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책 밖에서 만난 작가 | 『약자의 결단』을 펴낸 강하단 저자 인터뷰




Q1. 안녕하세요. 궁리 독자들과는 처음 만나시는데,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1. 과학예술작가 강하단입니다. 대학에서 과학인문학과 환경윤리를 연구하면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작가라는 한 사람을 온전하게 만나 얘기하면서 기억들을 들춰내며 자아를 찾는 순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04년 루돌프 슈타이너를, 2010년 괴테를, 2011년에는 칸트를, 2013년과 2014년에는 공자와 맹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태어난 곳은 진주이고 어린 학창시절은 부산에서 지냈지만 인생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은 광주입니다. 울산을 거쳐 지금은 다시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Q2. 이 책을 통틀어 ‘약자’를 ‘선택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 순간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요. ‘선택할 수 없다’는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2. 그 선택도 누군가 정한 선택지 안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있어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밥도 하고 설거지, 빨래, 샤워도 하지요. 화장실 물도 내립니다. 가정에서 물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수도꼭지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편리하게 사용하니 고맙기는 하지만 선택의 차원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생수를 사 마시는 것도 약수터나 우물이 아니라 생수 회사에서 만든 여러 제품 중에서 골라서 구입하는 겁니다. 이렇듯 우리는 인프라가 공급하는 수돗물, 상품인 생수를 고르는 방식으로 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프라와 상품 뒤에는 어김없이 권력과 자본이란 큰 힘이 존재하고요. 전기도 콘센트를 통해서만 받고 이동하는 길도 도로 외에는 선택하기 힘든 것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Q3. 경제, 교육, 법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 사용하던 기호(언어)를 과감하게 내려놓고,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쓰자는 제안이 인상 깊습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에겐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A3.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축구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서로 말도 하고 감독의 지시도 받고 관중과 호흡하며 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소통은 축구공으로 하지요. 경기에서 공은 딱 하나만 허락됩니다. 우리는 그런 축구경기만 봐왔으니 공이 하나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공이 하나뿐이니 서로 가지려고 경쟁하고, 메시같이 엄청난 기술을 가진 선수를 당하기 어렵습니다. 메시는 인성도 좋지만 그를 둘러싼 프로축구 세계와 자본의 권력은 그렇지 못합니다. 공이 하나만 허락되어 생긴 권력 말이지요. 이때 경기에 공 하나를 더 투입해보면 어떨까요?


경제, 교육, 법과 같은 체계도 축구경기의 공과 같이 소통에 사용하는 기호(언어)가 제한되어 있고, 엄밀히 따져보면 하나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정화폐인 돈, 대학의 학위와 학점, 성문법이 그러한데 중앙에서 조절할 수 있는 하나의 기호만 허락됩니다. 그러니 상대방에 앞서 한 단계라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이지요. 지금 쓰는 기호(언어)를 없애고 전혀 다른 기호를 쓰자는 제안이 아닙니다. 다른 기호도 함께 쓰자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국가와 은행이 보장해주는 돈 외에 다른 돈을 사용하면 그 돈을 받아주는 곳이 과연 있겠냐고 회의적으로 보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처음 받아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 내가 뭐 그리 큰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또 이 물건은 나에게 충분히 많아서 넘치니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셈 치자. 국가와 은행이 보장해주지 않는 돈이라도 받아주자.”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생기는 겁니다.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지나 더 이상 팔수 없는 빵을 오늘 법정화폐가 아닌 돈일지라도 받고 팔고, 오늘 공연에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으니 법정화폐가 아닌 돈으로 티켓을 파는 거지요.


이런 움직임이 생기면 기존 체계가 유지하던 질서가 교란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 하나가 추가로 생깁니다. 이런 믿음이 디지털시대에는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시가 지배하는 축구경기에 축구공을 하나 더 던져주면 선수들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지만, 메시란 슈퍼스타를 굳이 극복하지 않더라도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축구 게임의 룰을 형성하면서 다른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축구경기에서 공이 두 개 이상이면 재미없다고요? 하지만 돈이 하나인 사회에서 신나게 군림하는 권력과 자본이 있고, 그 밑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사회야말로 가장 재미없는 세상 아닐까요?




Q4. 선생님 말 잘 듣는 학생, 시키는 일 잘하는 직장인 등, 책에는 ‘모범국민’이 등장합니다. ‘모범국민 대신 대중이 되자’는 메시지도 있고요. 하지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들 중에는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것도 다 내가 노력한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에게 『약자의 결단』이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을까요?


A4.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소통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권력이 허락하는 언어만 써야 하는 폐쇄된 경기장 속에서 최면에 걸린듯 권력의 언어를 주고 받는, 소통 아닌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경제 경기장에서는 법정화폐 돈으로,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에서는 학점과 학위로, 복잡한 사회 속에서는 법으로, 점수 따기 경쟁을 하고 있어요.


    열심히, 착하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제대로 칭찬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은 ‘모범’이란 쓸모없는 표창장 하나 달랑 줄 뿐입니다. 모범적인 삶이 권력의 블랙홀로 스며들어가버리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사회가 바뀌지 않고는 모범국민이 위로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약자의 결단』은 제안합니다. 허울뿐인 상장 따위는 태워버리고 모범생들끼리 서로 힘을 모으면서 소통하는 대중이 되자고요. 소통을 제대로 하면 사회도 변할 수 있습니다. 권력의 룰을 잘 지키는 모범에서 스스로 소통하는 길을 대중이 여는 모범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대중이 소통하는 이런 세상에서는 스스로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Q5. 이 책은 코로나 백신을 비롯한 과학기술, 기후위기, 화폐, 교육, 법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집필하시게 되었나요?


