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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치매 가이드북 <엄마의 공책>을 펴낸 작가 유 경 인터뷰


Q영화 <엄마의 공책>이 얼마전에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 제작에 치매 관련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2018년 2월 8일 <‘엄마의 공책’ 국회상영회>에서의 특강을 시작으로 현재 “새로운 치매 패러다임, 치매는 상식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엄마의 공책>과 책 『엄마의 공책』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 시작은 영화였습니다. 30년 동안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최고의 손맛을 가진 어머니 애란과 대학 시간강사 아들 규현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법이라곤 없는 쌀쌀맞기 짝이 없는 모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이상합니다. 단골 채소장수와 돈을 줬니 안 줬니 싸우질 않나, 냉장고 속에 양산과 지갑을 넣어 두질 않나, 결국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게 되고 자식들은 어머니의 반찬가게를 정리하기로 합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은 어머니가 삐뚤빼뚤한 글씨와 어설픈 그림으로 요리 레시피를 적어 놓은 공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 <엄마의 공책>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돌아가셨거나 지금 이 시간에도 돌봐드려야 하는 뇌혈관성 치매,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을 동반한 초기 치매, 경도인지장애를 가진 내 부모님, 우리의 부모님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치매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영화가 치매를 중심으로 해서 어머니의 사랑, 가족 간의 화해와 관계 회복을 담고 있다면, 책 『엄마의 공책』은 영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치매의 발견에서부터 진단,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치매환자의 문제행동, 가족들의 심리, 치매환자를 대하는 방법, 집에서 돌봐드릴 때와 요양시설에 모실 때 알아두어야 할 것들, 아울러 치매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것인지를 하나하나 풀어보는 치매 가이드북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Q 함께 책을 쓴 한국치매가족협회 이성희 회장님과도 오랜 시간 막역하게 지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이 의기투합해 『엄마의 공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이성희 회장님과는 30년 전 CBS 라디오의 노인대상 프로그램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인터뷰 코너에서 노인문제 전문가와 진행 아나운서로 처음 만난 후, 우리나라 최초의 구립(區立) 노인복지관인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관장과 사회복지사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습니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서로의 자리도 달라져서 지금은 한국치매가족협회장 겸 노인요양원장과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과 시청각교육이라는 각자의 전공을 뒤로 하고 노인복지 현장에 뛰어들어 30년 세월을 보낸 그 처음 마음은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고, 노인복지 이슈 가운데서도 치매는 오래도록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었습니다. 치매를 노망(老妄), 망령(妄靈)으로 부르던 시절, “치매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인식 개선에 나서고 상담전화를 운영하며 치매가족모임을 꾸리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였으니까요. 거기다가 각각 뇌혈관성 치매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와 현재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계시는 89세 어머니, 치매는 아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홀로 살 수 없어 노인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91세 어머니와 초기치매 진단을 받은 시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 딸, 여성이라서 어떻게 보면 좀 더 쉽게 마음을 맞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국가까지 나서서 ‘치매국가책임제’를 약속할 정도로 ‘치매’라는 병이 그렇게 심각한 질환인가요? 요즘 들어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의 보도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A 2017년 9월 18일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습니다. 다른 중증질환도 많은데 왜 치매만 이렇게 국가가 책임진다고 나서는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치매는 우선 노인인구 증가와 맞물려 환자가 무섭도록 늘어나고 있고, 현대 의학기술로는 완치 방법이 없는데다가, 그 어떤 질병보다 돌봄이 중요해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예방주사나 위생교육, 혹은 환자 격리 같은 방법으로 발병률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치매국가책임제에는 ‘치매부담 없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담겨있는데 역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치매인구의 증가와 치매가족의 고통 심화,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 급증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그동안의 미흡했던 지원체계와 불충분한 정책을 보충 혹은 강화하고 거기에 새로운 정책을 추가로 시행하겠다는 것이지요. 치매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의 부담을 줄여서 국민 모두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사회 환경과 사람들의 삶은 쉬지 않고 변하는데, 그에 맞춰 모두가 실감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잘 실현되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시로 반영하면서 부족한 점은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책제목에 ‘치매’라는 단어를 넣지 않고 ‘엄마의 공책’이라는 서정적인 문구로 갔습니다. 영화와의 연계성도 있었겠지만, 이 제목이 ‘치매’와 관련하여 품은 상징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치매’가 아닌 ‘엄마의 공책’을 제목으로 삼은 것은, 치매라는 ‘병’이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서 치매이든 아니든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의 인생에 담긴 신비한 보물을 찾아내 읽으면서 대신 기억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고 행동을 명령하는 뇌에 병이 생겼다 해서 하찮은 사람이 되거나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병에 걸린 것뿐입니다. 