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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너무 이른 작별>을 우리말로 옮긴 김운하


Q∥ 독자들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너무 이른 작별』의 번역을 마치고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A∥ 작년 겨울 이 책을 번역하게 되어 다른 일들을 미루어야만 했는데, 지금은 몇몇 학자들과 권태를 주제로 한 인문교양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몸문화연구소에서 지난해 자살 문제에 이어 올해는 폭력 문제를 연구 과제로 삼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에세이를 한 권 작업 중입니다. 



Q∥ 독자들에게 『너무 이른 작별』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A∥ 한국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자살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국내에는 자살 문제에 관한 연구도, 관련된 좋은 책들이 의외로 별로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책처럼 자살 유가족을 직접 다룬 책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고, 또 이만큼 풍부하고 구체적이며,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토대로 자살과 유가족 문제를 다룬 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전 그동안 자살에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풍부하게 자살과 죽음, 그리고 그것의 파장에 관해 잘 이야기해주는 책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에 하나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Q∥ 저자 칼라 파인은 침묵 속에서 고통받아온 자살 유가족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아냈습니다. 저자는 60여 명의 자살 유가족을 인터뷰했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저자 자신이 자살 유가족이기도 하구요. 이 책의 주제와 스타일에 대해 몇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의 아주 특별한 점은, 저자인 칼라 파인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직접 겪었고, 그 사건이 작가였던 그녀를 자살 유가족 문제 전문가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가이자 아내로서 살던 한 여성이 자살 유가족으로서 실제 겪었던 끔찍한 고통과 절망, 정신적 방황, 마침내 치유에 이르게 된 과정 전체가 이야기의 씨줄로, 다른 한편으론 작가 자신처럼 그런 고통을 겪었던 수많은 유가족들의 경험을 날줄로 하여 자살 유가족이 겪는 최초의 충격에서부터 치유에 이르는 모든 단계들이 전문가들의 조언과 이론적인 성찰이라는 훌륭한 바늘에 꿰어져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겁고 심각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흡인력 강한 논픽션 소설처럼 모든 세대와 연령의 독자들에게 강렬한 호소력과 가독성을 가집니다. 그건 칼라 파인 자신이 자살 유가족이기 이전에 한 명의 뛰어난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책은 일차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살 유가족들에게 직접적이고 신뢰성 있는 상처의 치유에 대한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한국엔 사실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그들을 위한 사회적인 배려가 별로 없었지요. 이 책 부록에도 소개되어 있듯이 최근에야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 차원에서 조금씩 지원 기구들이 생기고 있는 추세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겠지만, 한국 사회에도 자살 유가족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들이 있습니다. 그건 이 책처럼, 자살 유가족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나 이야기들이 부재했던 탓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비단 자살 유가족들을 위해서만 쓰인 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이 책을 진정으로 더 성공적이고 호소력 있게 만드는 측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살이 결국 누군가의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한, 자살 문제는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인데요. 이 책은 자살 유가족의 시선으로 자살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해줄 뿐 아니라, 자살이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살 문제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때문에 이 책은 자살의 유혹을 느끼거나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죽음을 통해서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죽은 자의 회상」, 「자살금지법」, 『137개의 미로카드』 등의 작품을 쓴 소설가이십니다. 작품 속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하신 흔적이 느껴지는데요. 칼라 파인의 『너무 이른 작별』이 선생님께 특별한 의미로 다가갔을 것 같습니다.

A∥ 솔직히, 이 책을 번역하면서 여러 번 작업을 멈추어야 할 정도로 마음이 심란해지곤 했습니다. 그도 그랬던 것이, 저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2년에 걸쳐 부모님을 모두 잃고 극심한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살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고, 이후 줄곧 죽음과 자살, 그리고 죽음 앞에 선 생의 의미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해왔기 때문이었죠. 그건 사실상 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간의 탐구는 주로 철학적인 것이었지, 막상 실제 자살자들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제 자살 심리 같은 것에 관해선 잘 몰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자살 유가족들의 고통에 관해선 더 말할 것도 없구요.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면서 실은 무엇보다 저 자신이 많은 걸 다시 배웠습니다. 



