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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 - 연극과 음악 3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음악과 연극이 가장 반대 방향으로 달려온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서로를 간절하게 원치 않는다면 아직 절망을 느끼지 못하는 탓이다. 당장 음악부터 오페라와 콘서트로 나뉘는 판이니 사색당파가 따로 없다. 그러나 서로 무지해서이지 관심을 가지고 보면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 왔다.


루키노 비스콘티, 프랑코 체피렐리, 조르조 스트렐러, 루카 론코니. 이탈리아 연극과 오페라 연출가의 계보이다. 괴츠 프리드리히, 페터 슈타인, 하이너 뮐러는 독일에서 같은 작업을 해온 장인들이다. 피에르 아우디, 파트리스 셰로, 로베르 르파주와 같은 불어권 감독이나 피터 홀, 로버트 윌슨, 피터 셀라스와 같은 영미권 연출가들도 연극과 오페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똑같은 비중을 두어왔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영화에서도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






우리 순수 예술 분야 가운데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내가 알기로 연극과 춤은 열악한 축에 든다. 장르에 우열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장의 크기에 따른 배분이다. 그렇다고 클래식 음악계가 “우리는 연극보다 형편이 낫다”고 자위(自慰)하지도 않는다. 그쪽에서는 도리어 영화나 스포츠를 부러워한다. 물론 영화 쪽이라고 만족할 리 없다.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연극계 사람들은 늘 오페라 무대에 서는 가수들이 성악 발성에 집중하느라 연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리만 있고 볼 것은 없는 반쪽 무대라는 것이다. 음악계 사람들은 연극 무대에서 들리는 음악이 저급하고 유치한 수준이라며 공연의 수준을 폄훼한다. 더 나아가 음악대학 교수 업적 평가에서 연극이나 영화를 위해 한 작업은 쳐주질 않는다. 베르디와 바그너가 웃을 일이다.


그러나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를 볼 수 없는 것은 누구 잘못인가? 연극인 탓이다. 연출가는 체구가 큰 테너나 소프라노가 날렵한 움직임 없이도 객석에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뛰거나 누워서 노래하기 힘든 성악가에게 역동성과 요염함을 줄 수 있는 동선(動線)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연극 무대의 음악이 허접하다면 누구 탓인가? 당연히 음악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곡가는 배우의 대사가 묻히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감정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음악을 처리해야 한다. 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악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극과 일체를 이룰 수 있는, 봉사하는 음악이 될 때 그 가치가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연극인이 오페라를, 음악가가 연극무대를 탓한다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연극은 음악을 소외(疏外)의 수단으로 삼거나 감정이입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간에 적극적으로 무대에 봉사하도록 해야 하며,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理想)이라는 환청에서 깨어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끊임없이 무대화해야 한다. 연극인은 적은 지원액을 클래식 공연에 더하자고 청해야 하며, 클래식 음악계는 영화에 비해 쥐꼬리 같은 예산을 연극과 나눠 파이를 키울 안목이 있어야 한다.


오는 2016년은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기를 기념하는 해다. 출판과 연극, 음악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많은 행사가 기획될 것이다. 세종문화화관에서 열리는 서울시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서울시향이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연주하고, 국립합창단이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노래한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극단의 <한여름 밤의 꿈>에는 KBS교향악단이 멘델스존의 사운드트랙을 연주하고, 국립 발레단이 신작 안무를 춘다. 에든버러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아니, 그들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그때면 21세기의 소포클레스와 브레히트가 한국에서 나올 토대가 마련되지 않을까?



수준 높은 연극관객이 클래식 음악팬이 되고, 최고의 클래식 음악 청중이 연극무대를 찾게 하는 방법으로 한 무대에 서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양보와 배려야말로 예술가가 갖기 어려운, 그래서 꼭 필요한 덕목이다. 연극과 음악은 손을 잡고 춤을 꼭 보듬어 안아야 한다. 그랬을 때 제일 잘했다.



ⓒ 정준호. 2013.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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