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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중국, 당시(唐詩)의 나라>


머리말


가까운 이웃 나라인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자면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비핵화에 큰 역할을 기대할 만한 강한 나라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자면 FTA 체결시 한중 양국 무역규모가 무려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될 만큼 엄청난 시장을 가지고 있는 큰 나라이다. 그런데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좁은 소견에 중국은 당시(唐詩)의 나라인 듯도 하다.


당시는 중국 당나라 왕조(618~907) 때 창작된 시를 가리키니, 그야말로 천 년 묵은 고대의 ‘유물’이다. 청나라 때 편찬된 당시 총집인 <전당시(全唐詩)>는 이들 유물을 5만 점 넘게 모아놓았다. 이들이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라면 그리 대단한 일이 못될 것이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만 해도 30만 점은 족히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당시는 현대에도 활발하게 숨 쉬며 여전히 중국 전역을 누비고 다닌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유물과는 크게 구별된다.


예를 들어 당시는 지금도 중국의 초등학교 학생으로부터 최고 지도자까지 읽고 감상하고 암기하고 활용한다. 그런가 하면 당시는 얼마 전 서안(西安)에 곡강지유지공원(曲江池遺址公園)을 만들고, 소주(蘇州)에는 높이 17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시비(詩碑)를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당시가 책 속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자연스럽게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연상하게 된다.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마야인, 글래디에이터, 카우보이들이 밤만 되면 멀쩡히 돌아다니듯 당시도 그렇게 중국의 어느 거리를 활보한다.


당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는 늘 당시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는 확대경을 손에 들고 책을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다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배낭을 메고 중국 전역을 누볐다. 당시가 출몰할 만한 곳을 찾아가야 하는 까닭에 현대 중국의 지도가 아니라 당나라 시대의 지도를 챙겼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일행과 함께 당시의 고향을 누빈 지 어언 십여 년. 서쪽 돈황(敦煌)으로부터 동쪽 태산(泰山)까지, 다시 남쪽 계림(桂林)으로부터 북쪽 승덕(承德)까지 사방팔방 당시와 관련된 곳이라면 부지런히 찾아 다녔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인 보람과 성과가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미술관에서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을 직접 보았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할까. 책에 한자로만 씌어 있는 당시는 도록(圖錄)으로 보는 샤갈의 <도시 위에서(Over Town)>라 하리라.


아직도 가봐야 할 곳이 부지기수지만 이제 한번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다녔던 모든 곳이 마치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애써 모은 정보가 쓸모없는 폐품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번 당시를 찾아 나선 여행의 목적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었다. 순전히 당시를 만나러 간 적도 있고, 다른 일정으로 갔다가 우연히 당시를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의욕만 앞세우다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헤아려보니 당시의 나라를 돌아보고 온 결과를 정리할 때 약간의 요령이 필요해 보였다. 단순히 몇 권으로 나누어 쓴 일기장을 한데 모으는 것 이상의 재구성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고안한 방법은 그 동안 돌아보았던 중국의 여러 곳을 지도상에 흩어놓고 ‘당시의 나라’를 다시 여행할 사람들을 위해 다시 일정을 잘 짜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첫 여행지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나라’의 수도라 할 서안이 되었다. 내친 김에 서안의 서쪽 돈황을 다녀오고 다시 ‘당시의 길’이라 불리었던 길을 따라 남쪽 계림까지 내려가는 순례(巡禮)가 뒤를 이었다. 그 다음 여행의 출발점은 당시의 나라 제2의 수도였던 낙양(洛陽)이 적합해 보였다. 여기서 황하를 따라 태산에 이르고 북경을 지나 승덕까지 내달리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황하를 타고 중원을 훑었다면 다음 수순으로 장강이 빠질 수 없다. 먼저 성도(成都)에서 촉국(蜀國)의 향기를 맡은 뒤 중경(重慶)에서 유람선을 타고 의창(宜昌)에 이르러 강남 수향(水鄕)을 두루 돌면 좋을 것이다. ‘당시의 나라’ 여행의 대미는 남경(南京)에서 항주(杭州)에 이르는 대운하 유역으로 결정되었다. 중국 속담에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와 항주”라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모든 여행의 안내자는 당시이다.


여기서 다시 중국을 바라보자. ‘당시의 나라’ 중국은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유학이나 사업 목적의 방문도 있겠지만 역시 상당 부분은 관광객이 차지한다. 중국은 땅이 넓고 기후도 다양하여 자연히 자연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산맥과 고원이 있는가 하면 사막과 초원이 있고, 강과 호수가 있는가 하면 기암절벽과 폭포가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대단한 볼거리는 인문 관광자원이다. 수천 년 역사 동안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면서 어마어마한 고적과 유산을 남겼다. 그 가운데 당시는 찬란히 빛을 발하는 진주라 할 것이다. 중국 여행 중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 어디서든 당시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껏 넓혀줄 것이다.


*<중국, 당시의 나라>는 11월 말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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