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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저작지원사업 당선작: 이명석의 <서바이버 프로젝트>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를 반대로 번역한 모습이다. 죽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삶을 역설로 체험하는 것이다. 서바이벌의 밑바닥에 뛰어내려 그 지옥을 만져보는 일은 곧 우리의 일상을 거울을 통해 비춰보는 것이다. 당신의 밑바닥은 어디인가요? 어디까지 떨어져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의 상황이라면 거기에서 행복까지 얻어낼 수 있다고 여깁니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반대로 물어본 것이기도 하다.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이라는 주제에 대한 저자의 탐구 과정은 지난 10여 년 간 알게 모르게 진행되어왔고, 몇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2012년 하반기 궁리의 기대작 <서바이버 프로젝트>를 미리 만나보자.



0. 제로의 장


지옥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0의 강진이 일본 동북 지역의 해안을 강타했다. 수십 미터의 쓰나미가 뒤를 이었고,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선박과 경비행기들은 물론 인근의 주택들까지 장난감처럼 부서져 뒤엉켰다. 지진파를 타고 최악의 공포가 일본 전역을 뒤흔들었다. 뉴스 속보로 참상을 전해 듣고 있던 한국인들에게도 그것은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후쿠시마에서 또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속보였다. 멜트다운, 방사능 유출, 핵폭발… SF 만화에서나 보던 단어들이 TV 화면에서 튀어나왔다. 현해탄이 그렇게까지 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다음은 우리 차례다. 사람들은 그 참혹한 아수라장이 당장 눈앞에 펼쳐지기라고 할 것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지옥이 빨간 잇몸을 드러냈다.


그때 나는 멀미를 느꼈다. 어떤 기시감 때문이었다. 이게 정말 일어나는구나. 내가 들춰보고, 정리하고, 상상하던 사건들이…… 어젯밤에도 노트에 꼼꼼이 그려보던 최악의 궤적들이…… 허허, 헛웃음까지 나왔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저 안에 있었다. 저 참혹한 파국의 잔해 속을 숨죽이며 거닐고 있었다.


대지진이 닥치기 몇 년 전이었다. 나는 다른 형태의 절망들을 뉴스 속에서 지나치고 있었다. 빚에 쫓긴 어느 탤런트가 자동차 안에 연탄 화로를 피워 목숨을 끊었다. 해직당한 한 남자가 술김에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을 치어 죽였고, 보상금으로 전 재산을 날린 뒤 길거리에 나앉았다. 평생 모은 돈을 저축은행에 부은 노인이 부도 뉴스를 보고 달려가다 목을 잡고 쓰러졌다. 학교에 적응 못해 등교를 거부하던 수천 명의 아이들이 골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구멍들.


나는 매일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그런 종류의 사건들을 구멍들이라 불렀다. 나는 오랫동안 그 구멍들을 조심조심 피하며 살아왔다. 가끔 방심해 다가가면, 구멍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살려줘!”


나는 귀를 막았다. 허겁지겁 잰 걸음으로 걸었다. 저건 내 일이 아니야. 인생은 좋은 것만 생각해도 짧잖아. 집으로 돌아가 양치질을 하며 안정을 취했다. 그러면서 구멍에 대해 배워온 짧은 지식을 떠올렸다. “구멍이란 건 말이야.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학교가 가르치는 대로 성실히 공부하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서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라구. 누군가를 밀쳐서라도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그 집을 키워나가는 거야. 통장이든 방바닥 아래든 가능한 많은 액수를 깔아두는 게 좋지. 돈이란 건 스스로 새끼를 치는 거니까. 그렇게만 하면 너는 구멍에 떨어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중요한 건 네 밑으로 뒤처져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안심할 수 사실. 왜냐고? 바로 그 사람들이 구멍을 메울테니까.’ 나는 그렇게 들었다.


그때 누군가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집배원이 법원에서 보내온 등기우편을 전해주었다. 내가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건물주가 파산해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전갈. 저간의 사정을 생략하고 정리하자면, 내가 십수 년 간 모아온 전 재산이 법원의 땅땅 소리와 함께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세 계약서는 어디에 뒀더라? 확정일자는 언제지? 우선순위는 어떻게 될까? 어째서 부동산을 안 끼고 집주인과 직접 계약했을까? 날짜를 볼펜으로 수정했는데, 그것 때문에 계약서 자체가 무효가 되지 않을까? 혼자 전전긍긍하다 자정이 넘었다. 불현듯 허기가 찾아왔다. 남은 국이라도 데워먹어야겠다며 가스레인지의 점화장치를 돌렸는데, 그날따라 불이 켜지지 않았다. 자동이체 신청을 안했더니 요금 연체로 독촉고지서가 왔던 게 떠올랐다. 겨우 석 달 요금을 안 냈다고 끊어버린 거야?


나는 집밖으로 나가 가스관을 더듬어갔다. 자정이 넘었는데 건물 밖은 훤했다. 그 건물에 살고 있는 10여 세대 모두 불을 켠 채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차단 경고 쪽지가 붙은 가스 밸브를 돌리며 생각했다. ‘저 불빛들 중에 누가 살고, 누가 죽을까?’ 애초에 이 집에는 담보가 많이 깔려 있었다. 경매로 넘어가면 저 불빛들 중 누군가는 순위에 밀려 떨어질 것이다. 이런 다세대 입주자들 중에 여분의 자산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빚을 내서 들어온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알거지와 같은 신세로 길거리로 나가야 한다.


화가 났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평생 변변한 투자나 모험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언제든 차곡차곡 현금을 모으고 그걸로 발붙일 작은 집을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철저한 안전제일주의, 소심에 소심을 더한 좀생원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 불황의 암운이 어찌저찌하여 집주인의 사업을 부도나게 했고, 좀 그럴싸한 집에서 살기 위해 건물의 부채를 우습게 여긴 나를 칼날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절박한 위기감이 찾아오자 주변의 사물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냥 남들처럼 줄을 지어 꾸준히 걸어가면 행복의 부스러기를 주우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상식은 거짓말이었다. 깜빡 졸다가 자동차 사고를 내든지, 형제의 빚보증을 잘못 서주든지, 내가 돈을 맡겨둔 저축은행이 망하든지…… 우리 삶의 뿌리를 일거에 도려낼 가능성은 도처에서 다채로운 시나리오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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