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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20세기 기술의 문화사>를 쓴 과학기술사 저술가 김명진 인터뷰


Q ∥ 먼저 독자들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전작  『야누스의 과학』,  『할리우드 사이언스』를 잇는 새로운 저작을 출간하셨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집필 구상을 하게 되셨나요? 

A  안녕하세요. 서울대와 동국대에서 20세기 과학사와 기술사 강의를 하면서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김명진입니다. 이 책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2012년에 한양대에서 ‘과학기술과 문화’라는 과학기술학(STS) 연계전공 과목의 강의를 맡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한동안 고심하다가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2차대전 이후 주요 기술들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좀 더 본격적으로 다뤄 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그동안 모아 놓기만 하고 미처 들쳐보지 못했던 책과 논문들을 읽고 강의할 요량으로 강의계획을 짰고, 한 학기 동안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면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다행히도 수강생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데 힘을 얻어서 이후에도 여러 차례 ― 한양대뿐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영화와 자연과학’ 강의에서도 ― 강의를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보강할 수 있었고요.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2013년에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안정적인 집필 여건이 마련된 점이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Q ∥ 이번 책은 핵, 우주, 로봇/인공지능, 생명공학, 네 가지 분야로 20세기 기술의 역사, 문화사를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20세기를 만든 여러 기술 중에서 특별히 이 네 가지를 선택하여 풀어쓴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그리고 지금 이러한 20세기 기술을 살펴보는 의미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사실 2차대전 이후의 현대 기술은 종류가 대단히 다양하기 때문에 그 모두를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중에서 취사선택을 해야만 했는데요. 그 네 가지 기술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즐겨 봤던 SF 영화들에 그 네 가지 기술이 가장 흔히 다뤄졌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나 핵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테고, 인간이 달이나 화성, 혹은 목성과 토성의 위성을 탐사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들도 상당히 많지요. 또 인간이 만들어낸 컴퓨터나 로봇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게 되어 인간에게 반기를 들거나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괴물’이 날뛰는 내러티브 역시 거의 클리셰로 느껴질 만큼 친숙한 것이고요. 영화는 20세기에 사람들이 즐겨 향유한 대중문화 텍스트 중 하나이니, 그런 기술들이 특정한 형태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했다는 것은 곧 그것이 당대 사람들에게 중요한 기술로 여겨졌고 또 그들의 사고와 상상력을 사로잡았음을 의미합니다. 21세기로 접어들고도 한참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그런 기술들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당대에 떠들썩했지만 우리는 이미 망각해버린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런 기술들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그것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핵발전과 핵폐기물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이나 유인 우주개발에 관한 근래의 문제제기 등은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이 치열했던 20세기 중반의 국제정치와 무관하게 설명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해당 기술의 과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셈이죠.

Q ∥ 책에서 대중문화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많이 삼으셨습니다. 언론 기사, 소설, TV 프로그램, 영화 같은 대중문화에서 보이는 과학기술의 모습을 특히 중요하게 다룬 이유를 들려주세요. 

A  한마디로 말해, 그러한 대중매체들은 종종 일반대중이 과학기술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실험실이나 연구 현장을 접할 수 있는 기회나 계기가 거의 없고 이 때문에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할 때 신문, 잡지 기사, 소설, TV, 영화 프로그램 등과 같은 대중매체들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따라서 그런 매체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당대의 일반대중과 해당 기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요.

Q ∥ 이 책에서 (과학)기술을 대하는 양 극단의 태도를 비판하였습니다. 그것을 “기술에 대한 열광(과장)과 비관을 넘어서”라는 결론의 제목으로도 엿볼 수 있는데요. 언론이나 일반대중, 과학자 등이 (미래)기술에 보이는 이러한 양 극단의 시각을 몇몇 개 예로 들어주신다면? 그리고 이러한 양 극단의 시각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몇 말씀 덧붙여주신다면?

