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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②_지옥을 탈출한 예멘인들

진짜 봄이 찾아왔던 예멘 무지막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반감을 느낀 것은 남예멘인만이 아니었다. 사우디는 오래전부터 북예멘의 지역 정치인과 토호, 부족장을 매수하며 북예멘을 와하비즘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사우디와 국경을 맞댄 북예멘의 북서부 지역 엘리트는 특히 사우디에서 내려오는 와하비즘 공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반와하비즘 반부패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 인물이 압둘말리크 알후티였다. 알후티도 독실한 이슬람교인이었지만 와하비즘의 폭력주의를 혐오하는 평화주의자였다. 알후티는 예멘을 종파 갈등과 지역 갈등으로 몰아가는 주체는 사우디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며 반미 반이스라엘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다. 예멘 정부군은 군사 작전을 벌여 2004년 알후티와 수십 명의 지지자를 죽였다. 알후티 집안을 구심점으로 반정부 무장 항쟁이 그때부터 본격화했다.   2011년 아랍의 봄에는 진짜 봄과 가짜 봄이 있었다. 리비아의 봄은 가짜 봄이었다. 리비아의 봄은 오일 달러의 수혜를 소수가 독식하는 아랍의 왕정 국가들과 달리 국민 다수가 고르게 누리는 세속 아랍 국가 체제의 번영과 확산을 두려워한 아랍 왕정 국가들과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를 제거하려고 꾸며낸 가짜 봄이었다. 예멘의 봄은 진짜 봄이었다. 사우디를 등에 업고 자국민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며 영화를 누려온 독재자 살레에 맞서 예멘 국민이 봉기했다.

(cc) Sallam from Yemen


시위대를 잇따라 학살했는데도 시위 규모가 가라앉지 않자 겁에 질린 살레는 사우디로 피신했고 부통령 하디가 대통령 지위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하디는 시간 끌기에 급급했고 후티 반군은 2014년 9월 예멘의 수도 사나까지 접수했다. 예멘에서 부패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 자국 안에서도 거센 민주화 요구가 일어날까봐 불안해진 아랍 산유국들은 중재역을 자처하면서 예멘을 6개의 자치지역으로 쪼개는 연방제를 들이밀었지만 수도 사나를 포함해서 북예멘의 방대한 지역을 점령한 알후티의 몫으로는 바다를 끼지 않은 내륙의 조그만 땅밖에 주지 않았다. 후티 세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후티 반군의 공세가 이어지자 하디 대통령은 남예멘의 아덴으로 도주했다가 다시 대통령에서 물러난다며 사우디로 피신했다. 그러더니만 사우디에게 예멘의 질서 회복을 위한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 사우디는 아랍 산유국들은 물론 나이지리아, 모로코 같은 아프리카 국가, 콜롬비아 같은 중남미 국가까지 앞세워 2015년 3월 예멘 침공에 나섰다. 제주도로 밀려온 예멘 난민들 예멘 전쟁은 혼란의 극치다. 처음에는 주로 후티 반군과 정부군이 충돌했지만 두 대통령이 국외도 도피한 뒤 후티 반군에 합류하는 정부군이 대거 늘어났다. 특히 하디에게 대통령을 넘겨준 살레가 다시 복귀를 노리고 후티 반군과 손잡으면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살레는 그 뒤로 다시 후티 반군에게서 등을 돌렸다가 피살당했다.) 정부군의 존재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뒤로 후티 반군은 사우디 동맹군뿐 아니라 토착 극렬 이슬람주의자들은 물론 예멘 국내 혼란을 틈타 시리아 등 국외에서 흘러들어온 알카이다 테러 집단과 맞서야 했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남예멘의 무장 세력도 사우디 동맹군의 지원 아래 후티에 맞섰다. 사우디 동맹군은 군사 시설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안 가리고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그래도 전세를 뒤집지 못하자 항구 봉쇄로 예멘으로 들어가는 식량과 의약품을 막았다. 콜레라와 굶주림으로 죽는 예멘인이 속출했다. 난민 배출지로 유명한 아프리카 소말리아로 탈출하는 예멘인마저 생겼다. 얼마 전 제주도로 밀려온 500명의 난민도 지옥으로 돌변한 예멘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아랍산유국들과 서방이 지지하는 유명무실한 정부군보다는 후티 반군에게 탄압을 받았다고 해야 한국 같은 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을 확률이 그나마 높다고 믿고서 그러는 듯하지만 반군의 탄압을 피해서 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아, 또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 출신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주도에 온 난민은 남예멘 출신이 다수일 가능성이 있다.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세속 사회주의 체제에서 20여 년을 살아본 남예멘인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잠식된 북예멘인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특히 통일 이후 싹텄다. 영국의 오랜 식민 통치를 받은 남예멘인은 영어 같은 외국어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가 적지 않다.

'난민'과 '란민' 아랍에미리트는 예멘을 침공한 사우디 동맹군의 핵심이지만 사우디와 속셈이 다르다. 사우디는 구체제를 대체로 복원시키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는 남예멘의 분리 독립을 지지한다. 이란이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아랍에미리트는 속수무책이기에 홍해의 길목에 자리한 남예멘에 거점을 마련하고 싶어한다. 예멘 전쟁의 혼란을 틈타 아랍에미리트는 남예멘 남쪽의 인도양에 자리한 제주도 두 배 크기


만한 소코트라 섬에 병력을 배치하여 공항 등 주요 시설을 장악했다. 두바이, 아부다비처럼 잘나가는 금융 통상 거점 도시를 보유한 아랍에미리트는 언제까지 사우디의 꼭두각시로 남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금력을 배경으로 소말리아, 지부티, 에리트리아 등지에도 군항을 건설하고 있다. 다시 통일된 예멘이 나서건 분리 독립된 남예멘이 나서건 예멘인이 자국 영토를 무단 점령한 아랍에미리트와 언젠가 군사 충돌에 돌입하면 예멘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이 예멘 전쟁으로부터 받을 영향은 수백 명의 난민 유입에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집권 시절 한국은 아랍에미리트와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기에 아랍에미리트에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군은 자동 개입해야 한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아랍에미리트 정부도 부인했지만 2017년 말 후티 반군은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로를 향해 미사일을 쏘았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이 쏘는 미사일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까지 날아간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발전소에 예멘에서 쏜 미사일이 명중하면 아랍에미리트는 재앙에 빠지고 군사동맹 자동 개입 약속에 따라 한국군이 아라비아 반도에 투입되면 한국은 국가 자원을 소수가 독식하는 아랍 왕정 체제와 결탁한 나라로 다수 아랍인의 지탄을 받을 것이다. 제주도에 온 예멘인은 ‘난민’이라 불리지만 실은 ‘피난민’이다. ‘난’리는 예멘에서 지금 벌어지는 중이고 제주도에 온 예멘인은 그런 난을 피해서 온 사람들이다. 진짜 ‘난민’은 해외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브로커를 고용할 만한 돈도 없어 사우디 동맹군의 경제 봉쇄로 헐벗고 굶주리면서 난리판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절대 다수의 예멘 국민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난민’을 찾으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難民 곧 불쌍하게도 ‘난을 당한 사람들’이다. 또 하나는 亂民 곧 흉악하게도 ‘무리를 지으며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다. 앞의 난민을 ‘난민’, 뒤의 난민을 ‘란민’이라 부르기로 하자. 제주도에 온 예멘인을 성토하는 한국인은 ‘난민’을 ‘란민’으로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진짜 ‘란민’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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