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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를 채우고 두개골을 파먹는 흙


사진. 지리산 2019. 10. 26. ⓒ 이굴기



지난주에는 돌이었으니

오늘은 흙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자


밥 한 숟가락에도 흙

버스에 오르면 좌석마다 앉아 있는 흙덩어리들

생각할 때면 머리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진흙 반죽


흙 한 줌이라는 말은 있어도

땅 한 줌이라는 말은 없다는 말은

너무 싱거워

흙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너무 가까이에 있는 식구처럼

이렇게 가벼운 흙이라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흙 한줌을 쥐어보네만


언젠가는

이 흙이 호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내 두개골을 파먹어 안방처럼 차지하고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려네


얼른 일어나 사방을 보면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지

너무나 무거운 흙이라네


저 산과 바다를 이루고

그 산과 바다를 떠받치는 게

바로 흙이 아닌가


땅은 거대한 것

설악, 지리, 한라를 품고도

무거운 줄을 모르고

동해, 남해 서해를 안고도

한 방울의 땀도 흘리는 법이 없지


밥 먹고 나서도 숭늉으로 흙탕물 한 사발

버스에서 내려 흙을 밟으니 진동하는 흙 냄새

식당에 가면 진흙인형들이 앉아

걸죽한 흙탕물을 한 사발씩 들이키네

생각이 끊길 때마다 자투리 생각으로 흙


그동안 너무 무겁고 질긴 것만을 다루었나

그렇다면 다음 주의 주제는 정해졌군,

사타구니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대해 종일 생각하기로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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