A  요즘까지도 논쟁을 야기하고 있는 생명공학의 여러 응용 분야들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가령 유전자변형(GM)식품 같은 경우를 보면 한편에서는 인류가 앞으로 직면할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자 구원자 같은 존재로 그려내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과학에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치부해 버리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인도주의적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다국적 거대 생명공학 회사들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사람들의 건강과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양 극단의 시각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논쟁적 사안에서도 다분히 극단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이는 오히려 우리 사회가 건강한 다원주의 사회임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어떤 기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높이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논쟁이 양극화되어 그 사이에 위치한 다양한 입장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어떤 기술을 보는 시각이 그러한 양 극단의 태도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된다는 것이죠. 이는 해당 기술에 대한 논의를 앙상하게 만들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강화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식의 입장은 이 기술의 무제한적 발전을 옹호하는 (극단적) 찬성론자나 이를 지구상에서 영영 추방해야 한다고 믿는 (극단적) 반대론자 어느 쪽에도 만족스러운 결론이 못될 수 있고, 따라서 논쟁 과정에서 주변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Q ∥ 최근 우리나라에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어린이 코딩 교육이 뜨겁고,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빅테이터 등과 같은 이러한 기술을 어떤 시각으로(양 극단의 접근 아닌)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사실 새로운 기술이 부상하면, 언론이나 학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 기술이 인류와 우리 생활에 미치는 미래를 예측해서 내놓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언을 해주신다면?

A  책의 서두와 결론부에서 이 주제를 살짝 건드리긴 했지만, 제가 별로 잘 아는 주제가 아니라서 다소 조심스러운데요. 일단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기술들의 미래를 내다볼 때 기술중심주의적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흔히 뭉뚱그려지는 기술들은 사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그중에는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기술, 시제품 단계로서 조만간 상업화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기술,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과학소설(SF)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기술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주창자들은 대개 이런 기술들을 한데 묶어 제시하면서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면 반드시 해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자율주행차가 대표적인데요. 이 기술에 얽힌 숱한 법률적, 윤리적 문제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창자들은 일단 먼저 기술을 사회에 도입해 놓고 그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은 대수롭지 않으니 그때 가서 논의하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는 기술을 사회에 도입하는 책임 있는 방식도 아닐뿐더러, 해당 기술에 회의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이 품고 있는 반감을 더욱 부채질해 결국 논의를 또 양극화된 형태로 만들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것은 그러한 기술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지, 그 속에 내재한 불확실성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기술의 도입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법률적, 윤리적 문제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우리는 그곳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사회적 논의의 장일 것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는 특정한 미래의 모습(가령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새롭게 뜰 것이다 같은)을 이미 정해진 것으로 던져 놓고 우리는 거기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큰데, 논의가 좀더 생산적으로 이뤄지려면 이러한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책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담론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잘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을 시도하였고, 1970년대 이후에는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을 둘러싼 산업체들이 부상했습니다.) 시민 입장에서 과학기술 분야를 어떤 접근 방식으로 보면 좋을지, 안내를 해주신다면요? 과학기술 분야는 사실 전문성이 있는 분야잖아요.

A  1960년대의 우주개발에서는 물론 냉전의 양 축을 이루는 초강대국 정부의 역할이 컸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우주로 진출하는 것이 인류의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던 ‘우주여행 지지자’들의 열망이 있었지요. 1970년대 이후 생명공학의 발전에서도 구체적인 금전적 이득을 노리는 제약회사와 생명공학 회사, 월가의 투자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로 거슬러올라가는 생명조작과 이를 통한 사회의 ‘향상’에 대한 과학자와 정책가들의 기대와 전망이 놓여 있었고요. 이런 과거의 모습들을 보면 오늘날에도 기술의 미래에 대해 특정한 전망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와 동기에서 그런 주장을 내놓는지를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런 이유와 동기는 설득력이 있고 존중할 만한 것인지, 그러한 이유와 동기를 그들만의 것이 아닌 나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지 같은 질문들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특히 과학기술의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유용한 접근 방식일 것입니다.

Q ∥ 앞으로는 어떤 주제로 연구를 계속하실 예정인가요? 

A  몇 년 전부터 냉전 초기와 그에 대한 반발이 나타난 ’68운동 이후의 과학기술 체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과 논문들을 읽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하는 학부 강의도 그런 쪽 주제로 맞춰져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작년 말에는 궁리에서 오드라 울프의 『냉전의 과학』이라는 책을 이종민 교수와 함께 번역해 내기도 했지요. 지금은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테크노사이언스의 역사와 철학』이라는 책을 집필하는 중입니다. 일이 예정대로 잘 진행된다면 3-4년 후에 출간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몇 말씀 해주신다면요?

A  책의 두께나 내용의 깊이에서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난 십수년간 개인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여러 주제들(20세기 과학사, 영화 속 과학기술, 과학과 대중매체, 과학 논쟁 등)을 한데 엮어내려 애쓴 책이고,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공력을 많이 쏟아부은 책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책인 만큼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재미있고 보람찬 독서가 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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