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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저자, 바로 그 책┃드미트리 오를로프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하다


냉전이 벌어지는 동안 두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해결되지 않은 분쟁의 재고를 쌓아나갔다. 두 나라는 묵시적 합의 아래 그 미해결 분쟁들을 분쟁 기간 내내 깊숙이 동결시켰다. 어떤 경우에는 동질적 민족 집단을 인위적인 정치적 경계선을 따라서 쪼갰고 어떤 경우에는 이질적 민족 집단들을 인위적인 하나의 정치적 경계선 안으로 억지로 묶어놓았다. 그루지야, 몰도바, 체코슬로바키아처럼 기를 쓰고 갈라서려고 했던 다민족 집단이 있었는가 하면, 갈라졌지만 다시 합치려고 애를 쓰는 민족 집단도 있었다. 이런 ‘냉동’ 분쟁 중에는 두 초강대국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냉동 상태로 남았던 독일 같은 나라도 있었지만, 한반도는 소련이 붕괴한 다음에도 냉동 상태가 계속 잘 유지되었고 북한은 냉동원을 그 나름으로 자체 조달했다.


지금 미국 군부는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1,000개가 넘는 해외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소련과 한창 맞서는 동안에도 미국 군부는 일종의 거대한 갈취 조직으로 둔갑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전 세계가 직면한 위협을 부풀렸고 군부는 그런 위협에 맞서는 척하면서 정부의 돈을 썼다. 지금까지 군부는 워싱턴에서 단일 집단으로는 가장 강력한 정치 로비 세력이다. 그다음은 이스라엘이지만 미국 군부의 로비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미국은 주요 국가들의 국방비를 모두 더한 액수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쓴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돈에 비해 미국이 얻는 것은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잘하는 것은 민간인을 쏘는 것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닥치는 대로 날려버리는 것, 딱 두 가지다. 미국이 잘하는 것 또 하나는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많은 나라에서 그러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다. 아무리 형편없고 피폐한 나라라 하더라도 막강한 미국 군부가 성공적으로 점령하여 제어할 수 있는 나라는 이 세상에 단 한 나라도 없다. 이라크도, 아프가니스탄도, 하다못해 소말리아도 미국은 감당을 못한다.


모든 제국은 언젠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역사의 법칙에 가깝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확률을 도외시한다는 것도, 그래서 막상 그런 변화가 일어나면 질겁한다는 것도 역사의 법칙에 가깝다. 이 책 『예고된 붕괴』에서 자세히 설명하지만 미합중국의 붕괴는 이미 주어진 현실이다. 불확실한 것은 오직 붕괴의 시점일 뿐이다. 붕괴의 시점이 불확실한 까닭은 예상하지도 못했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사건이 단 하나만 터져도 붕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영토 안에서 벌어질 혼란상을 수습하는 노력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해외 군사 기지를 정리하고 자국군을 본국으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군사 제국의 해체가 아무쪼록 제어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 군대가 언젠가는 철수할 날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를 해야 할 이유가 한국보다 더 많은 나라도 드물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영어판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다는 사실은 그래서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붕괴하면 전 세계적 차원의 위기가 잇따라 터질 것이다. 국제 무역과 국제 금융은 보나마나 엉망이 될 것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는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 옛 소련권에 몸담았던 나라들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일을 당할 것이다. 그 나라들은 경제적 혼미, 대량 실업, 빈곤, 정치 위기를 틀림없이 겪을 것이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의 수명이 단축될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남들보다 더 잘 적응하여 유익한 교훈을 줄 만한 나라들도 있다. 가령 소련의 원유 공급이 끊겼을 때 쿠바는 유기농 보급이라는 혁신으로 화석연료를 투입하지 않고도 국민을 먹여 살리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성공담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북한도 초강대국이 붕괴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생존술에 대해 몇 가지 유익한 교훈을 줄 만한 나라다. 게다가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고난에 꽤 단련이 되어 있는 편이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면 그런 국민 자체가 자산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미국과 소련에서 알고 지낸 남북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핵공학을 전공하던 북한 학생이다. 그 젊은이는 아주 진지하고 절도가 있었으며 폭음이 일상화된 러시아 공학도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냈다.) 내가 관찰할 수 있었던 범위 안에서 지켜본 바를 토대로 그려볼 때 한국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주 애국심이 강하고 재간이 많고 외국이 자기네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며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싶어한다. 한때 미국이었던 나라는 무법이 판을 치고 사람들도 띄엄띄엄 흩어져 사는 영역들로 해체되어 갑자기 혹은 서서히 세계무대에서 종적을 감추더라도 한반도의 21세기는 20세기의 악몽을 만회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 결과는 결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야수는 다쳤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리고 치명상을 입은 미국이 몸부림을 치다가 어떤 피해를 줄지는 점치기 어렵다. 한반도는 미국의 붕괴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서광이 비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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