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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모두를 위한 테크노사이언스 강의』를 펴낸 김명진 저자 인터뷰



Q. 신작 『모두를 위한 테크노사이언스 강의』로 독자 여러분을 새롭게 찾아오셨습니다. 독자들에게 요즘 근황이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한국항공대와 서울대에서 기술사와 현대과학사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김명진입니다. 최근 몇 년간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간 외에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과학기술학의 여러 주제들로 세미나와 독회 모임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간혹 그간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해 저서로 펴내거나 과학사, 기술사, 과학기술학 등의 주제를 다룬 외서를 번역해 출간하는 일도 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홀버그상을 수상한 미국의 과학기술학자 실라 재서노프의 책 『테크놀로지의 정치』를 번역, 출간했습니다.



Q. 코로나19 유행 3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국가적 대응 방식을 보면 ‘테크노사이언스의 시대’를 실감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A. 오늘날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만, 사실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이 이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연구개발의 참여자로서가 아니라 최종 결과물의 소비자 내지 수혜자로서만 자리매김되다 보니 그 과정을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코로나19 대유행은 아직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미지의 병원체에 대해 각국 정부와 과학계, 의료계가 사력을 다해 대응하는 과정이 언론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했고, 그러면서 일반 시민들도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그 결과물이 사회에 나오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예가 코로나 백신이지요. 일반적으로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거쳐 시장에 내놓기까지 8~10년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코로나19 백신의 경우에는 병원체를 파악한 시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백신이 출고된 시점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통상적인 상업적 고려나 경제성에 대한 판단을 접어둔 채 백신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과 저온 보관 시설을 짓는 데 자금과 노력을 투입한 제약회사, 각국 정부, 과학자들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할 겁니다. 작년 여름에 BBC에서 제작, 방영한 〈코로나 백신 The Vaccine〉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영국, 미국, 중국, 호주 등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다섯 가지 백신 프로젝트를 1년여 동안 추적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백신 개발 프로젝트의 엄청난 규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중에는 개발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한 프로젝트도 있었는데요, 이 다큐멘터리는 그런 프로젝트도 함께 다루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찾아서 보시길 권합니다.



Q. 이번 책은 어떤 문제 의식에서 집필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책의 구성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1890~1945년, 1945~1980년, 1980년~현재로 세 시기로 구분해 책을 전개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책의 서문에도 썼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제가 서울대 자연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10년 동안 가르쳐온 ‘테크노사이언스의 역사와 철학’ 강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원래 이 강의는 서양기술사를 통사적으로 강의하는 교과목으로 설계돼 있었고 저도 처음 3~4년 정도는 그런 취지에 맞춰 강의를 했는데요, 몇 년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대 학생들에게 기술사를 전공선택 과목으로 강의하는 게 좀 안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강생들의 전공과 좀 더 관련이 깊은 자연과학 얘기를 집어넣되 원래 강의 제목에 있는 ‘테크노사이언스’를 살려서 새롭게 강의 내용을 짜보자고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 과정에서 제가 마침 그때 관심을 갖고 있던 냉전 시기 과학사를 강의의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냉전 시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 시기가 핵 군비경쟁, 우주경쟁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 과학기술의 시대로서 주목할 부분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늘날 존재하는 국가(정부)와 과학의 관계,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과 기대 등이 이 시기를 거치며 결정적으로 형성됐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과학기술과 관련해 당면한 여러 과제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냉전 시기에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고요.


책의 기본 구성을 이루는 시기 구분은 미국의 경제학자 필립 미라우스키의 논의를 빌려온 것인데요, 이 중에서 냉전 시기에 해당하는 1945~1980년에 중점을 두어 집필했습니다. 20세기 전반기에 해당하는 1890~1945년은 기업과 과학 연구가 밀착된 계기를 제공한 산업연구소의 활동을 주로 서술했고, 과학의 상업화가 다시금 부각된 1980년 이후의 시기는 아직 역사학계에서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해 책의 말미에 짧게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냉전 시기의 국가-과학 관계를 미리 앞당겨 보여준 세계대전기의 군사 연구와 냉전 시기 과학의 군사화에 반대하며 나타난 대안적 흐름에 대한 논의를 그 사이에 막간으로 삽입했습니다.


