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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밖에서 만난 작가┃『어느 날 갑자기, 살아남아 버렸다』를 펴낸 문화비평가 이명석 인터뷰


Q∥책의 부제가 ‘파국의 불안을 딛고 일어서는 서바이벌 프로젝트’입니다. 왜 파국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까? 파국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A∥ 불가항력! 일본의 대지진, 동남아의 쓰나미, 사스와 전염병 공포, 세계 경제 동시 침체…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에 연이어 얻어맞았습니다. 저는 ‘불가항력’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개인의 힘으로 아무리 버텨봤자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파국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는 거죠. 세상 전체, 한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다. 혹은 그 전체는 근근히 유지되어도, 한 개인이나 가정은 속절없이 몰락할 수 있다. 이런 불안감이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막연한 불안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방법까지 봉쇄합니다. 저는 종말론에 심취해 자포자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거기에서 살아날 가능성을 얻는다면, 지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 불안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Q∥ 재난전문가나 미래학자가 아니라 문화비평가의 이력을 가진 사람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게 된 경로는 무엇입니까?

A∥ 처음에는 푸념 식으로 친구들과 ‘자신이 떨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자신이 이 상황에 대해 많은 예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 지진이 나서 건물 안에 갇히면 뭐부터 해야 돼?” “식량을 찾고 물을 모아야 해. 그리고 배급제로 무조건 똑같이 나누어야 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기 전에 맞아서 죽지. 『표류교실』을 봐.” 제가 15년 이상 만화, 영화, TV, 게임 등에 대해 연구하고 비평해온 과정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한 상상력들을 다양하게 섭렵하고 있었던 거죠.

20세기 말에는 근미래의 세기말을 다룬 일본 만화, 2000년대 중반에는 급속히 늘어난 좀비 영화와 소수의 인간들을 한계상황으로 몰아넣는 리얼리티 TV쇼, 그 이후에는 오다쿠, 은둔형 외톨이 등 대중문화의 과소비와 겹쳐지는 새로운 인간상… 제가 매달려 왔던 소재들이 일관되게 ‘파국으로 고립된 상황에서의 서바이벌’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었던 거죠. 곳곳에서 ‘살려줘, 살려줘’ 소리치면서요. 저는 그것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모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책제목만 보면 대재난이 닥쳤을 때의 생존 매뉴얼을 알려주거나, ‘종말론’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책이 아닐까 하는 오해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파국을 다루는 책들은 이 양쪽이 대부분이고요.

A∥ 이 책은 ‘어떤 식으로 파국이 일어날 수 있는가?’, 또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난전문가들이 전하는 실질적인 정보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제가 제목으로 ‘살아남아 버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일시적인 생존을 확보한 후에 더욱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들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때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가 몰려오는 순간,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다. 대지진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진에서 살아남았다면 계속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종말론은 그런 생각을 포기하는 전략, 강력한 카리스마에 그저 투항하고자 하는 방식입니다. 『파리대왕』을 비롯해 이 책에서 예시하는 여러 작품들은 생존의 압박과 종말의 공포가 사람들의 이성을 어떻게 마비시키고 공멸의 길로 이끄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그 공포를 물리치고 살아남기 위한 생각의 프로젝트입니다.



Q∥ 이 책은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이라는 주제를 좀비워크, 리얼리티 쇼, 오다쿠, 은둔형 외톨이, 초식남 등과 같은 사회 현상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소재들은 어떻게 ‘서바이벌’이라는 주제와 연결되는 건가요?

