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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콘크리트 작업을 하다 – 건축 일기 13

  • 이굴기 [궁리 건축 일기]
  • 2015년 3월 11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11월 14일

주말을 집에서 보내는 데 애를 먹었다. 평소대로라면 어디로든 꽃산행을 떠났을 것이로되 건축이라고 큰일을 벌여놓은 마당에 무턱대고 산으로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녘에서는 벌써 눈 속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꽃동무들이 은근하게 유혹을 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꽃산행은 이르기에 집에 주저앉은 것이다.


집에 붙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공사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해서 자꾸 눈이 파주 쪽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무슨 일이 얼마만큼 진행되었을까. 무엇에 중독된 듯 모든 신경이 자유로를 달려 공사현장의 땅으로 자꾸 파고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렵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간단하게 사무를 처리하고 부리나케 현장으로 향했다.


깜짝, 놀랐다. 이제껏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던 땅이 네모난 형태로 움푹 꺼져 있는 게 아닌가. 땅은 아름다운 깊이를 확 드러내었다. 지하 3미터의 높이이니 여기서 발이라도 삐끗하면 확 굴러 떨어질 만한 제법 타격을 주기에 충분한 기울기요 거리였다.


고운 시루떡을 한 움큼 쪄서 도려낸 것처럼 부지는 네모난 크기로 정리되어 있었다. 바닥을 보면 단순하게 오려낸 것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옛 유물의 발굴현장을 방불케 했다. 우물의 조금 깊게 파진 부분도 있고 부엌이라도 되는 듯 둥근 화덕이 옹기종기 모여 놓였던 자리도 보였다. 그것은 암반의 깊이가 들쭉날쭉해서 길이가 서로 다른 파일을 같은 높이로 자른 자국이었다. 건축에 관한한 문외한인 나의 눈에는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이곳의 위치를 표시하는 하나하나가 그냥 허투루이 아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도면이 말을 한다. 그 도면에 표시된 약속대로 사방의 위치와 표시를 견준 후에 시공한 것들이다. 실제로 이 공사장 주위는 붉은 스프레이로 이런저런 표시가 많다. 컨테이너 박스 하단에도 동그란 표시가 있었다. 울타리 펜스에도 붉은 스프레이로 마크가 되어 있기도 했다. 이들은 그냥 심심해서 칠해놓은 게 아니라 사방의 균형과 기준이 되는 표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물은 지붕에서부터 아래로 지어내려 올 수는 없다. 나무가 뿌리에서 줄기가 뻗고 가지가 뻗어나가고 그 끝에 잎사귀가 달리는 것처럼 중력을 거슬러 지을 수 있는 공법은 아직은 없다. 튼튼하고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처럼 바닥에서부터 다지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 한다. 이제 궁리 사옥도 바닥을 확실히 다졌으니 여기에서부터 차츰차츰 공중으로 진출해야 한다.


기초를 단단히 해라.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참 많이도 들었던 이 말은 아마도 바로 이런 건축공사 현장에서 처음 태어난 나온 말일 게다. 기초바닥을 잘해야 지붕을 잘 올릴 수가 있는 법이다. 오늘의 작업은 이렇게 확보된 공간에 도면에 표시된 대로 먹줄로 각각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다. 철근으로 배근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위치를 정확히 표시해야 한다. 그 정확한 작업을 위해서 콘크리트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먹줄을 놓는다. 말하자면 이 콘크리트를 종이 삼아 도면처럼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다.


레미콘 차가 들어오고 그 안에서 제조된 콘크리트가 높은 호스를 통해서 기초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미콘 차 옆에는 아코디언 같은 장비를 맨 기사가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그이가 콘크리트의 유입을 조절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닥에서는 장화를 신고 투입된 작업자가 여러 명이었다. 한 사람은 호스를 밀고 다니면서 콘크리트를 적재적소에 퍼지게끔 했다. 그는 고함과 수신호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기사와 조율하였다.


모래와 자갈, 물, 시멘트가 골고루 섞인 콘크리트. 흡사 뻘 같은 색의 콘크리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낮은 곳을 물처럼 찾아 흐르려고 하지만 점도가 높은 탓에 쉽게 퍼지지 못했다. 해서 작업을 하는 분들이 긴 가래 같은 것을 가지고 골고루 퍼지게 했다. 이 작은 바닥에도 물길 같은 고랑이 만들어지고 금방 생물이라도 나올 것처럼 웅덩이가 생겨났다.


몇 해 전 중국 서안의 진시황 무덤을 호위하는 병마용(兵馬俑)에 가본 적이 있다. 실제 실물 크기의 병사들과 말을 복원하여 전시한 그곳은 웅장한 규모였다. 당시의 발굴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그곳은 관람석보다 움푹 꺼진 곳이었다. 지하에서 오래 잠겨 있다가 나온 흙은 무슨 처리를 했는지 아주 붉은 색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규모는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돌아가는 원리는 비슷할 것이다. 흙을 이용해서 구획을 정해서 일사분란하게 작업장은 돌아갔고 유지되었을 것이다. 우리 작업장도 그런 원리와 물리적 법칙을 응용하고 이용하면서 작업을 해나간다. 궁리의 부지도 그곳에서처럼 붉은 빛은 띤 흙이 야물고 딴딴하게 뭉쳐 있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콘크리트가 굳기를 기다리는 바닥을 바라보는데 몇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우리는 누구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말로는 쉽게 하고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그것을 뜻으로 느끼고 몸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만은 않다. 이 치열한 건축 현장에서 웬 나른한 궁상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움푹 꺼진 지하공간 앞에서 그런 궁리를 해 보았던 것이었다.


한편 오늘 재미있게 표현되는 말 하나를 주웠다. 현장의 컨테이너 박스에는 월중행사표가 붙어 있어 하루하루의 일과를 적어나간다. 그곳에 오늘 칸에는 ‘버림 콘크리트’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의 작업은 무슨 힘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정확한 시공을 위한 먹줄을 놓기 위해서 콘크리트를 바닥에 도포한 것이다. 그래서 쓸모없이 그냥 버린다고 뜻으로 ‘버림 콘크리트’라고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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