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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선>


어린 가정교사

-The Little Governess (1915)


아, 어떡해, 밤 시간이 아니기를 얼마나 바랐는데. 낮 여행이 훨씬, 정말 훨씬 더 좋았다. 하지만 여자 가정교사 소개소의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녁에 배를 타고 간 다음 기차에서 ‘여성 전용’ 칸에 타면 외국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할 테니 그 편이 나아요. 전용 칸에서 나가지 말고, 복도에서 돌아다니지도 말고, 화장실에 가거든 문이 잠겼는지 꼭 확인해요. 기차가 8시에 뮌헨에 도착하고, 아른홀트 부인 말로는 그뤼네발트 호텔이 역에서 겨우 1분 거리에 있다고 해요. 짐꾼에게 안내를 부탁하면 될 거예요. 부인이 그날 저녁 6시에 도착할 테니 낮 동안 조용히 쉬면서 독일어를 연습하면 아주 좋을 거예요. 그리고 뭔가를 먹으려면 제일 가까운 빵집에 잠깐 들러서 번이랑 커피를 사면 돼요. 이전엔 외국에 가본 적이 없는 거죠?” “예, 없어요.” “그리고 나는 항상 여자들에게 누군가를 믿기보다는 처음에는 의심하는 게 더 낫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악의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게 선의를 품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말해주곤 해요… 좀 너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린 영악하게 세상 물정을 아는 여자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죠?”


배의 여성 선실은 좋았다. 여자 승무원은 아주 친절했고 잔돈을 바꾸어주고 발을 잘 덮어주었다. 가정교사는 자잘한 분홍색 꽃무늬가 있는 딱딱한 침상에 누워서 다른 승객들이 모자를 베개받침에 고정하고, 부츠와 치마를 벗고, 옷장을 열어 무언지 모를 바스락거리는 작은 꾸러미를 정리하고, 눕기 전에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는 모습을 친근하고 편안하게 지켜보았다. 턱, 턱, 턱. 증기선의 스크루가 꾸준히 돌아갔다. 여자 승무원이 등불 위에 녹색 갓을 당겨 씌우고 난로 옆에 앉아서 치마를 당겨 무릎을 덮고 기다란 뜨개질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승무원의 머리 위 선반 물병에는 꽃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여행이란 건 참 좋구나.” 어린 가정교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잔잔히 웃으며 나른한 흔들림에 몸을 내맡겼다.

그런데 배가 정박하여 한 손에 옷가방을 또 한 손에 무릎담요와 우산을 들고 갑판에 올라갔을 때 뜻밖의 차가운 바람이 모자 아래로 불어닥쳤다. 올려다보니 그 배의 돛대가 환한 녹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멓게 솟아 있었고 아래로는 이상하게 조용한 형체들이 어슬렁거리는 어두운 부잔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졸린 듯 나른한 무리와 함께 앞으로 이동했다. 그녀만 빼고 모두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서 그녀는 불안했다. 그래서 지금이 낮이면 좋겠다고, 여성 선실에서 같이 머리를 빗을 때 거울 속에서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던 여자들 중 한 사람만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고, 그 정도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표 주세요. 손님 표요. 표 준비해주세요.” 그녀는 구두 굽 위에서 조심스레 균형을 잡으며 통로를 내려갔다. 그때 검정색 가죽 모자를 쓴 남자가 다가와서 그녀의 팔을 건드렸다. "어디로 가세요, 아가씨?” 영어로 말했다. 저런 모자를 쓴 사람은 경비원이나 역장이 분명해. 그녀가 대답을 채 다 하기도 전에 그 남자가 옷가방에 달려들었다. “이쪽이요,” 그가 무례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치고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치며 앞장섰다. “하지만 전 짐꾼이 필요 없는데요.” 정말 끔찍한 남자다! “저는 짐꾼이 필요 없다고요. 제 짐은 제가 들어요.” 그 남자를 따라잡으려면 달려야 했는데, 분노가 너무 강해서 미처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벌써 내달리고 있었고, 마침내 그 나쁜 놈의 손에서 가방을 낚아챘다. 그 남자는 신경도 안 쓰고, 길고 컴컴한 플랫폼으로 계속 내려가더니 철로를 건너가버렸다. ‘저 사람은 도둑이야.’


(…)



* 『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선』(정주연 옮김)은 2021년 1월에 독자분들에게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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