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 벽돌을 쌓다 – 건축 일기 33



지하층의 공사, 내부의 설비 공사가 착착 진행되는 것과 맞물려 바깥의 벽돌 공사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외부 재질을 어떻게 하느냐가 건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궁리 건물은 반은 노출콘크리트이고 절반은 벽돌로 마감한다.


“흙, 지구의 피부”라는 책이 있다. 그 제목을 보고 단박에 감이 왔던 적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 건물에서 벽돌은 피부에 해당한다. 거칠기 짝이 없는 외부의 자연환경을 가장 직접적으로, 일차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게 바로 벽돌이다. 피부에 해당하는 벽돌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붉은색 계통의 벽돌을 검토했으나 검은색 벽돌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직원들이 한사코 붉은색은 아니라 했고, 또 거대한 규모의 롯데 아울렛이 붉은색, 같은 단지의 이웃 건물들도 붉은색 계통이라서 차별성이 묻힐 것 같았다. 이러한 사실을 열거해서 궁리 건물을 설계한 <도시건축>에 알리고 의견을 구했다.


신중하게 궁리한 끝에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가격이 높은 전벽돌을 선택했다. 시공사인 두영건설에서 2단지 끝의 예인미술이라고 하는 인쇄소를 짓고 있는데 그곳의 재질이 또한 전벽돌이었다. 감독관과 같이 가서 샘플로 보고 실제 지어가는 건물을 보니 우리가 원하는 바에 많이 근접하는 것 같았다.


건축을 할 때 한 획을 긋는다는 기분이 드는 공정이 진행될 때가 있다. 못 하나 박고 나사 하나 조임이 다 그런 순간이겠지만 모든 순간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지하층의 뚜껑을 덮는 순간, 층별로 콘크리트를 치고 양생을 기다리는 순간, 지하층의 벽체가 완성되는 순간이 내겐 그러한 감흥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노출콘크리트와 짝을 맞추어 외부 벽돌이 쌓이는 순간이 또한 내게는 그런 작은 감격의 순간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벽돌을 쌓기로 한 하루 전날. 작업책임자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상면을 했다. 한눈에 보아도 전문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이었다. 예인미술에서 작업을 하다 왔는지 작업복에는 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해맑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분이었다. 지독한 골초인지 연신 담배를 꼬나물었다. 내일의 작업을 계획하면서 입구 나무 발판에 털썩 주저앉아 현장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리 건축을 시작하면서 작업현장에서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건물에 소요되는 각종 자재들이 제자리에 각각 자리 잡지 않는다면 건물은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못 하나 나사 하나가 그럴진대 여러 단계의 공정에 참여하는 작업자들의 손길이야 말해 무엇하랴. 돌이켜 보면 내가 공사현장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작업자는 꽃 심기를 하는 두 분이었다. 그들은 작업모자를 쓰고 망치를 비롯한 각종 도구를 주렁주렁 단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무게가 상당할 것 같았다.


그분들을 보면서 내 건물을 지어준다는 고마운 마음이 퍽, 가슴에서 올라왔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양해를 구하기는 해야겠지만, 우리 공사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의 손을 일일이 찍어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더랬다. 음식이 손맛인 것처럼, 결국 건물의 멋을 결정하는 것은 작업자들의 손끝에서 좌우될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손을 찍지는 못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얼쩡거리다가 작업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분들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공사현장이었다. 푹 퍼질러 앉은 벽돌 공사 책임자의 편한 모습을 보는데 퍼뜩 생각이 일어났다.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가는 꽁초를 보는데 이때다 싶었다. 다른 분은 못 찍어도 이 분의 거칠고 야무진 손은 찍어야겠구나!


속닥한 장소이기에 노골적으로 부탁을 했다.


--- 손 좀 보여주세요. 사진 좀 찍겠습니다.

--- 이 손으로 여러 건물 세웠지요.

--- 손가락 끝이 다쳤나요.

--- 우리는 한 겨울이라도 장감을 못 껴요. 갑갑해서요. 맨손으로 해야 벽돌도 정교하게 쌓을 수 있구요.

--- 대단하십니다

--- 벽돌은 수평과 수직인데...... 걱정 마십시오. 내일 잘 쌓겠습니다.

--- 아이고, 잘 부탁합니다.

--- 저는 아무 죄 짓지 않았습니다. 손만 아니라 제 얼굴을 찍어도 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가인 강운구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 마을 삼부작에 나오는 것인데 강원도 어느 옥수수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장딴지에 핏줄이 불끈 솟고, 낫을 들고 땀방울이 송송한 얼굴로 클로즈업한 흑백의 사진이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그 농부가 꽁초를 끼우고 있는 손이다. 손톱이 유난스레 편평한 손 사진은 고단한 농부의 일상을 단박에 표현해주는 것이었다. 그 사진을 생각하면서 팀장의 손을 몇 번 찍었다. 소탈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우리 건물의 벽돌은 제대로 나오겠구나 저절로 안심이 되었다.


다음 날 조금 일찍 파주로 갔다. 이미 벽돌쌓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초설계를 할 때, 벽돌을 쌓을 부분은 온열을 위해서 스티로폼을 대었다. 벽돌이 와서 한켠에 쌓이고 작업자들이 말하자면 스티로폼 부분에는 모조리 벽돌을 쌓은 것이다. 벽돌도 스티로폼에 딱 붙이는 게 아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간격을 두었다. 벽돌과 스티로폼 사에 갇힌 얇은 공기층! 그것도 마감이 되면 한 겹의 벽 역할을 훌륭하게 하는 것이다.


벽돌은 시멘트를 접착제로 마구잡이로 그냥 쌓은 게 아니었다. 콘크리트 타설을 할 때 골조를 튼튼히 세우기 위해 스티로폼과 함께 미리 넣어 둔 아연도금의 스틸이 있다. 거푸집을 떼고 나면 그 스틸이 그대로 남는데 모두 제거하기도 하지만 장식적으로 그냥 놓아두기도 한다.


외부벽을 노출로 할 때는 그 스틸에 작은 철사를 연결해서 벽돌이 행여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작업을 하도록 했다. 알고 보니 굉장히 정밀한 작업이 바로 벽돌쌓기였다. 까딱했다간 와르르 무너지기 십상인 게 벽돌쌓기였다. 어제 팀장님이 말한 대로 벽돌쌓기의 요체는 수평과 수직을 정확이 맞추는 것이었다. 작업자들은 실을 아래로 늘어뜨려 수직을 보고, 수평을 가늠했다.


앞으로 여러 날이 걸리는 작업량이었다. 이 벽돌 작업이 끝나면 건물의 외양이 드러난다. 노출 콘크리트와 어울린 벽돌의 모습이 건물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다. 검은색으로 건물이 점점 모양을 갖추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색상 선택을 정말로 잘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회색 콘크리트와 검은 벽돌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벽돌, 건물의 피부다. 그 피부가 한 땀 한 땀 건물에 입혀질 때 비로소 건물이 하나의 유기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철근과 콘크리트 일색이었던 건물에 화색이 돌고, 동맥과 정맥, 실핏줄이 돌고, 내부가 원활하게 신진대사를 하는 체계를 갖추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인 폴 발레리가 했다는 한마디가 떠올랐다.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