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페스트와 콜레라>를 우리말로 옮긴 양영란 번역가


Q우선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요새 근황은 어떠신지요?

A 며칠 전에 그래픽 노블 작품 한 편 번역 작업을 마쳤습니다. 요즘엔 만화를 선호하는 독자들이 많다 보니 예전에 비해서 그런 형식의 책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9월부터는 소설을 한 편 번역할 예정이고요.



Q올해 초 궁리에서 선보인 『삶을 위한 죽음 오디세이』에 이어 이번에는 소설 『페스트와 콜레라』로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십니다. 『페스트와 콜레라』는 어떤 작품인가요? 프랑스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A『페스트와 콜레라』를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페스트균을 발견한 알렉상드르 예르생의 전기’라고 말해야겠지요. 예르생은 미생물학의 아버지라고 추앙 받는 파스퇴르가 세운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결핵, 디프테리아 등의 질병 정복에도 큰 공을 세운 학자로, 세상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페스트균을 찾아내 인류를 이 균에 의한 대량 학살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준 위대한 인물인데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마도 그가 한 우물을 파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개의 우물을 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겁니다.

그런데 작가가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규정했듯이,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띕니다. 우선 구성면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전기가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는 반면 『페스트와 콜레라』는 예르생의 말년에서 시작하여 초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말년으로 돌아오는 식이면서, 우리와 동시대인인 작가는 전지전능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과거의 사실을 기술하는, 한마디로 제법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전기에서 흔히 보이는 1인칭 서술에 따르는 부담을 유령의 기술(記述)이라는 3인칭 서술로 바꾸어놓음으로써 훨씬 자유로워지는 이점을 챙겼겠지요.

또한 내용 면에서도 예르생의 생애에 집중하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직접적인 주변인물은 물론, 실제로 그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지만 그가 살던 시대를 특징 지워주는 인물들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낳은 천재 시인 랭보의 파란만장한 삶은 예르생의 생애와 거의 평행선을 그려가며 비교되고 있습니다.

예르생이 살았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이라는 시대는 산업혁명,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 양차 세계 대전 등이 일어난 인류 역사의 격동기에 해당됩니다. 그처럼 복잡한 시기를 산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려면 당연히 유달리 풍부한 관점이 필요했을 테죠.

Q『페스트와 콜레라』를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대목이나 흥미로웠던 점을 들려주신다면요?

A과학자의 일생을 다룬 전기라고 했을 때 갖게 되는 선입견, 그러니까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내용도 어렵고, 글 자체도 무미건조하고 딱딱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번역하는 동안 내내 짧고 간결하면서도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져서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를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과학자로서 보상을 바라는 연구가 아니라 자연의 원리 자체를 알아가는 과정에 몰입할 뿐, 그렇게 알아낸 지식에 따라오는 세속적인 이득에 초연했고, 가진 것을 모두 공동체에 나누어주는 예르생에게서 어쩌면 성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감동스러웠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고대 로마 시인들의 시 번역에 열중했다는 노후가 특히 감동스럽기도 하더군요. 과학과 시가 어쩌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가보다 싶어서요.



Q저자인 파트리크 드빌은 젊은 시절부터 중동, 나이지리아, 알제리, 쿠바, 우루과이 등을 두루 여행하였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국적인 무대와 매혹적인 인물, 역사 이야기를 잘 엮어낸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여행’, ‘떠남’이라는 행위가 작가에게는 작품활동의 중요한 뿌리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말씀하신 대로 파트리크 드빌은 여행도 많이 했고, 그때마다 책도 여러 권 썼습니다. 1987년 데뷔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1993년 쿠바에서 6개월을 머물면서 작품 세계에 큰 변화가 온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가 한 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만나게 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다음 책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끝말 이어가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의 여행은 사실 그가 마음에 품은 모험가의 궤적을 따라가는, 즉 미래에서 온 전기 작가 유령의 여정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아직 국내엔 소개되지 않은 그의 전작 『캄푸치아』를 쓰면서 파비라는 인물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던 중 예르생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게 되어 『페스트와 콜레라』를 쓰는 식이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19세기 전문가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고요.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그는 몇 주가 되건 도서관에 머물면서 철저하게 자료를 모으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끊임없는 왕복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자료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을 현지에 가서 보고 확인하며, 자기 나름의 평가와 소감을 정리한다는 말이겠죠. 이 두 과정이 끝나면 그는 꼭 외국의 호텔 방에 틀어박혀, 다시 말해서 더는 도서관에도 갈 수 없고 짐 가방에 넣어온 자료 외에 다른 자료는 수집할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가둔 다음에 집필을 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실질적인 집필 시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편이라더군요.

알렉상드르 예르생

Q 『페스트와 콜레라』에는 ‘전기 작가 유령’이 등장합니다. 이 유령은, 종횡무진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주인공인 예르생을 포함하여 랭보, 파스퇴르 등 다양한 인물의 삶을 기록하죠. 선생님께서 만약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느 시기, 어떤 인물의 삶을 엿보고, 기록하고 싶으신지요? A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이제껏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 얼핏 떠오르는 대로 답변을 드리자면, 최초의 직업여성이 누구였는지 알아내서, 그 여자를 따라가 보고 싶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Q 그동안 번역하신 작품을 보면, 『삶을 위한 죽음 오디세이』 같은 인문학과 철학이 버무려진 과학 책에서부터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같은 사회 고발 책, 기욤 뮈소의 『내일』이나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같은 문학작품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작업하셨습니다. 장르마다 번역하는 즐거움이나 어려움이 미세하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솔직히 번역 일을 처음 시작할 땐 소설 작품을 주로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제가 원래 잡식성으로 호기심이 많은 데다, 감동이랄까 울림 같은 것이 전해지는 소설을 만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다 보니, 나의 감정이나 사회 전반적인 정서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다양한 책 쪽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확대되더군요. 조금 도식적인 대답이 되겠지만, 과학이나 인문학 책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문학 작품은 문체라거나 여운 같은 요소까지 세심하게 살펴서 힘자라는 데까지 원문에 가장 가깝게 옮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A『페스트와 콜레라』는 매우 예외적인 한 인물 알렉상드르 예르생의 삶을 소개하는 소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 태어난 인물에 관한 글이지만, 그를 우리와 동시대인으로 느끼게 해주는 작가의 탁월한 문학적 솜씨 덕분에, 절대 ‘고리타분한 역사 소설’이라는 지루함 없이 읽힐 거라고 장담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베트남 여행 갈 때 흔한 안내책자들 대신 이 책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갈까 합니다. 저의 이 느낌을 공유하는 독자들이 많으면 진짜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