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세계의 깊이>를 쓴 인문학자 김우인 인터뷰


Q ∥ 우선 독자들에게 자신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종교학, 철학, 신학 등을 공부했고,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해왔습니다. 앞으로도 넓은 의미의 문인(文人)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천성에 방랑벽이 있어서인지 하나의 분과 학문만을 평생토록 하겠다는 생각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학부 이래 학위과정을 마칠 때까지 계속 이런저런 학문들을 기웃거리고 공부했었죠. 그렇지만 고전을 읽는 것은 아마 남은 생애에도 계속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음악에 관한 고전의 주해서를 쓰고 있습니다. Q ∥ 『세계의 깊이』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불교 읽기와 그 너머’라는 부제에서 나타나듯, 불교가 새롭게 변화해야 하는 까닭을 담은 책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A ∥ 이 책은 친한 선배가 제안을 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책도 나름의 운명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느꼈습니다. 독특한 체험이었습니다. 불교는 제가 학부 때부터 줄곧 공부해왔습니다. 석사는 ‘유교’로, 박사는 ‘도교’를 주제로 썼지만 아마 대학에서 수강한 과목은 불교가 가장 많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엔 공부를 하면서도 뭔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불교가 워낙 다양한 문화에서 방대한 문헌이 있기에 어느 문헌의 성격이 불교사 전체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는가를 가늠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으니까요. 이 책을 쓰면서 저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한 불교를 전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저에게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독자들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군요. 이 책의 전반부는 불교사 전체를 제 나름의 시각으로 압축한 글을 대화형식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불교의 주요 문헌에서 핵심되는 문장들을 발췌해서 선집한 것입니다. 경전을 직접 읽는 맛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독특한 형식의 불교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너머’라는 말을 부제에 쓴 것은 기존의 불교 관념에서 한번 벗어나서 봤으면 하는 뜻이 강합니다. 불교는 물론 종교지만, 불교를 좁은 의미의 종교로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생각의 관성에서 벗어나 불교를 다시 보면 훨씬 더 풍요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kungree.com/book/book_detail.html Q ∥ ‘세계’라는 단어가 불교 용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책 제목을 왜 ‘세계의 깊이’로 정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 ‘세계(世界)’라는 말은 본래 산스크리트어 로카다투(loka-dhātu)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불교 용어입니다. 그것은 해와 달이 비추는 범위로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네 개의 대륙을 지칭합니다. 여기에 천상과 지옥도 포함하여 대체로 우주의 의미로 쓰였죠. 후에 世는 ‘시간’을, 界는 ‘공간’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되었습니다. 세계는 시공의 통일체로서 우주(宇宙)인 셈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이 세계라는 말 안에는 내밀하게 불교적 의미가 살아있고, 세계 전체 안에서 불교가 말하는 진리를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의도에서 쓴 것입니다. 불교는 좁은 의미의 종교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죠. 다시 말하면, 모든 것 안에 감추어진 진실의 깊이를 이해해보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Q ∥ 1부는 불교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대화로 구성되어 있고, 2부부터는 붓다의 생애와 함께 사성제(고집멸도)와 관련된 불교문헌 속 구절들을 선별해 모았습니다. 그만큼 ‘고집멸도’라는 주제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지요? A ∥ 네 가지 거룩한 진리(사성제)로서의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합리적이며 실천적인 길로서 불교의 총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초기에 설법하신 내용이죠. 불교에는 다양한 이론과 교의가 있는데, 이 사성제 안에서 다 포괄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Q ∥ 발췌한 구절들을 구슬에 엮듯 꿰어서 불교라는 것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 책을, 특히 2부를 어떻게 읽어나가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 2부는 불교사 전체 중에서 주요 문헌의 내용을 선집한 것이기에, 다양한 역사와 배경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마치 묵상하듯이 천천히 읽으면, 꼭 그 배경을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1부의 불교에 대한 개괄을 먼저 읽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그 발췌한 문헌을 찾아 직접 읽는 것도 방법이겠죠. 제 책은 그 문헌들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제 책에서 불교의 모든 것을 만족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 책을 쓴 목적도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불교가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수천 년간 메시지를 전해왔구나 하는 것에 대한 맛보기로서 제 책은 의의가 있습니다. 입문서가 모든 것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지만, 관심을 갖게 하고, 그야말로 문으로 들어서게(입문) 할 수는 있습니다. Q ∥ 현대 사회에서 앞으로 불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를 찾아가게 될까요? 앞서 드렸던 질문과도 연결되겠는데, ‘불교 너머’의 의미를 더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A ∥ 저는 이 시대가 제2의 축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는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등의 성현이 출현해 그들을 중심으로 거대 문명이 형성된 시기입니다. 인류가 그들을 통해 어떤 정신적 돌파를 한 시기죠. 지금은 지구촌의 시대죠. 이 모든 문명의 지혜들을 아우르고 그것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시기라는 의미에서 제2의 축의 시대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를 공부하되 불교의 한계와 제약을 넘어서야 하는 때인 것이죠. 다른 종교도 다 마찬가지인 것이고요. 돌파를 하려면 우선 자기 부정이 따라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나, 무엇이 문제인가를 반성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은 자기를 부정하고 초극하는 길을 먼저 제시한 점에서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해주었다고 봅니다. 저는 불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나 사상에서 ‘그 너머’를 물어야 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Q ∥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 세상에서 가장 심한 편견 중의 하나가 종교적 편견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무엇이든 종교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께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에 대해 정말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의사가 지닌 의학이라는 지식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한국경제나 세계경제에 대해 경제학자의 말을 듣는 것은 우리가 경제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전문적 견해를 좋든 싫든 들어보는 것이죠. 헌데 종교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생각하면서, 그 생각에 근거하여 또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삶이나 타인을 판단해버립니다. 이런 태도는 역사적으로 늘 반복되어 왔습니다. 묻고 의심하는 것도 굳건한 신앙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큰 물음이 없으면 깨달음도 있을 수 없지요.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하나의 종교적 교의나, 그 종교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평생을 공부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른 종교를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먼저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는 것이 편견과 배타적 관념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서로 고립되어 있는 종교라는 관념 자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거대 종교들은 대개 아무리 오래 거슬러 올라가도 3천 년 이상을 소급할 수 없습니다. 그전에는 뭐가 있었을까요? 지금과 같이 나누어진 종교적 세계관 밖으로 탈출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더 큰 세계를 만나기 위한 작은 세계의 껍질을 깨는 약간의 고통이 필요할 뿐이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우리 자신은 물론 우주와 인류의 역사 전체를 온전히 통합해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시기입니다. 이런 축복의 기회를 자신의 작은 오만과 편견 때문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거니와 거창하게는 세계의 평화에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