Q. ‘테크노사이언스’라는 용어가 친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기도 합니다. 이 말은 ‘과학기술’, ‘기술과학’과는 다른 의미인가요?


A.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라는 용어는 1970년대에 벨기에의 철학자 질베르 오투아(Gilbert Hottois)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별개로 존재했던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이라는 활동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그 경계가 흐려지고 더 나아가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용어지요. 우리말 역어가 좀 마땅치가 않은데요, ‘과학기술’은 영어의 ‘science and technology’를 단순히 옮긴 것이어서 앞서와 같은 의미를 담을 수가 없고요. 저도 예전에 한동안 ‘기술과학’이라고 옮기기도 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 말은 ‘과학기술’에서 ‘과학’과 ‘기술’의 순서만 그저 바꿔놓은 거라 역시 제대로 된 역어라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과학’처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학계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는 영어를 음차한 ‘테크노사이언스’를 쓰기로 한 상태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서로 가까워지고 급기야 서로 구분할 수 없는 활동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가 테크노사이언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사실 좀 더 꼼꼼히 따져보면 이 문장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때 시행착오와 경험에 입각해 이뤄지던 기술이 과학적 방법론(수학적 언어, 통제된 실험)을 받아들이면서 과학과 구분이 어려워졌다는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고(방법론적 수렴), 예전에 ‘자연’을 연구했던 과학 활동이 점차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공적 현상, 더 나아가 인공물 그 자체(입자가속기, 우주망원경 같은)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기술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연구 대상의 수렴). 또 과학이 새로운 지식의 창출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 혹은 유사상품(원자폭탄처럼 시장에 내다 팔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유용한’ 산물)의 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기술에 더 가까워졌다는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요(연구 목표 내지 추구하는 가치의 수렴). 이 책에서는 과학사가 존 픽스턴의 정의에 따라 이 중에서 마지막 측면, 즉 과학과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가 가까워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요, 이와는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춰 테크노사이언스의 역사를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Q. 책에는 다양한 대학연구소, 산업연구소, 과학자, 엔지니어, 정치인, 대중사회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테크노사이언스를 써내려가는 여러 주체들을 책 전반에서 다양하게 나루고 있습니다. 여러 사례 중에서 이 지면에서 나누고 싶은 내용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개인, 집단, 조직들 중 통상의 과학사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못하는 이들에게 좀 더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가령 20세기 초 산업연구소에서 일한 과학자들은 ‘돈에 눈이 멀어 과학적 이상을 팔아먹었다’ ‘회사에 영혼을 팔았다’ 같은 과학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기업으로 향했고, 조직의 일부가 되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에 묵묵히 종사했는데요, 종종 익명화되어 역사책에는 각주로서도 등장하기 어려운 이런 연구자들에게 좀 더 관심이 기울여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1960년대 후반 연구대학에 몸담은 대학원생, 연구자, 교수들 중에서 냉전 시기의 군사연구라는 거대한 흐름에 저항해 반대운동을 조직하고 나선 사람들 역시 비교적 최근에서야 역사적 조명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제가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그린비)나 『과학을 뒤흔들다』(이매진) 같은 역서를 통해 소개한 이런 흐름들에 대해 더 많은 주목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책에 150여 장의 사진 자료와 도판을 풍성하게 실으셨습니다.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은데요, 그중 《콜리어스》 1954년 5월 28일자 표지에 그려진 다음 그림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쓰는 것은 과학자나 발명가의 몫도 있지만, 산업계 현장의 엔지니어 실무자들의 역할, 책임도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표지 그림이나,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신다면요?



A. 개인적으로도 강의 준비하면서 관련 문헌을 찾는 과정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봤고 또 좋아하는 그림이기도 한데요. 1950년대를 풍미했던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를 극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앞서 궁리에서 펴냈던 『20세기 기술의 문화사』에 적었던 것처럼, 당시는 핵에너지를 이용한 해수 담수화 공장을 만들어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을 옥토로 바꾸고 극지방의 얼음을 녹여 경작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식의,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고 심지어 위험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토피아적 미래 전망이 널리 퍼진 시기였습니다. 기술의 힘에 대한 그러한 기대는 2차대전 이후 본격화된 기상조절(weather control) 연구로 확산되었고, 위의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머지않은 미래에는 기계의 레버를 당기는 것만으로 맑고 화창한 날씨를 먹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날씨로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는 전망으로 나타났지요. 이는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마음먹은 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잘 보여주는데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등장한 현대적 환경운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설어진 사고방식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 비해 기술의 힘을 그렇게 맹신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술이 이뤄낼 수 있는 성과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거기 수반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곤 하니까요.



Q. 이 책은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A. 앞서 적은 것처럼, 원래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내용은 자연과학 전공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유래했고,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었던 독자는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는 과학 분야의 지난 과거와 역사적 맥락에 관심 있는 ‘미래의 과학자’들입니다. 하지만 꼭 자연과학 전공자들만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가령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과학기술정책이라는 분야가 2차대전 이후에 생겨나고 변모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민간에 대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2차대전 이전에는 자연히 과학기술‘정책’도 유의미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었지요. 1930년대까지 지구상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 정도만이 여기서 예외였습니다).


더 나아가 정부 예산과 국가 GDP의 5퍼센트 가까이를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현 시대에는 국가에 세금을 납부해서 그런 활동에 기여하는 그 누구도 테크노사이언스와 무관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테크노사이언스는 먼 나라의 일처럼 여겨질 수 있고, 그것과 맺는 관계는 주로 첨단기술 상품의 소비자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낸 세금으로 국가 연구개발 활동을 지원한다면 의당 그것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이는 제가 관심을 가진 또 다른 주제인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하는 평범한 일반 시민들에게도 배경이 되는 역사적 흐름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요즘 어떤 연구나 주제에 관심을 두고 계신지요?


A. 지금까지 냈던 책들의 연장선상에서 기술사와 과학사 강의를 하면서 그런 내용을 어떻게 심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중단없이 계속해온 냉전 과학 세미나는 이제 곧 100회 모임을 앞두고 있고요, 앞으로도 저의 지적 젖줄로서의 구실을 계속해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기술사와 관련해서는 기술사의 여러 주제들을 ‘기술과 노동’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모빌리티’ ‘기술과 에너지 생산’처럼 영역별로 나누어 강의를 하면서, 예전에 썼던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의 내용을 좀 더 보완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 외에 약과 질병의 역사를 다룬 역서들도 좀 더 많이 펴냈으면 하는데 아직까지는 기회가 잘 닿지 않네요. 원래는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의 역사를 다룬 책들에 관심이 있었는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역사학이나 출판계의 관심이 다시 전염병 쪽으로 쏠리면서 저도 그런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하나 싶어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Q. 끝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에 내용을 제공한 강의 준비를 하고, 학생들과 소통하고, 그 후속 작업으로 책을 쓰고 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즐겁고 보람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독자 여러분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이 책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얘기들은 나중에 개정판이나 별도의 책을 통해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이참에 적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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