Q∥ 타인의 고백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그것을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작업은 더욱 힘든 일일 텐데요. 자살 유가족의 크고 깊은 상처와 고통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또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으셨다면? 

A∥ 이 책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저자 자신이 자살 유가족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저자가 남편을 자살로 잃기 전부터 글을 쓰는 작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외국어를 번역하는 일은 늘 까다로운 일이지만, 특히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문체일수록 문장에 실린 고유한 감정선을 살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시를 번역하면 원시가 가진 감동의 절반도 채 살리기 어려운 것처럼요. 다행히도, 저 자신도 문학에 속해 있기 때문에 원래의 문장이 가진 문학적인 결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음에도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질감을 완전히 살리는데 몇몇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선 인터뷰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구어체가 많이 쓰였는데, 저는 가급적 그런 구어적인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번역하는 동안 어떤 장면들에선 감정이입이 너무 심하게 되는 바람에 눈물이 핑 돌거나 깊은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습니다. 저자 칼라 파인도 결국엔 인정해야만 한다고 말한 부분이지만, 누구도 자살자의 진정한 자살 동기에 대해선 알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난해한 수수께끼를 던져 주곤, 문제를 낸 장본인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죠. 그 동기는 합리적일 수도 있고, 비합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결코 알 수 없지요. 저는 그동안 자살 문제에 관해서 너무 합리적으로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비합리적인 존재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랬지요. 때문에 이 책에서 자살 유가족들이 겪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들이 너무 가슴 아팠고, 마치 제 자신이 유가족이 된 듯이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때 자살충동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지만, 제가 사라지고 난 후에 살아남은 가족들이 겪게 될 고통과 상처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제가 다행히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자살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가족, 그리고 자살하는 이를 사랑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직접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라는 걸 환기시켜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제겐 가장 큰 소득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앞으로 쉽게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것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것도 생기더군요. 



Q∥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작년에 몸문화연구소에서 자살을 주제로 공동 연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연구결과가 『애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최근에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번역서인 『너무 이른 작별』과 다르게, 이 공동 연구집에는 한국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졌을 듯합니다. 

A∥『애도 받지 못한 자들』이란 책은 『너무 이른 작별』과는 접근방법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 책은 지난해 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심각한 자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인데, 청년, 노년 자살 문제, 자살자들의 심리, 문학 치료, 자살에 관한 철학적인 분석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자살 문제에 접근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 책에는 『너무 이른 작별』에서 다루고 있는 자살 유가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진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너무 이른 작별』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물론 한국의 자살 유가족 문제를 다루지 못한 아쉬움은 있는데, 그 부분은 앞으로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라고, 『너무 이른 작별』이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기폭제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Q∥ 이 책은 ‘자살 유가족’의 치유 과정을 묘사하고 있지만,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성찰거리를 줍니다. 크고 작은 ‘가족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과 더불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저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톨스토이의 그 문장을 깊이 실감했습니다. 자살이란 결국 누군가의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자살자는 결국 누군가의 남편이거나 아내이고, 또는 엄마, 아빠, 아들, 딸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살은 한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파괴하고, 남은 이들에게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겨줍니다. 사실 삶이란 수많은 철학자들의 말대로, 우리에게 관대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삶 속에는 수많은 슬픔과 고통, 상처들, 예측 불가능한 재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삶에는 예기치 않은 기쁨과 행복들, 환희와 축복, 행운의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삶을 구성하고 있지요.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이란 작은 공동체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그 누구도 쉽사리 자살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이란 것이 결국은 이기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누구도 자신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이 평생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길 원하진 않을 테니까요. 한 사람의 부재가 얼마나 큰 빈자리를 남기는지 미리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곁에 살아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영원한 부재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치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말 못 할 고뇌를 안고 있고, 그럼에도 이 삶을 감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족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궁극적으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언젠가는 모두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곁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요? 어떤 상처를 갖고 있든 간에,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감사와 사랑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늘 잃어버린 후에야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은 동물이지만, 잃어버리기 전에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자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가족의 존재와 사랑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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