그 병이 환자 자신의 인격까지 변화시키고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지만 존재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텅 비어 버리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살아내고 있는 치매환자. 그 삶의 무게가 결코 만만찮을지라도 버티고 있는 연약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치매는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병이 아니며, 뇌혈관이나 뇌세포를 가지고 있는 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입니다. 그러니 비록 어린아이들 표현대로 ‘생각주머니’가 깨졌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유지되도록 도우며 돌봐야겠지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병 앞에서 존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해 돌봄으로서 치매환자가 마지막까지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환자는 ‘치매’라는 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Q 『엄마의 공책』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각 부마다 일곱 가지 지침을 일러주면서 진행되어 매뉴얼북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 책이 다른 치매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A 뇌 사진이나 뇌 그림으로 시작하는 어려운 치매 이론서나 자녀들의 극진한 치매 간병일기가 아닌,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모든 장마다 영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각 주제마다 일곱 가지 항목을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저자 두 사람의 대화를 넣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치매가 의심되거나 치매 진단을 받고 충격과 황망함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치매환자를 돌보다가 벽에 부딪쳤을 때, 너무 어렵지 않고 손쉽게 치매와 치매환자와 치매가족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풀어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책 전체가 서로 이어지면서도 주제별로 어디를 펼쳐도 상관없이 각 장마다 독립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치매는 상식’이라는 주장에 맞게 누구나 이 정도는 상식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이 책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Q ‘새로운 치매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이제는 치매는 상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좀더 설명해주신다면요? A 치매는 한 사람, 한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부도 치매 부담 없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치매국가책임제’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 책은 정책과 제도에 대한 설명이나 사회적 서비스의 종류, 치매환자를 돌보는데 필요한 세부기술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치매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치매는 상식입니다!” 치매에 대한 상식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니 누구나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합니다. 알면 막상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받아들이기가 조금 덜 어렵습니다. 알면 어려움에 처한 환자와 가족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알면 치매에 걸린 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치매를 받아들이는 관점과 마음가짐, 함께 어울려 살아나가기 위해 고민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책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치매 환자와 치매가족이 이렇게 늘어나는데, 나도 부모님도 예외가 아닌데, 언제까지 남의 일로 여기며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치매에 대한 상식이 있으면 어느 날 우연히 거리를 헤매는 노인을 발견했을 때 적어도 환자가 놀라지 않게 다가가 말을 걸고 혹시나 옷 안쪽에 연락처가 적혀 있지는 않은지, 치매배회팔찌를 착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수 있겠지요. 집을 잃어버린 치매노인이 추운 겨울 골목 한 귀퉁이에서 아무도 모른 채 목숨을 잃는 일은 병든 노인이나 가족만의 잘못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치매에 대해서 알면 힘이 됩니다! Q 끝으로 독자들이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 굽은 길과 뻗은 길을 걷고 또 걸어왔고, 이제 쉬면서 한숨 좀 돌리고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 잠시 쉴 곳이 치매라는 의자일 줄이야…. 그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그 누가 있어 예상하고 마음 준비를 했겠습니까. 그러니 서로 도우면 좋겠습니다. 직접적인 돌봄과 간호로, 정책과 서비스로, 그것도 아니면 치매를 알고 치매환자를 이해하고 치매가족에게 진심이 담긴 따뜻한 손길 내밀 수 있도록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 최선을 다해 살아낸 시간, 당신들이 더는 기억하지 못해 함께 기억해드리고 함께 나누는 게 치매 아닐까요. 그러니 지레 겁내지 말고 애써 외면하지 말고 그냥 함께 걸어가 보면 좋겠습니다. 힘들면 좀 쉬고 서로 손잡아 일으켜주면서 말입니다. 영화 속 ‘엄마의 공책’에는 어머니의 음식 만드는 비법만 담긴 게 아니라, 기억과 추억과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도 우리들 각자의 공책에 인생을 써나가고 있고 치매어르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매노인은 병든 몸과 마음으로 우리 앞에서 여전히 최선을 다해 남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우리의 앞날을 가르쳐주는 선배이며 스승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인생의 끝자락에서 정성껏 오늘을 살고계신 어르신은 존재 자체로 사랑이며, 그 뒤를 따라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앞에 당신의 생을 기록한 낡은 공책 한 권 남겨놓고 훌쩍 떠나십니다. 누가 되었든 그 공책을 읽는 사람은 한 인생의 신비한 보물을 만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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