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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사진. 마니산 2019.12.17. ⓒ 이굴기




동양 최고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영귀한 존재이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의 형상을 닮은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 육극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고 하늘의 팔풍은 사람의 여덟 관절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하늘에 구성이 있듯 사람에게는 아홉 구멍이 있고.....”


<동의보감>에 기대어 이렇게 말하는 게 전혀 허황된 말은 아니겠다. 하늘에 구름이 있듯 사람에게는 보조개가 있다. 공중에 바람이 있듯 사람에게는 하품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 사람에게는 기침과 재채기가 있다. 나의 오른 눈이 태양과 연결되고, 나의 왼 눈이 달과 연결되듯, 우주의 한 모서리와 긴밀하게 교통하는 게 재채기가 아니던가. 우주의 어느 구석과 특별하게 교감하는 게 기침이 아니던가. 많은 게 집합되어 있는 사람의 얼굴. 나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나의 얼굴. 내 생이 밀집된 골목. 잠시 불길한 일이 벌어졌다. 무대막이 잠깐 쳐졌다. 코로나가 인간 세상에 덮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뚜레를 꿰듯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흐르는 물에 30초간 손을 씻으면 됩니다. 목소리가 낭랑한 아나운서가 나서서 공익방송을 한다. 자연이 불러서 간 자리.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콸 물이 쏟아진다. 손을 씻는다. 손톱 밑을 딱는다. 깍지도 끼면서 손가락도 부비면서 손가락 골짜기를 청소한다. 손안의 도사리고 있는 운명의 무늬도 새삼 확인한다.


붕대처럼 하얀 물, 비단처럼 투명한 무명천. 지상에서 인간이 저지른 사태를 진압하는 건 결국 밑에서 올라온 이 부드러운 지하자원들이다. 이 질기고 고운 물이 세상을 결국 구원할 것이라 믿으며 읽어보는 김수영의 시 한 편.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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