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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다시, 관계의 집으로』를 펴낸 작가 최우용


Q∥우선 독자 여러분에게 짧게 자기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A저는 올해 서른다섯 살의 건축 설계사무실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건축 설계사무실에서 일을 하지만 건축가는 아닙니다. ‘건축가’라는 호칭의 범위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서적인 의미가 큽니다. ‘건축사’라는 법적 라이센스와 더불어 건축직능인으로서 완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건축가’라고 합니다. 저는 라이센스도 없을뿐더러, 완숙은커녕 반숙 정도도 되지 못한 터라, 건축가라는 타이틀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냥 건축설계사무소 직원 정도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매일의 출퇴근길과 가끔의 여행길에서 길 위의 집들과 그 집들에 붙어 있는 삶을 들여다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립니다. 그 짬짬이 글들을 끼적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Q∥『다시, 관계의 집으로』를 어떻게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책에 어떤 이야기들을 담으셨나요?

A지인의 제안으로 출간을 염두에 두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원고의 컨셉은 ‘청춘’이었었는데, 어찌 글을 쓰다보니 푸른 봄철(靑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글이 되었지요. 그래서 방향을 선회하여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심히 쓰기로 했고, 그래서 이번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는 글에서도 밝히고 있는데, 사실 저는 건축을 학문으로 이야기할 능력이 되질 못합니다. 학부를 겨우 마친 사람이라 그렇고, 제가 건축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학문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집들은 대부분 매끈하고 깨끗합니다. 오래된 집들도 부수거나 고쳐서 이렇게 매끈하고 깨끗하게 바꾸는 추세이며, 최근에 지어지는 집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매끈, 깨끗합니다. 그런데 건축에는 이 매끈과 깨끗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고, 저는 항상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 안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테쉬폰 주택 안에서 바라본 목장

Q∥일산 밤가시초가, 제주의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기찻길 옆 공부방 등 주로 잊혀져가거나 사라져가거나 또는 구석과 변방에 놓인 건축물들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주목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요? ‘관계’라는 키워드는 이 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요?

A‘관계’는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의 연결 방식을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라고 불교의 연기는 말합니다. 만물의 인과관계와 상호의존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비단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롯이 홀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 관계의 그물망에 걸려 있습니다. 건축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오늘의 어떤 집들은 자못 오만하거나 혹은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스스로 홀로 굳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또는 정신착란 같은 착각 말입니다. 그런 집들은 집이 놓일 동네의 맥락을 살피지 않거나 환경을 장식품쯤으로 여기며 삶의 활동 근간인 에너지 과용에 무감하고 그래서 자꾸만 우뚝해지고 비대해지며 자폐적으로 변해갑니다.

여기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집들을 둘러보고 또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중심이 아닌 주변과 변방 또는 사라져가거나 잊혀져가는 집들은 오히려 오늘의 어떤 집들처럼 오만하거나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집들은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 집들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과의 관계 맺기에 집중해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관계 맺기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집들은 인간 삶의 깊이를 받아들일 수가 있었고, 미래세대에 대한 구속력을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관계의 집들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테쉬폰 주택 전경

Q∥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면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그를 향한 깊은 애정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특히 건축학도가 된 데는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고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좀 더 들려주시죠.

A사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의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젊은 시절 의사가 되고 싶어 하셨지요.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서울 남창동 일대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는 일제 강점기. 수탈과 핍박에 증조할아버지께서는 화병에 복수腹水가 차오르고 죽음의 언저리에서 신음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제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였는데, 당신 아버지의 부풀어 오른 배와 신음이 커다란 충격과 비애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워계신 당신의 아버지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네 칸짜리 만화를 그려 보여주시며 말했다고 합니다. 의술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어, 아버지 당신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말입니다.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증조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올 때 할아버지께서 해주셨던 옛날이야기입니다.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가 생생한 것은,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께 어린 시절의 제가 깊은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셨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당신이 이루지 못한 의사의 꿈은 맏손자인 제게 넘어오게 되었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응애 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가야 한다”를 주입(?)하셨지요. 그리고 저는 당연히 의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타깝게도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슬픔 중 하나입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의대의 근처에도 갈 성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다른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했는데, 그중 가장 하고 싶었던 공부가 건축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그리고 만드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 또한 쉽게 이뤄지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재수를 해서야 건축학과에 입학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제 수학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재수를 결심한 어느 날, 할아버지께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건축학과에 가야 할 듯합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당연히 반대를 하실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건축가 김수근과 당신의 일화를 말씀하시며 기꺼이 제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너도 그 건축가만큼 훌륭한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위로를 해주셨지요. 저는 슬프지만 또 기쁜 마음으로 건축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한두 해 전, 제 사촌동생이 결국 할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뤘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한 사촌동생의 소식에 할아버지께서는 환자용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안면 근육에 주름 지으시며 기쁨의 찬란한 미소를 보이셨습니다. 난 할아버지가 거동을 못하게 되시면서부터는 삶의 많은 기억과 바람들을 당신의 저 깊고 깊은 밑으로 가라앉혀버렸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날 무척 많이 울었습니다. 이불에 코와 입을 박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바람을 이뤄드리지 못한 회한과 그 바람조차 할아버지께서 잊고 계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시 할아버지 무덤에 찾아가 이 작은 책을 놓겠습니다.