A5. 결국 이 모든 것을 원격 조종하는 중앙집권적인 힘의 질서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권력은 권력만이 지킬 수 있는 질서를 만들고, 그게 아니면 무질서해진다고 경고합니다. 이렇게 비판하면 사람들은 다른 뾰족한 해결책이라고 있냐고 묻습니다. 네, 저는 있다고 믿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이 움직임은 벌써 시작되었다는 것을 작가의 감성과 공학자의 직감으로 느꼈기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들과 해결책을 하나씩 만들어가기 위해서요. 특히 디지털세대인 청소년들에게 힘들지만 함께 길을 열어 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디지털을 책으로 배운 기성세대와 디지털 혈액이 흐르는 청년, 청소년세대가 함께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열 수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Q6.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나 자격증 제도 등 제도권으로부터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A6. 이런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면 세상이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귀촌하고,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유기농 농산물을 소비하고, 에너지와 물을 아끼는 등 지구를 살리는 여러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게 진정 제도권을 벗어난 것일까요? 대안 공동체도 마을 대부분의 경제가 중앙집중형 법정화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안학교를 나와 서울대나 세계적인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대안학교를 통해 더 치열하게 제도권 경쟁에 뛰어든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서서히 변화해가면 되지 않겠냐고 위안할 수도 있겠지만, 200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녹색 움직임이 녹색산업, 녹색정책으로 바뀌더니 친환경을 표방하는 녹색 자본까지 나타나는 세상의 흐름을 목격하면서, 중앙집중적인 제도권 내에서의 변화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제도권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화를 내며 살지 말고, 오히려 이 안에서 웃으며 스며들듯 변화를 유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Q7. 약력을 보니 전 세계 석학들의 지식 프로젝트 ‘엣지(Edge)’에 ‘똥본위화폐’라는 에세이를 발표하셨는데요. 흥미롭지만 낯선 주제인 것 같습니다.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7. 체계가 있는 곳 어디든 폐기물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수처리장 중심의 위생 체계가 있으니 똥이 폐기물이 되는 겁니다. 만약 똥을 수세식화장실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지 않고, 아파트 단지에서 모아 에너지를 만들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사용한다고 상상해볼까요? 그럼 똥은 에너지원이 됩니다. 그 에너지로 보일러를 가동해 난방도 하고 연료전지를 통해 전기를 발전해서 전기차를 충전할 수도 있습니다. 체계를 바꾸니 똥은 폐기물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바뀝니다. 처리비용을 지불하고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매일 안정적으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똥을 사회의 가치기준으로 승격시켜보았습니다. 저는 한 사람이 하루에 눈 똥으로부터 생산되는 가치를 화폐단위로 환산하는 시도를 통해, ‘10꿀(꿀은 똥본위화폐의 화폐 단위입니다)’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가치기준으로 다른 물건, 상품, 농산물, 서비스 등의 가치를 가격 매기는 거지요. 밥 한 그릇은 몇 꿀일까? 커피 한잔, 버스 요금, 영화와 뮤지컬 한편의 티켓 가격은? 이런 식으로요. 체계를 바꾸고 그 체계의 소통 기호를 바꾸니 생각지 못했던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됩니다.




Q8. 전작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공저, 개마고원 펴냄)에는 ‘화장실에서 시작되는 생태혁명’이라는 소개가 있습니다. ‘똥본위화폐’와도 연관이 있을까요?


A8. 말씀드린 대로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가치기준이 똥으로부터 만들어지게 되면, 똥은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닙니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한 똥보다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 또 있을까 싶어요. 화장실이 이런 에너지원을 효과적으로 모으는 출발점입니다. 똥이 하수처리장으로 가면 아무리 고도처리를 하더라도 강과 바다로 방류되는 하수처리수에 오염물질이 남습니다. 그 결과 여름이면 하천에는 녹조, 해안에는 적조가 생기는 겁니다. 하수처리장에서는 똥을 처리하느라 전기와 약품 등이 소요되고요. 똥본위화폐를 지향하는 화장실이라면 하수처리장에서 필요한 에너지와 화학약품 사용을 대폭 줄이고 하수처리장 처리수에 여전히 남아 생태를 오염시키는 오염물질을 획기적으로 없앨 수 있습니다. 더구나 똥 에너지를 얻게 되니 생태혁명인 것이지요.




Q9. 이번 책에서는 ‘강하단’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셨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으신가요?


A9. 우선 필명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궁리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강하단’은 낙동강에서 ‘강’을, 강의 가장 하류인 하구언이란 뜻의 ‘하단’(부산시 사하구 괴정동 일대)을 합쳐 지어졌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을 부산의 하단 지역에서 보냈고, 올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씨가 ‘강’이기도 합니다. 태어나 주어진 이름인 조재원으로 지금껏 모범국민으로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라도 ‘강하단’으로 살고 싶습니다.




Q10.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어떤 주제가 될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10. 2020년 ‘똥본위화폐’로 완성한 초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출판사에서 책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들겠다고 판단해서 그 전 단계로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를 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내고 살펴보니 ‘똥본위화폐’란 책으로 맥락과 메시지를 이어주지 못하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다시 시도된 책이 이번에 궁리와 출간하게 된 『약자의 결단』입니다. 차기작이 출간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똥본위화폐’에 대한 책을 내고 싶습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