A∥ 저는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종류의 서바이벌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파국을 가져온 원인이 어떻든 간에 주인공들이 매우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서두에 정리해둔 ‘서바이벌 노트’가 그 공통의 조건인데요. 그 핵심은 ‘고립’입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문명 세계, 혹은 타인과의 단절 속에서 혼자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곧이어 이것이 지진, 화산과 같은 대재난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사건의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 묻지마 살인자는 물론이고, 좀비 분장을 하고 월스트리트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사람들, 리얼리티 쇼에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게임을 하는 자들, 나아가 여성과의 연애를 포기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남자들까지 고립 속에서 생존의 방법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Q∥ 영화, 소설, 만화, TV쇼 등에서 예시했던 다양한 파국 상황이 ‘은둔형 외톨이’ ‘노숙자’ ‘고시원 인간’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로 넘어오는 9장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상자 속에 갇혀 지내는 유사함을 보이는데요. 이 책 속에는 ‘상자’가 두 개의 중요한 은유(시작의 상자와 상자 인간)로 등장합니다. 상자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A∥ 책의 서두에 ‘시작의 상자’가 나옵니다. 우리는 어떤 재앙을 당하더라도 완전한 알몸뚱이에서 생존 게임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표류한 뒤 배에서 여러 물건들을 가져온 뒤 그것으로 서바이벌을 시작하죠. 드라마 <로스트>에서는 항공기 추락으로 함께 떨어진 수화물이 그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것을 ‘시작의 상자’라고 부릅니다. 이 상자 안의 것들을 어떻게 재조립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존은 결정되죠.

책의 후반에 ‘상자 인간’이 나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상자 같은 집에 자신을 가두고, 노숙자가 골판지 상자로 된 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쪽방과 고시원은 그것이 좀더 체계화된 형태죠. 외부자의 시선에서 볼 때 그들은 그 상자의 벽으로 인해 단절되고 피폐해집니다. 그래서 안에 있는 사람에게 어서 상자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치죠. 그러나 내부자의 시선으로 봅시다. 이들에게 상자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단순한 외벽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상자 안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의 것으로만 생존을 영위할 수 있다면 서바이벌에 성공하죠. 그래서 이 상자 역시 ‘시작의 상자’의 역할까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상자 안의 생존’이 현대인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 상자 안에 숨어 작은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관음’에 만족하죠. 인터넷이 그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립은 상자 바깥의 사람들을 완전한 타자--좀비와 같은 존재로 여기게 만듭니다. 총을 들고 나가 무차별로 학살하고 싶어지죠.



Q∥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후 《뉴욕타임스》는 ‘덜 가지고 살기(Living with Less)’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어, 독자들에게 거대한 경제적 파국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해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요?

A∥ 솔직히 저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현재의 병폐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몰락해도 살아갈 수 있는 기초를 찾자고 생각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선행학습하며 악착같이 친구들을 밀어내고 일류 대학에 가서 여러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취직하고… 이런 식의 매뉴얼이 쌀 한 톨의 가치도 없는 때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조건으로 보다 단순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자는 거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은 우리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붕괴되지 않고 최악의 파국이 닥치지 않더라도, 이런 관점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답을 전해주었습니다. 덜 가지고 사는 연습을 하면, 무언가 좀더 생기면 그걸 더 잘 활용할 수 있더라구요.



Q∥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가 파국을 기꺼이 이겨낼 수 있다. 혹은 나아가 파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A∥ 최악의 파국을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따라가던 저는 어느 순간, 이 상황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기하죠. 정말 좀비들에게 쫓기며 빗물을 받아마시며 겨우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이게 정말 살아 있다는 게 아닐까’ 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파국, 그러니까 가장 근본적인 서바이벌의 상황을 수많은 방법으로 상상하고 그걸 즐깁니다.

물론 진짜 그런 고통을 직접 겪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서바이벌이나 야영 매니아도 아니고, 여행을 가도 오지보다는 깔끔한 도시를 훨씬 선호하죠. 하지만 나 자신의 근본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에 부딪히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게임이 그와 같은 요소를 지니고 있죠. 이 책도 파국을 다룬 하나의 게임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저는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이, 우리의 문명을 새롭게 조립하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유토피아를 찾아간 사람들은 문명과 절연한 땅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급자족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파국 속에 마주치는 디스토피아와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우리 삶의 추는 이렇게 천당과 지옥 사이를 크게 진동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저는 이 프로젝트의 가장 유일한 답으로 ‘생존’을 이야기했습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생계가 아니라 생존입니다. 어떤 매뉴얼도 아무리 잘난 멘토도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몸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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