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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공구리를 치다 – 건축 일기 21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 아니 겨우 두 달이다. 벌써 지하 골조를 완성하고 지상으로 나온 게 대견하기만 하다. 더구나 아무런 안전사고 하나 없이 지하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도약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내일 날씨가 궁금해졌다.


아들이 해병대 입대하고 빼놓지 않고 챙긴 게 기상예보였다. 한국의 공영방송에서는 고맙게도 백령도를 지도에 표시하고 그곳의 날씨는 꼭 전해주었다. 날씨가 내 마음의 기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때 절실하게 알았었다. 이젠 파주의 날씨가 나를 지배한다. 다행히 내일 현장의 기후도 맑음,이었다.


겨우 불알 두 쪽 차고 장가가는 신랑이 밤새 신부를 그리며 설레는 것처럼 그렇게 비슷한 자세로 하룻밤을 보내고 현장에 도착했다. 하늘을 보니 날씨가 예상대로 맑았다. 궁리 건축을 시작하고 새삼 고마운 게 있다. 감히 하늘이 도와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 만큼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맑았다는 점이다. 가뭄에 시달리는 농부께서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지만 내 발등의 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청명. 작업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주르륵 내리는 햇빛, 천지간에 무량한 이 햇살을 잃어버리지 않는 길은 아침에 일찍 시작한 것뿐이다. 오후의 햇살을 우리 시멘트에 고스란히 붙잡아두자면 늦어도 점심 무렵에 끝내야 한다. 이번으로 두 번째 치는 공구리 작업이라 한결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장화를 신고, 방안경을 쓰고, 사정없이 쏟아지는 콘크리트를 네 명의 작업자가 공동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투입되는 시멘트 물량이 우리 공사에 있어 전체 물량의 70%에 해당할 만큼 많은 분량이다. 그만큼 오늘 작업을 끝내면 사실상 공사의 절반을 이루는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작업요령을 본다. 콸,콸,콸 쏟아지는 시멘트.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넣기 위하여 한 번에 시멘트를 다 쏟아붓는 게 아니다. 한 번에 절반씩 나누어 콘크리트를 도포했다. 이중으로 골고루 시멘트를 치는 것이다. 그것은 이부자리를 펼 때 요를 먼저 깐 뒤에 이불을 펴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요는 방바닥의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 이불은 도망가는 온기를 붙잡아 눌러담아 우리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그처럼 두 겹의 콘크리트는 그만큼 따가운 햇볕을 제 안으로 감싸고돌아 시멘트가 단단히 또한 제대로 굳어지게 하는 것이다.


바닥도 바닥이지만 1층에서 지하로 뻗은 벽은 아주 깊다. 높이가 2.7미터나 족히 된다. 그곳까지 골고루 시멘트가 들어차게 해야 한다. 나무로 된 거푸집 사이로 철근이 촘촘히 박혀 있어 자칫 콘크리트가 스며들기에 힘든 구조이다. 긴 바이브레이트와 자외선 진동기로 시멘트를 누르고 다졌다. 혹 기포가 생길지도 몰라 그것을 쫓아내는 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바깥에서는 나무망치로 벽을 툭툭 때렸다. 시멘트가 벽면에 골고루 빠짐없이 펴져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건물을 따라 회랑처럼 서포터를 둘렀다. 그곳에서 한분이 시멘트가 내려갈 때마다 나무망치로 벽을 툭툭 때렸다. 육안으로 확인을 할 수 없었지만 능숙한 작업자는 소리로 그 강도를 조절하면서 벽을 연주하듯 두루두루.


건물의 기초를 따라서 아무리 정교하게 칸막이를 대고 벽과 기둥, 1층의 바닥을 만들었지만 콘크리트를 들이붓자마자 빈틈으로 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물의 부드러움은 작은 틈을 마구마구 파고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콘크리트의 압력이 대단한데 어느 곳에서 만들어놓은 것이 터진 것이 없었다.


버림콘크리트까지 포함한다면 지하바닥에 이어 세 번째 치는 공구리 작업이었다. 한결 작업자들의 표정에 여유가 있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의 눈에도 여유가 살아났다. 한참 작업 현장을 보면서 지켜보는데 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펜스 바깥의 궁리의 조감도가 있는 곳으로 잠시 나오라는 것이었다.


얼른 달려가 보니 도로가에서 오늘 궁리 사옥에 투입되는 콘크리트의 품질에 관한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조회사인 한일시멘트에서 직원이 실험 장비를 갖추고 와서 오늘 작업하는 물량의 품질 성적서를 즉석에서 보여주었다. 그는 도로가에 샘플이 되는 콘크리트를 한 바가지 떠놓고 자를 가지고 물성, 끈기, 들을 테스트했다. 오늘 작업 현장에 투입되는 물량은 우리가 요청한 품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안심을 했다.


그저 회색빛이라면 다 콘크리트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저 다 굳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콘크리트에도 다 성분이 다른 것이라 했다. 용도와 상황에 따라 철근의 강도가 다른 것처럼 콘크리트도 그 굳기와 물성이 다 달랐다. 이런 시험 성적은 그냥 아무나 해주는 것은 아니고 건축현장에서 요청을 하면 달려와서 해준다고 하니 건물을 짓는 이라면 웬만하면 이런 서비스는 받는 게 좋겠다.


지하가 요새화된 이후 지하에는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사다리를 타고 겨우 내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더구나 바닥을 지지하는 버팀목이 울창한 밀림처럼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궁금해서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망치소리나 엔진 소리 같은 것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점심때가 되면 지하에서 여러 분이 지친 몸을 이끌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었다.


공구리 작업을 할 때도 지하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 했다. 혹 있을 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서 지하에도 작업하는 분이 있다고 했다. 물이 새는 것을 점검하고 콘크리트가 새는 것을 살펴보고, 또 골고루 퍼지도록 그곳에서도 나무망치로 벽을 두드려 준다고 했다.


점심을 지날 무렵 아무런 사고 없이 지층에 이어 1층 바닥과 지하벽까지 공구리 작업이 끝났다. 이제부터 소위 양생기간에 들어간다. 벌써 먼저 작업을 한 곳에서는 맑은 물이 돌고 희끗희끗한 침전물이 생기는 것도 같았다. 차곡차곡 시멘트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광경! 고슬고슬한 햇빛이 바닷물에서 캐내는 소금 결정 같기도 했다. 염전에서 바닷물이 소금을 낳으며 말라가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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