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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서울대 김희준 교수가 안내하는 '리비트의 별'


약 5,000년의 인류 문명, 약 500년의 근대과학, 그리고 최근 약 100년의 현대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이 자연에 관하여 알아낸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우주에 기원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약 500년 전에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그때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답이었을 것이고요.


우주의 역사를 인간 세상의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시간과 공간은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해당합니다. 쿼크, 양성자, 중성자, 원자, 분자 등 입자는 등장인물에, 그리고 입자들 사이의 힘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인간관계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적 드라마를 통해 우주가 태어나고 137억 년 후 이 시점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은 아주 특별한 존재이지요. 우주의 역사를 통해서 우주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한 처음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제가 소개하는 책 『리비트의 별』은 헨리에타 리비트와 에드윈 허블, 두 사람을 주역으로 삼아 지난 100년 사이에 인간이 우주의 기원을 밝혀낸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조역으로는 피커링, 섀플리, 커티스, 휴메이슨 등이 등장합니다. 허블은 허블 법칙, 허블우주망원경 등으로 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대중에게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천문학자입니다. 그런데 허블 법칙이 나오기 위해서는 리비트라는 무명 여성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리비트는 별의 어떤 면에 끌려서 거의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평생 동안 별에 매달렸을까요?



제가 리비트를 처음 접한 것은 《사이언스》에 나온 “Miss Leavitt’s Stars” 서평을 통해서였습니다. 1970년대에 시카고 대학에서 유학할 때 허블에 대해서는 학교 잡지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그 후에도 빅뱅 우주론이나 별의 진화 등에 관해서는 독학으로 공부를 했지만 빅뱅 우주론의 첫 단추를 꿰었다고도 볼 수 있는 리비트의 일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했지요. 그래서 서평을 보고 나서는 원서를 구해서 거의 단숨에 읽어나갔습니다. 물론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뉴욕타임스》 과학 기자인 조지 존슨의 문장이나 서술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이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후 존슨의 허락을 얻어서 이 책의 주요 문장을 따다가 그림 자료를 추가해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내가 10여 년 동안 강의해온 서울대학교 핵심교양 과목인 “자연과학의 세계” 수업에서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번역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몇 년이 지나도 이 훌륭한 책의 번역서가 나오지 않자 내가 한번 해볼까 하는 욕심이 생겼지요. 그래서 몇 차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궁리출판사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화학자인 내가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니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천문학에 관해 궁금한 일이 있으면 상담을 하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이명균 교수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했어요. 마침내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다니 감개가 무량하고 기대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과 또 우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이 리비트를 통해서 과학이 우주의 기원과 같은 핵심 질문에 대해 탐구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의 원리와 작동 방식을 배우고 이해해서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하는 면이고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연의 규칙으로부터 자연의 정직성을 배워 인성 함양의 자양분으로 삼는 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천문학 전반이나 빅뱅 우주론의 기초를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평생 성실한 자세로 천문학 사진을 가지고 별을 분석한 리비트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우는 일입니다.


리비트는 마젤란성운에서 1,777개의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하면서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 사이에 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 많은 변광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후보들을 조사했을까요? 거의 최저 임금을 받는 ‘컴퓨터’라는 직종에 종사하면서 우주에서 거리를 재는 표준잣대를 찾아낸 리비트의 업적은 그녀의 성실성과 인내심이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리비트가 병에 걸려 죽은 것은 1921년이지요. 그리고 2년 후 1923년 10월 6일에 허블은 안드로메다성운에서 변광성을 발견하고, 리비트의 주기와 밝기 관계를 사용해서 이 별까지의 거리가 100만 광년이나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어서 허블은 수십 개 은하의 거리와 후퇴 속도를 측정해서 우주의 팽창으로 이어지는 허블 법칙을 발견합니다.


리비트는 자신의 일이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도 하루하루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리비트처럼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다 보면 뜻하지도 않게 보다 중요한 일의 밑받침이 되는 일을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리비트의 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비트의 별은 오늘도 밤하늘에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라고 말입니다.


ⓒ『리비트의 별』옮긴이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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