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하루도 안 산 적이 없다. 연속적이어야 하지 띄엄띄엄 살 수 없는 게 목숨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 나날 중에 숟가락을 들지 않은 적은 하루도 없다. 이력이란 게 신발의 내력이란 뜻이지만 실은 숟가락이 실어나른 힘의 집합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겠다.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숟가락에 강렬한 인상 하나를 가지게 된 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꼬방동네 사람들>이란 책이다. 산동네 사람들의 질펀한 육담과 유곽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의 거친 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들이 참 많다. 한참 싸우다 말고 상대에게 한방 내지르는 말은 이렇다. 야, 씨발, 너 개새캬, 당장 밥숟갈 놓고 시퍼!!!
이런 숟가락도 종종 생각나는 숟가락이다. 북한산 등산 갔다가 어느 절에 들러 물 한 모금 뜨는데 물통 옆에 붙은 법구경의 한 구절이 마음을 때렸다.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 지혜 있는 사람의 곁에 있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물맛을 모르듯.
이래저래 숟가락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도 오전 11시 지나 때는 찾아오고 마음에 점 하나를 또 찍는다. 인간이 불을 익힌 것을 먹게 되면서 음식이 몹시 얌전해졌다. 소화시간은 물론 식사시간도 몹시 짧아졌다. 이제 식당에 가서 아줌마 설렁탕! 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잠시 후 간편하게 숟가락을 들기만 하면 된다.
그런 숟가락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새해 첫출근하고 이런 뉴스를 접했다. “설탕이 가득 든 숟가락 모양으로 날아가는 새떼가 연출한 장관이 이스라엘 사진작가의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BBC가 보도했다. (.......) 어느 날 아침 일찍 야생 식물과 새를 찍기 위해 요르단 계곡에 갔다가 찌르레기 떼가 신기한 모양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어느 순간 새 떼가 하늘로 비상하더니 군무를 추기 시작했고, 몇 초 동안 숟가락 모양을 만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연합뉴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나를 담고 있는 이 세상이 국물이라면 나는 숟가락에 불과한 것. 오늘도 멀뚱멀뚱 국물맛을 모르는 숟가락처럼 이 식탁에 앉았다. 잠시 세상의 소란에 귀를 닫고 숟가락에 대해 생각해 본다. 휘영영 달빛처럼 굽어진 숟가락 손잡이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오늘은 오로지 숟가락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국물을 담는 그릇에도 깊이가 있듯 그 국물을 떠 오는 숟가락에도 깊이가 있다. 너무 깊지 않고, 내 입에 딱 맞춘 듯한 깊이. 어디에 가면 내 생의 깊이를 설명해 줄 것도 같은 깊이. 저 숟가락의 깊이 아니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이 세상에는 여기저기 숨어있다.
(임인년.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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