Q∥이 책은 건축이 세상과 소통하는 다섯 가지 시선이 등장합니다. 몽상가의 눈, 관찰자의 눈, 소설가의 눈, 여행객의 눈, 건축가의 눈이 그것입니다. 최 선생님은 이중 어떤 시선이 기억에 남으며 또한 본인에게 건축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A‘선생님’이란 호칭도 ‘건축가’라는 호칭만큼 식은땀이 흐릅니다. 스스로 이것저것 결핍이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격이 있는 호칭이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네요. 저는 이 결핍 때문에 무엇인가를 계속 뒤적이고픈 생각에 쩔쩔맵니다. 약간 강박관념 같은 것이기도 하고 열등감 같은 것이기도 한데요, 계속해서 책이나 여행에 풀리지 않는 미지근한 갈증을 느끼는 것은 이 강박장애에 가까운 생각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몽상가의 시선과, 관찰자의 시선과, 소설가의 시설과, 여행객의 시선과 그리고 건축가의 시선은 큰 틀에서 모두 같은 시선입니다. 세상 속에 놓여 있는 집들과 그 집들과 세상이 맺고 있는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지요. 다만 그 관계를 어떤 입장에서 이야기하느냐의 차이인데요, 저는 몽상가를 사랑합니다.

몽상가는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번 책의 처음 몇 꼭지는 그런 의미에서의 몽상가가 바라본 집들과 그에서 연유한 생각들입니다. 초가집과, 오래된 집들과, 유래와 유례 모두를 찾기 힘든 제주도의 어느 퇴락한 집을 바라보면서 저는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고, 또 그 오래되고 낡은 집들에서 찬란한 내일을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시 생각을 해봐도 그 ‘찬란한 내일’을 보는 희망은 실현성이 매우 낮은 헛된 생각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건데 몽상가라는 존재는 언제나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씨앗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몽상가의 눈으로 세상과 세상에 뿌려진 집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건축이란 제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무겁고 또 무섭습니다. 제가 건축이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이 광막한 물음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성 싶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무언인가를 조금은 이야기해도 나쁘지는 않을 듯합니다.

우선 건축은 제가 밥벌이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수단입니다. 더불어 정확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우나 집을 상상하고 그리는 것이, 마치 본능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제게는 그냥 좋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밥벌이가 일치하는 저는 복이 많은가 봅니다.

건축이란 것이 남의 돈으로 남의 집을 짓는 것이기에, 또 건축 행위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공력이 막대한 만큼 건축도면에 선 하나 긋는 것도 조심스러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하나가 이 세상 한 귀퉁이에서 벽이 되고 지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려진 집들이 세상에 많아지길 바라면서 저는 하루하루 건축이란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Q∥앞으로 어떤 글들을 쓰고 싶은지요? 준비 중인 책이 있나요?

A저는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항상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또 써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립니다. 내 손에서 비실거리며 흘러나온 글들이, 다른 이들의 생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전거레이서이자 소설가 김훈 님의 글을 사랑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글을 쓸 때 내가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견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지, 나의 의견은 사실에 바탕한 의견인지, 아니면 사실에 바탕하지 않은 채 나의 욕망을 지껄이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김훈 님의 글은 소설이나 산문이나 잡문이나 가릴 것 없이 건조하면서도 동시에 습윤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웅장한 수사나 과도한 감정의 분출 없이 우리 국어의 힘으로 대상을 담담하고 적확하게 모사하는 글의 힘을 저는 경외하고 또 사랑합니다. 저는 이런 글로 세상과 집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글은 아직 미련하고 졸렬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다듬어 나가려고 합니다.

준비 중인 책이 있습니다. 이번 책 『다시, 관계의 집으로』가 몇 가지의 건축물을 좁고 깊게 들여다보고자 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책에서는 여러 가지 건축물을 넓고 얕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짧고 굵게’가 좋은 것만은 아니듯 ‘가늘고 길게’가 나쁜 것만은 또한 아닐 것입니다. 저는 천천히 글을 쓰며 변방에 있는 집들을 두루두루 찾아다닐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집 속에서 삶 속에서 짜내져서 나온 관계에 대해서 끼적일 생각입니다.

다음 책의 제목은 이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길 위에 만난 집, 길 위에서 만난 삶 - 변방의 건축을 찾아서.



Q∥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이 책은 전문적인 건축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그런 건축이야기를 쓸 능력도 되지 못합니다. 이 책은 다만 잊혀져가거나 사라져가거나 변해가거나 또는 구석과 변방에 놓인 건축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 산문이자 잡문입니다. 편하게 읽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질타를 기다리며 적극적인 소통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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