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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집을 준공하다 - 건축 일기 3


어린 시절 재주는 없었지만 그림을 곧잘 그리기도 했다. 아무 공책을 하나 북 찢어서 색연필을 들어보지만 빈곤한 상상력이라 늘 그리는 소재가 한결같았다. 그저 산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시냇물을 그렸다. 도시의 복잡한 광경 대신 고향의 뻔한 풍경을 그렸던 것이다. 그 그림 중에서 그래도 빼놓지 않았던 것은 집이었다.


내가 그린 집은 초가는 아니었고 더구나 양옥도 아니었다. 용마루를 그리고 추녀도 넣고 버선발을 닮은 듯 구부러진 곡선의 지붕을 그린 것으로 짐작컨대 기와집이었던 듯하다. 궁벽한 농촌마을에서 살았으니 책에서 읽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내가 가장 살고 싶었던 집이었던가 보다.


집을 그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집을 그리면서 지붕을 가장 먼저 그렸던 것이다. 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사실상 지반을 닦고 기둥을 세우고 맨 마지막에 지붕을 얹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둥을 내리고 바닥을 다졌던 셈이었다. 따지고 보면 거꾸로도 그런 거꾸로가 없었다.


서류상의 절차, 머릿속의 궁리로만 집을 짓다가 드디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듯 부지 앞에 서니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가로수에 떨어진 낙엽 하나가 달려와 발끝을 건드리고 갔다. 땅은 벌써 봄의 기미를 알아차렸는지 울컥울컥 해동하는 물이 나오기도 했다.


본격적인 수술을 하기 전 머리카락을 정리하듯 말라비틀어진 야생화들과 쓰레기를 정리한 뒤 가림막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기 마련인 먼지와 소음 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앞으로 벌어질 본 공사에 비한다면 보잘것없는 공사였지만 그래도 2층 높이로 사방에 담을 두르니 아늑한 기분도 들고 건축의 현장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고여드는 것 같았다.


타인의 공사라면 그냥 건성으로 지나쳤을 텐데 궁리의 가림막이라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견고해 보이던 가림막은 그리 튼튼한 제품은 아니었다. 양철지붕을 연상케 하는 얇은 것으로 못을 박아 고정하는 게 아니라 긴 대에 옷걸이처럼 홈을 만들어 거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은 끝났다. 이제 이 가림막 안에서 무수한 일들이 벌어질 터, 그 터전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하나마나한 소리겠지만 건물이란 절실한 마음만 가진다고 새가 진흙을 물어오고 바람이 동력을 공급해서 지어주는 게 아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떡잎이 돋아나듯 쑥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기계와 사람이 투입되어서 기름과 땀을 섞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조직하고 순서를 정하고 계획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작은 집부터 지어야 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집이 아니었다. 고정식의 튼튼한 건물일 필요도 없었다. 펜스를 친 다음 날 공사 현장에 가보았더니 집이 두 채나 건설되어 있었다. 그것은 차에 실려온 집, 컨테이너였다. 한 채는 시공사인 두영건설에서 쓰는 집. 다른 한 채는 궁리의 현장감독이 사용하는 집.


주인이 입주하기도 전인 어젯밤에 개미나 귀뚜라미가 벌써 한 번 사용했을 것 같은 집에서 간단한 회의를 했다. 현장소장과 현장감독이 간이회의실에서 앞으로의 공사계획과 일정에 대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나는 주위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누가 알아주겠냐만 궁리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회담이라 생각이 들었다. 찍고 나서 보니 판문점의 정전협정 사진에 못지않겠다는 엄청난 의미가 몰려들었다.


몇 해 전,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특별연사로 초청된 신영복 선생은 다음과 같은 요지로 감동의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나와 함께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엇을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반대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맨 나중에 지붕을 그렸습니다. 그분이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실로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는 튼튼한 사고를 길러야 합니다. 책과 교실, 종이와 문자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컨테이너 집을 나와 다시 한 번 궁리의 터를 걸음으로 재면서 둘러보았다. 땅은 변한 바 없고 나 또한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난번처럼 서른일곱 걸음이 나왔다. 지붕이 아니라 바닥의 면적이었다. 연필로 그리는 집이 아니라 지금은 내 몸을 붓으로 삼아 그려보는 집이다. 주춧돌을 세우듯 바닥을 다지듯 신영복 선생의 연설을 떠올리면서 컨테이너와 펜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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