.
Q∥1960년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공동 핵개발 이후 핵확산의 역사는 어느덧 60년이 다 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5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스스로 ‘비핵무기국’의 지위를 수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핵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요동치는 국제사회의 핵질서에서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이 다른 핵 관련 도서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A∥이 책은 핵무기 개발이라는 국가실행의 역사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생각한다는 관점에서 저술한 것입니다. 1994년부터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고 보면, 사반세기 이상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왜 북핵 문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 대한 규명 차원에서, 5대 핵강대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에서 핵확산의 역사를 살펴본 것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5개국을 제외한 ‘사실상 핵무기국들’은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를 거부하고 핵개발에 성공했습니다. 5대 핵강대국들은 냉전의 심화라는 국제질서 속에서 경쟁적으로 핵무장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NPT 체제와 핵강대국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국 핵개발을 했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시사점 내지 함의가 있다고 봤습니다.
기존의 핵 관련 책들도 국내외에 많습니다. 그러나 핵확산의 국가실행이라는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분석한 책은,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없는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나 국제법 또는 역사라는 특정한 학문의 시각으로만 북핵 문제를 바라보면, 현실적 해답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법론이나 접근법에 얽매이지 않고, 핵확산의 국가실행과 역사의 맥락에서, 북핵 문제의 실천적 해법의 모색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물론 제 전공인 국제법이라는 규범적 접근과 국제관계론의 몇몇 모델을 분석의 틀로 사용하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제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올바른 대북 핵정책의 모색과 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교수님은 이 책에서 북핵 위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패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둘째,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국’ 내지 ‘실질적 핵보유국’이 된다면, 한국에게 남은 옵션은 무엇인가? 지금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실천적 해법이 될 만한 것은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A∥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패한다면, 한국이 감당해야 할 안보파탄의 상황은 가늠하기조차 힘듭니다. 핵무기에 비해 절대 열세인 재래식 전력으로 우리가 북한의 상시적 위협과 협박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킬체인이나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체계 등 이른바 ‘3축 체계’는 북핵 앞에 무용지물입니다. 최근에 북한이 발사에 성공한 이스칸데르 형 미사일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시켰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2020년경까지 최대 100개 정도의 핵무기를 갖는다고 합니다. 북한이 100개의 핵무기를 가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처럼 ‘사실상 핵무기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미국의 ‘확장억지’에 계속 기대거나 독자적 ‘핵억지력’을 강화하는 것 두 가지뿐입니다. 독자적 ‘핵억지력’은 전술핵무기의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방식의 도입, 그리고 핵무장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확장억지’는 미국의 의사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요. 언제까지나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지도 문제가 됩니다. 한국의 ‘핵억지력’도 미국이 동의해야 실질적으로 강화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한국의 대북 정책은 독자적으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핵무장 이전에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무기 공유 방식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 정부나 미국의 정책이 그런 전향적인 방향으로 나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지부진한 대북 협상에 기대면서 희망적 사고로 북한의 선의만 바라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핵무장을 핑계로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기 공유를 미국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Q∥교수님은 본문에 서술한 각국의 실행을 통해 핵 문제에 대한 거시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나 이스라엘의 이라크와 시리아 원자로에 대한 폭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발적 핵폐기 그리고 이란의 핵동결이 북핵 문제에 갖는 함의는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2019년 5월 4일과 9일에 북한이 이스칸데르 형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사실은 북한의 비핵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을 정당화한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북한은 7월 25일 이후에도 8월 16일까지 여섯 차례나 더 미사일을 발사했고요. 이를 통해 어떤 상황임을 우리는 추측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요?
A∥이스라엘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개발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그들의 원자로를 완공 직전에 선제・기습 공격한 것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반면, 완성했던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해체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정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리비아의 자발적 핵개발 폐기와 아랍의 봄으로 인한 카다피의 실각도, 북한이 반대하는 리비아 모델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전 세계를 파멸로 이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집요한 반대와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으로 위기가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핵개발이 북한의 핵개발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습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부토 대통령의 결연한 태도는 북핵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최빈국에 가까운 파키스탄이 인도에 맞서 핵강대국이 된 배경을 보면,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핵무기와 그것을 운반하는 투발수단, 즉 미사일과 잠수함까지 북한이 개발한 상황에서 북한의 자발적 핵폐기는 기대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북한은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및 남아프리카공화국과는 군사적・정치적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제는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사실상 핵무기국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실천적 해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Q∥과거사 문제와 경제 보복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북핵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한일 양국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까요?
A∥말씀하신 대로, 현재 과거사 문제나 경제 보복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입니다. 그러나 안보 문제는 역사나 경제 문제와는 분명히 구별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예컨대, 한국이 북핵 문제의 실천적 해법을 모색할 때, 일본이라는 변수를 활용할 수 있으면 유리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기 공유 같은 방법과 관련하여,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안보 문제에 관한 한, 한일 양국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쨌든, 북핵의 최대의 잠재적 피해자는 한국과 일본이니까요.
핵무기로 패전한 일본은 핵무장에 대해 겉으로는 엄격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관대합니다. 핵무기를 갖지 않은 국가 중에서 미국으로부터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허가받은 국가는 일본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책에서 일본의 피폭과 핵개발 가능성에도 지면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이제 한국이나 일본이 생각하는 대북 핵억지력의 강화는 양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해서 성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Q∥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북핵 문제의 해법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먼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핵무장한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가?" 만약 평화 공존에 대한 자신이 있으면, 지금처럼 북한과 힘든 협상을 계속해도 상관없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는 실천적 해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평화도 공짜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스스로 독립하지도 못했고, 스스로 침략을 물리치지도 못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지배를 종식시켰고, 미국이 북한의 침략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빌려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은 독자적으로 자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말했듯이, ‘힘이 뒷받침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가졌을 때 비로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real peace)는 강력한 억지력으로 보장된다는 기본을 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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